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며칠 전, 알고 지내는 문학인 한 분이 만나자는 연락을 전해 왔다. 차를 한 잔 하며 꺼내 놓은 얘기는 얼마 전 작고한 어느 여류 작가와 관련된 것이었다.

오래 전 경향신문과 조선일보의 기자를 지냈고, 소설도 쓰고 평론도 하던 이덕희에 대한 얘기였다. 이덕희는 올 여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생전에 클래식음악에 대한 애정이 깊어 많은 음악 관련 도서들을 소장하고 있었고 생전에 이를 기증할 뜻을 가지고 있었단다. 하여 이와 관련해서 의논을 좀 하자는 것이었다.

나도 서가에 이덕희의 책이 몇 권 꽂혀 있는데 사실 음악 전문가라기보다는 애호가 같은 느낌이 강했다. 이를 테면 음악가와 관련한 사랑 이야기나 에피소드를 묶어 소개하는 책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일단 이덕희가 소장하고 있던 책들의 내용과 분량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활용을 어떻게 할지 다시 의논해 보자하고 마무리를 했지만, 사실 예전에 이덕희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특별한 정보가 없었기에 집에 돌아와 검색을 해봤다.

여러 저서 중 단연 눈길을 끄는 책, 오래 전 내 책꽂이에도 잠시 자리했던 '전혜린 평전'이 바로 이덕희가 쓴 책이었던 것이다.

전혜린은 내가 태어나던 1965년 1월 자살로 생을 마감한 당시 최고의 여류 수필가였다. 내가 6월생이니 이 세상에서 한 번도 오버랩 돼 보지 못한 어쩌면 나와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이다. 그러나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전혜린이란 이름은 지속적으로, 때론 가을 저녁의 연무처럼, 때론 겨울바다의 황량함으로 다가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언젠가 들렀던 뮌헨의 슈바빙 거리에 매료되어 맥주 한 잔 걸치고 이국의 밤 정취를 만끽하다 갑작스럽게 느꼈던 친근함이 훗날 전혜린이 걸었던 그 슈바빙 이었음을 알고 얼마나 반갑던지, 아무 것도 겹치는 게 없는 전혜린과의 인연을 슈바빙 하나로 억지로 엮고 싶어 했던 억측에 혼자 웃었던 기억도 있다.

전혜린은 1953년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으나 1955년 3학년 재학 중 전공을 독문학으로 바꿔 독일로 유학했다. 1959년 뮌헨대학 독문학과를 졸업했다. 유학 시절부터 시작된 그녀의 번역물들은 유려하고 분별력 있는 문체로 많은 독자들을 만들어내며 식자층에 독문학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 가운데(Mitte des Lebens)' 같은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면엔 원작의 뛰어남도 있겠지만 전혜린의 필력이 더해진 측면이 더 주효했지 않나 싶다.

귀국해 여러 학교의 강사를 거쳐 1964년 성균관대학교에 전임 교원으로 자리를 잡은 전혜린은 펜클럽 한국본부 번역분과위원으로 위촉되며 열정적인 삶을 사는가 했지만 31세로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카톨릭에 귀의했고 결혼까지 했던 터라 그녀가 생을 놓은 것은 전혀 예측되지 않았고 그래서 그 갑작스러움과 천재의 상실 앞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을 순방향으로 받아들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덕희다. 이덕희는 전혜린이 죽기 하루 전, 단골다방 '학림'에서 만났다. 전혜린이 '세코날(수면제) 마흔 알을 흰 것으로 구해 기분이 좋아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을 때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단다. 두 사람은 오래 전부터 불면증으로 수면제를 상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덕희는 혜린의 죽음을 전해 듣고 벗을 잃었다는 슬픔보다 뭔가 괘씸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한다. 계획을 빼앗겨 버린 듯 묘한 감정으로 화가 났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덕희는 어느 날부터 혜린과 죽음이란 미지의 세계를 두고 먼저 봉인을 풀고자 경쟁해 왔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페미니즘의 선구자로 현실에선 치열하게 저항하고 혼자의 시간엔 한 없이 침잠하면서 서로를 담금질하던 '소울 메이트', 전혜린과 이덕희.

이덕희가 전혜린에 대한 인간적 그리움으로 사무치게 된 것은 한참 세월이 흐른 후라 하니 두 사람의 젊은 시절은 '절대와 완전에 대한 과대망상적 집착'의 교유로 채워졌던 것이다. 어떤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고 싶었고, 무엇이든 다 돼보고 싶었고, 온갖 것을 다 사랑하고 싶었던. 그래서 삶이 격정적일 수밖에 없는 장치를 스스로 했던 것이다.

이덕희와 전혜린, 두 사람은 '생은 동경의 대상'이라 분명히 말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더 강한 기운으로 죽음을 동경해 왔던 건 아닐까.

가을이다. 딱히 연결고리도 없이 전혜린과 이덕희가 가을로 다가오는 건 우리의 삶이 이들처럼 불완전하고 때론 이율배반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덕희 선생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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