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다. 정유년 새해는 붉은 닭의 해라고 한다. 12간지 중 10번째 동물인 닭은 우리 생활과 가장 밀접한 동물이다. 또 인간 입장에서 보면 해가 되는 일이 거의 없는 매우 유익한 동물이기도 하다.

호랑이나 말, 소처럼 카리스마가 있거나 장대하진 않지만 인간 입장에선 마냥 고맙기만 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개나 토끼처럼 애완으로 사랑 받지도 못하지만 묵묵히 희생의 일생을 살아가고 있는 동물인 것이다.

닭의 해를 맞으며 신년 덕담도 주고받아야 하지만, 사실 요즘 가장 힘든 존재가 닭이다. 역대급 조류인플루엔자(AI)의 창궐로 전국 대부분의 닭 사육 농가에서는 살처분으로 매일 수십만 마리의 닭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근래 들어선 거의 연례행사처럼 치루고 있는 이 AI와의 전쟁으로, 알을 낳는 산란계가 직격탄을 맞아 계란 값이 금값이 되어버렸다.

전국에서 하루 소비되는 계란이 4천만 개 정도였다 하니 인구의 80퍼센트가 매일 계란  하나씩을 먹고 있었던 셈이다. 프랜차이즈로 닭을 파는 회사도 셀 수 없이 많고 조기 퇴직자가 가장 많이 창업대열에 합류하는 곳도 치킨 전문점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닭은 그야말로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동물이다.

그러다 보니 맥주와 패키지로 엮인 '치맥'은 영국의 '피쉬 앤 칩스'처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먹거리로 부상하여, 국내 여행을 온 외국여행자들의 필수 맛 코스가 돼 버렸다.

가금(家禽)류는 말 그대로 집에서 기르는 가축성 날짐승을 뜻하는데, 오리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닭이 압도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고마운 닭의 해를 맞아 전국에서 열리는 해돋이 행사도 AI전염의 위험을 들어 대부분 취소돼 버렸으니 닭 입장에선 자신의 해를 맞아 펼쳐야 할 잔치를 스스로 망친 것 같아 마음이 울적할 듯하다.

더구나 요즘 우리가 쓰고 있는 닭과 관련한 표현들을 보면 '닭대가리', '닭살스럽다',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심지어 대통령 이름 앞에도 '닭'을 붙여 풍자하니, 닭이 비하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현재 우리 주변에 있는 닭은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야생하고 있는 들닭이 사육, 개량된 것이며, 기원전 6, 7세기경부터 사육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닭이 사육되기 시작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신라 시조 설화에 닭이 등장하고 있고, 중국 문헌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한(韓)나라에 꼬리가 긴 세미계(細尾鷄)가 있다는 기록으로 미뤄 삼국 이전부터 사육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닭은 김알지(金斡智)의 탄생담에 등장해 경주 김씨 시조의 증인이 됐는데, 그 배경이 됐던 숲의 이름을 계림(鷄林)이라고 하였으며 이후 신라의 국호로도 쓰였으니 지금도 경북지역엔 닭의 이름이 들어간 지명이 유독 많아 그 친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성공한 치킨 프랜차이즈의 본사가 대구·경북 지역에 유독 많은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민담 '나무꾼과 선녀'에서는 날개옷을 찾아 입은 선녀가 하늘로 올라가 버리자 나무꾼은 수탉이 되어 하늘을 향하여 하염없이 운다는 내용이 있고, 판소리 '심청가'에는 "닭아닭아 우지마라 네가울면 날이새고 날이새면 나죽는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밖에도 경상도 일부지역의 민요에도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닭은 인간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반영하거나 위무하는 역할로 표현되고 있다.

성경에도 '닭 울 때'(막 13:35)라는 표현이 나온다. 자정에서 새벽 3시 사이의 시간을 가리키는데,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던 시간도 바로 이 시간이었는데, 베드로는 이후 닭 울음소리만 들어도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닭과 관련하여 "머리에 관을 쓴 것은 문(文)이요, 발에 갈퀴를 가진 것은 무(武)이며, 적에 맞서서 싸우는 것은 용(勇)이요, 먹을 것을 보고 서로 불러 나누는 것은 인(仁)이며, 밤을 지켜 때를 지켜 알리는 것은 신(信)이다"라는 다섯 덕목을 적어 놓고 있다.

이렇듯 닭은 새벽을 알리는 동물이다. 닭의 울음소리는 귀신을 쫓는 벽사의 기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닭은 절대 대단하게 보이지 않는, 그저 만만하기 짝이 없는 동물이다.

그렇더라도 이번엔 이 만만한 닭에게 한 번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닭의 울음소리(鷄鳴)가 새로운 미래를 여는 계명(啓明)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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