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수/ '원간문학' 등단

여인의 핏빛 설움
그늘진 계곡에 환장하게 피어
눈짓에도 흔들리는 머리채
그 애달픔.
 
속세 그 눈빛 모은
야단법석
있는 것이 없는 것이오 없는 것이 있는 것이라
한 말씀 흘려 놓고
저리 붉은 가슴
안개비 밟고 가는 골짜기
곳곳마다 뿌려 놓고
돌아서 가지 못하게 불을 질러 놓았니다
 
꽃 한 송이 뚝 잘라보고 싶은 욕망
내 마음은 누란(累卵)입니다

시 읽기: 시인의 제5시집 '마등별곡'(2015)에 실린 시이다. 상사화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봄에 잎이 생기고, 여름에 그 잎이 지고 나면 꽃대가 올라와 꽃이 핀다. 달리 말하면, 잎이 있을 때 꽃이 없고, 꽃이 필 때 잎이 없다. 잎과 꽃이 서로 그리워하지만, 이룰 수 없다는 의미를 가진 꽃이다. 시적 화자는 야단법석에 참석하여 설법을 듣는다. 삼조 승찬대사가 '신심명'에서 설파한 '있는 것이 없는 것이오, 없는 것이 있는 것(有卽是無 無卽是有)'이라는 말씀이 흘러나온다. 이 말은 중도를 의미한다. 이 중도는 공사상에 근원을 두고 있다. 대승불교의 중도일승, 일승원교 이론들도 모두 공사상에 근원을 두고 있다. 시적 화자는 "꽃 한 송이 뚝 잘라보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이때 화자는 "내 마음은 누란"이라며 존재자로서 위태로움을 깨닫는다. 결국에는 불교의 공의 초탈적인 면을 통해 화자 자신의 존재를 이해해 나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참나(참자아)를 발견해 나가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우리도 참나(진아)를 발견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문학평론가 신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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