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오래 전 고입 전형에서는 200점 만점에 10점의 비중으로 음악과목이 포함돼 있었다. 10문제 중 음악사 관련 문제는 반드시 1문제 이상 출제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방대하고 어려운 서양음악의 역사를 몇 시간의 수업으로 학생들에게 전달한다는 게 사실상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각 사조를 대표하는 음악가와 대표작품을 정리해 놓고 달달 외우게 하는 수업방식이 효율적인 교수법으로 각광 받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당장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이런 방식의 수업이 어쩌면 클래식음악에 대한 흥미를 반감시키고 특정 영역에 지적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만의 유희거리로 전락하게 만든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 시절 서양음악사의 끝부분에 가면, '러시아 5인조'라는 작곡가 그룹이 나온다.

발라키레프·무소르그스키·보로딘·림스키코르샤코프·큐이가 이 5인조의 멤버였는데, 당시 시험 문제에는 "다음 중 러시아 5인조가 아닌 사람은?", "다음 중 러시아 5인조만으로 묶인 것은?" 같은 류의 문제유형이 많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러시아 음악에 대해 호감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런 현상에 대해 정서적으로 비슷해서 그렇다고 진단하는 게 대부분인데, 러시아 민요가 가지는 애잔함에서 느껴지는 일반적인 감정 때문이거나 국민악파 계열의 작곡가들이 표현해내는 민족적 색채감에 매료된 탓이 클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민족적 색채가 어떤 과정으로 두께감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조금 더 냉정하게 사실관계를 따져 들어가 보면, 바로 이 '러시아 5인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19세기 이전의 러시아 음악은 민속음악과 그리스 정교 음악의 정서 속에, 국민들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음악을 사랑하는 전통이 확립되어 있었다. 하지만 상류층의 경향은 조금 달라 이탈리아나 프랑스·독일 같은 서유럽 국가의 음악어법을 더 존중했고 지향했다.

공부를 많이 한 전문 음악가들의 경우 이런 경향이 더 강해서 서유럽 음악은 엘리트 음악, 자국음악은 그냥 편하게 생활 속에서 즐기는 아마추어들의 음악으로 취급됐다.

그런 분위기 속에 러시아 전기 낭만주의 작곡가로 분류되는 글린카(Michail Glinka·1804~57)는 자신의 음악에 러시아적인 요소를 적극 도입해 호평 받았다. 글린카는 후세 러시아 작곡가들에게 선구자로 인식되게 되는데 정작 글린카는 철도청에 근무하는 직장인이었다. 그는 러시아 문학을 기반으로 '이반 스사닌', '루슬란과 류드밀라' 등의 오페라를 남기며 '러시아 고전음악의 아버지'로 평가받게 됐다.

러시아 5인조는 당시엔 '막강한 소집단'이라 불리었는데, 이들은 글린카의 음악적 업적을 계승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발라키레프는 글린카의 제자이면서 러시아 5인조를 결성하는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 발라키레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수업료가 없는 '음악자유학교'를 설립하고 교육과 창작, 연주에 열정을 보였다. 이 학교는 황제의 원조를 얻어 설립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학교운영방식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니 현실참여에 대한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그런 발라키레프 역시 '수학자'로서 전업 작곡가는 아니었다.

큐이 역시 성을 쌓아 요새를 만드는 '축성학' 전문가였으며, 오페라 '이고르 공'으로 유명한 보로딘 역시 의약학 공부를 한 화학자였다.

'전람회의 그림'으로 유명한 무소르크스키 역시 평범한 '장교'였고, '세헤라자데'로 대표되는 림스키코르샤코프 역시 해군 장교'였다.

이렇듯 러시아 5인조는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며 작곡가로서 러시아 민족음악의 체계와 색채를 덧입혀 간 아마추어 그룹이었다. 림스키코르샤코프가 작곡한 오페라 '황금닭'은 무능력하고 부패한 군 장교들로 가득한 황궁에서 자기 역할을 못하는 게으르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황제를 풍자하는 푸시킨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당연히 이 작품은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고 시련을 겪지만 지금에 와선 림스키코르샤코프의 대표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들이 아마추어였기 때문에 기존의 전문가들이 가지고 있던 질서에서 자유로웠을 것이다. 훨씬 창의적이었을 수 있고 이해관계에 얽매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 무서운 아마추어 그룹은 훗날 드뷔시·라벨·뒤카·레스피기·쇼스타코비치 같은 근현대 음악의 명장이 탄생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다.

매주 거리로 쏟아져 나온 아마추어들의 외침이 결코 작아 보일 수 없는 이유를 러시아 5인조를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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