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국회 교문위 국정감사장에서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도종환(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의해 제기된 이 주장은 청와대가 문재인·박원순 등과 같은 야권의 정치지도자를 지지하는 예술인들을 리스트로 정리해두고 문광부에서 지원하는 사업에서 배제하게끔 했다는 것이 요지이다.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서 같이 공개한 문건 속 인물들은 9473명으로 그 숫자가 매우 방대하다. 어쩌면 이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중앙부처 내에 따로 조직을 만들어야 될 정도이다.

일단 조윤선 문광부장관은 이 명단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어 진실공방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여진다. 내가 하는 일도 국가나 지방 정부의 예산을 지원받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실 이런 편파적 지원 또는 특정 인물이나 단체 배제와 관련된 얘기는 수년 전부터 들어왔었다.

이런 얘기들이 여론으로 모이는 과정은 어쩌면 너무 뻔하다. 문광부는 평가나 지원을 직접 담당하지 않는다. 대부분 준국가기관이나 재단 같은 형태의 전문성 있어 보이는 기관을 설립하고 그 곳을 경유해 행정적 처리를 한다.

얼핏 보면 아주 깔끔한 구조로 보이지만, 사실상 산하기관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그들의 인사권과 예산을 쥐고 있는 상부기관의 말을 합리적으로 거역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곳에서 근무하는 인력들은 대부분 평균 이상의 상식과 양식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다. 영혼이나 양심이 없지도 않다. 부당한 업무개입에 대해선 어떻게든 입에서 입을 타고 소문이 날 수밖에 없다.

직원들 뿐만이 아니다. 심사나 평가에 참여하는 위원들도 몇몇 특수한 임무를 띠고 참여한 게 아닌 이상 심의과정에서 일어나는 불합리나 부조리에 대해서 마냥 침묵만 하지는 않는다. 물론 지원사업의 특성상 탈락한 측에서의 민원은 항상 있을 수 있고 민원에 대한 응대방식으로 다양한 명분들이 동원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심스럽지만… 사실 큰 집에서 거기는 딱 찍어서 지원하지 말라고 했어요" 류의 얘기가 공공연히 흘러나온다면 이건 분명히 매우 심각한 문화붕괴의 징조이다.

짜증나고 불쾌해서 심사 중 나오고 싶었다는 어느 교수의 말처럼 현재의 대한민국 문화행정은 예전에 많이 회자되던 '문화창달'과는 한참 차이가 있어 보인다. 하물며 '문화융성'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현 정부에서의 문화행정의 난맥상은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할지 답답한 노릇이다.

지방정부라고 별반 다를 것도 없다. 지금 한참 진행 중인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우만 보더라도, 국가를 대표하는 문화상품 하나를 육성시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선출직 시장의 가치에 의해 함부로 재단되고 말았다.

나름 긴 시간 동안 퇴적되어온 문화적 상징을 문화적 양식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잣대로 무너뜨리고 말았다. 대충 얼기설기 봉합이 된듯 하지만 그 불완전성에 대해선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부산시는 오페라하우스의 건립 같은 인프라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다. 내년부터 출범할 문화재단 직원들을 대거 뽑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아마 대구에게 밀리고 있는 문화 3류도시로서의 이미지를 떨치고 싶을 것이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의 위상에 걸 맞는 포지션을 차지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문화도시의 영예는 건물만 짓는다고 그저 주어지는 타이틀이 아니다. 많은 영화인들이 어렵게 쌓아온 부산국제영화제의 상처를 진심으로 어루만져주는 것에서부터 문화행정이 새출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는 속성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정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그것은 개인이나 국가, 지자체가 다르지 않다. 의지만 가지고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신중해야 하고 애호가나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솔직히 이번에 나온 블랙리스트 명단도 개인적으로는 불쾌하다. 선거 때 줄 선 문화예술인들 품평하는 것 같아서 그렇다. 참여정부 때 늘 소외되어 왔던 민족예술 계열의 예술인들이 대거 문화행정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문화예술인들이 어떤 연유로 저렇게 줄지어 있어야 하는지 단순히 정치적 의사표현으로만 생각하기에는 모두가 너무 저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블랙리스트는 경우에 따라선 게이트급으로 발전할 소지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추이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진실 여부를 떠나 이번 기회를 통해 문화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자칫하다간 '에헤라! 문화융성'이 아니라 '에이~ 문화융성'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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