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고갱 / 77㎝×101㎝ oil on canvas

폴 고갱은 184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정치적 성향이 강했던 아버지가 페루의 리마로 정치적 망명을 떠나게 돼 어린시절을 페루에서 보냈으며 17세에 선원생활을 시작으로 20세 때 해군 입대 등 약 7년을 바다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이후 파리에서 베르텡 주식중개회사에 근무 하면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누렸으며 이 시절에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돼 인상파 화풍의 그림을 구입해 소장하기도 하다가 그림교습도 받고 소묘와 유화 기법을 터득하게 된다.

하지만 1883년 그가 근무하던 증권거래소가 파산하게 되자 그는 오히려 매일 매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먹게 되고 이윽고 35세 늦은 나이에 전업작가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작가로서의 그의 생활은 굉장히 힘들고 곤궁했지만 오히려 그러한 환경은 그 자신을 단단하게 단련시키는 자극제가 됐다.

고갱에게 문명화된 도시는 예술적 열망을 채워주기에 부족했다. 그는 프랑스의 남부지방으로 떠나 그곳의 빛나는 태양과 광활한 대지를 가슴에 품었으며 예술적 동지 고흐도 만나게 돼 함께 생활하면서 이상적인 예술공동체 구성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도 하지만 달라도 너무나 다른 이들의 성격은 서로를 오래 견디지 못하게 했다. 고흐의 광기를 본 고갱은 조용히 그리고 황급히 이곳을 떠나게 되고 이 일로 인해 고흐는 그의 귀를 잘라내 분노를 표출하게 된다.

점차 더욱 깊이 문명에 회의를 느끼고 강인한 생명력에 목마름을 느낀 고갱은 1891년 남태평양의 원시성에 매료돼 타이티 섬으로 향하게 된다. 애초 그의 예술은 자연의 재현보다는 내재된 이미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마음속 깊이 침잔돼 있는 감성을 드러내어 형과 색으로 작업해 나가는 그는 남태평양의 원시림 속에서 생명을 노래하고 영혼의 울림에 귀 기울이면서 그곳의 많은 것들을 화폭에 담았다.

그런 고갱의 예술적 특징을 세잔·고흐와 더불어 후기 인상주의라 부른다. 최근에 그의 그림 한 점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곱게 차려입고 풀밭에 앉아있는 두 소녀를 그린 그림으로 한 소녀는 귀 뒤에 꽃을 꼽고 있고 또다른 소녀는 서양식 드레스를 입고 있다. 남태평양 섬 타히티의 소녀들을 그려 매력적인 두 소녀의 표정과 화려한 색채로 유명한 고갱의 1892년작 '나페아 파아 이포이포(언제 결혼하니?)'다.

이 그림이 최근 세계 미술품 거래에서 기록을 세웠다. 무려 3억달러(약 3260억원) 가까운 금액에 경매된 것이다. 예술을 위해 문명을 등진 고갱은 타이티에서 고독하게 죽어갔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호사를 부리고 있으니 참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글:권용복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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