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회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품전 '엄마의 삶' 개최
최근 주목 받는 작가 31명의 작품 전시…가슴 뭉클한 감동은 덤

가족에 희생하느라 여성임을 잊고 사는 엄마의 삶을 들여다보는 전시회가 거제문화예술회관 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다.

거제에서 가기도 힘들고 그래서 보기 힘들었던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품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투어 중 처음으로 거제를 방문한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과 거제시문화예술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엄마의 삶'은 사회적 의미의 어머니에서 벗어나 한 인간이자 여성으로서의 어머니를 바라보고자 하는 전시다.

이번 전시는 '엄마의 일상', '여성성', '사유의 장' 세 가지 주제로 구성돼있다. 주제는 거제문화예술회관에서 선정해 시민들이 쉽게 미술에 다가갈 수 있게 다소 심오한 작품은 배제했다. 요즘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들의 작품이 한 곳에 모여 있어 더 이목이 집중된다.

전시관에 들어서자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설치미술 '춤추는 어머니(작가 심정은)' 다. 전시의 흐름상 마지막 작품인데 입구 정면에 있어 가장 눈에 띈다. 처음 전시관에 들어서면서 봤을 때의 느낌과 모든 작품을 감상한 후 보게 되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전시회의 첫 번째 이야기는 '엄마의 일상'이다. 어머니의 일상공간과 어머니가 속해 있는 가족 풍경에 주목했다. 이해하기 쉽게 전통적·역사 속의 어머니는 배제하고 우리 주변의 어머니에 초점을 맞췄다.

서상익 작가의 '엄마의 정원'은 첫 걸음부터 발을 멈추게 한다. 엄마의 정원은 거실이다. 젊었을 때는 집 앞 정원을 가꾸던 엄마가 나이 들고 중풍에 걸리면서 더이상 정원을 가꿀 수가 없다. 대신 벽지의 꽃이 정원의 꽃을 대신해준다.

거제문화예술회관 김종철 관장은 "엄마가 가장 생각나는, 엄마의 삶을 가장 잘 나타낸 작품이라 생각한다"고 소개했다. 그 옆은 홍미선 작가의 '부엌시리즈 3, 4, 9, 10, 12, 13'이 전시돼 있다. 일상적인 엄마의 삶을 가장 사실적인 사진으로 왜곡 없이 보여준다. 정종미 작가의 '보자기 부인', 이선민 작가의 '트윈스 시리즈 중 연이와 정윤'을 차례대로 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전현숙 작가의 '아직까지 그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는 검정 바탕에 노랑과 빨강이 확 튀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전시회로 견학 온 정명란씨(48·덕포동)는 "요즘 아이들의 감성이 메마른 듯하다"면서 "새롭고 아름다운 걸 보여주면 아이들에게 예술적 감성과 인성도 쌓일 거라 생각해 오게 됐다"고 견학 취지를 말했다.

김영미 작가의 '김씨 농장', 형광등으로 빛을 밝히는 황선태 작가의 '커튼이 있는 방'은 공간속의 어떤 순간을 주목케 하는 매력에 빠질 수 있다. 장원석 작가의 '일상생활'은 엄마의 시각에서 각기 다른 다섯 가지의 일상을 보여준다. 소제목의 '얘들아 라면 줄까?', '엄마 티비걸고 싶어', '형은 공부하는데 동생은 음료수 두 잔째', 'P씨는 요즘 힘들다', '그게 뭐야?' 처럼 일상에 집중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여성성'이다. 여성 특유의 소재적 접근과 여성성을 대변할 수 있는 주제를 통해 어머니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 가지고 있는 감수성과 경험들을 끌어내고자 했다.

'여성성'은 이지숙 작가의 '작업실에 머문 봄-모란과 농담'으로 시작된다. 류준화 작가의 '물에서 놀다'는 체구는 아이인데 얼굴은 성인이라 시선이 머문다. 따뜻한 물에서 헤엄치는 듯한 아이의 모습에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화려한 색감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김현식의 '사이공간'은 작품 재료에 대한 호기심으로 작품을 들여다보게 한다. 가발이냐, 낚싯줄이냐를 두고 입씨름하던 관람객은 작가가 송곳을 이용해 수십 장을 덧댄 결과라는 큐레이터의 설명에도 '가발'이라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윤정미 작가의 '핑크 프로젝트-서우와 서우의 핑크색 물건들'이다. 견학하러 온 여자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져 시선을 뗄 줄을 모른다.

차영석 작가의 '건강한 정물', 정경연 작가의 '어울림 2010-9'도 전시돼 있다. 이혜영 작가의 'Clothes'에 한 동안 머물러 있던 이희정씨(63·고현동)는 "인위적인 소재보다 자연적 소재라 더 눈이 간다"며 "전시회가 전체적으로 그림 형태나 소재가 다양해서 좋다"고 말했다. 처음 봤을 때는 옷가지들로 보이지만 옷에 석고로 본을 떠 종이로 덧대 만들어낸 작품으로 들여다보면 더 쉽고 재밌게 느껴진다.

서양화적인 기법과 동양화적인 정신을 아우르는 박방영 작가의 '꽃이 피는 날'과 구성연 작가의 '사탕시리즈 #V01' 사이에는 전시회서 가장 신경을 쓴 박희섭 작가의 'After Nature' 작품이 있다. 거제문화예술회관 유은지 학예사는 "자개의 아름다움을 전시관 내 조명기의 한계로 다 표현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사유의 장'이다. 어머니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며 사색하고, 자유로운 감성이 자극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여행과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으로 제시된 작품을 통해 고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해방감을 부여하고자 했다.

김정욱 작가의 '무제', 강명지 작가의 '고도'는 지금 현재의 나와 또 다른 내면의 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김대윤 작가의 '꽃배', 정희경 작가의 '여행', 박병춘 작가의 '기억의 풍경-청송', 양순실 작가의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김지원 작가의 '맨드라미', 이수동 작가의 '꽃과 구름', 이영지 작가의 '행복한 기다림'이 관람객을 맞는다.

변경호씨(47·옥포동)는 "부녀자의 삶을 보니 와 닿는 뭉클함이 있고 어머니를 생각지 못한 아픔도 느껴진다"면서 "세 번째 이야기를 둘러보니 진짜 먼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며 감회를 말했다.

김지희 작가의 '한밤중의 정원', 유승호 작가의 '세월아 돌려다오', 김석 작가의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심정은 작가의 '춤추는 어머니'가 이 전시의 마지막이다.

황선희씨(44·옥포동)는 "장승포에 올 때마다 전시관에 들르는 편"이라면서 "마지막에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작품을 보면서 나는 행복한지 다시 되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김종철 관장은 "학생들은 정서적으로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전시회를 통해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접할 수 있었으면 한다"면서 "좋은 전시회가 앞으로도 거제에 올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또 "작가의 붓 끝 하나하나 정서를 직접 느낄 수 있게 시민들이 한 번 쉬어간다는 생각으로 와 관람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미술에는 정답이 없다. 작가는 자신의 세계를 표현했지만 작품을 보는 이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다. 그 해석이 각양각색인 것도 전시회의 재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림뿐만 아니라 사진과 설치미술도 있어 쉽게 다가갈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품전 '엄마의 삶'은 오는 6월7일까지 계속되며 관람은 무료다. 미리 단체 예약을 하면 작품 해설도 들을 수 있고, 평일 오후 2시에는 상시 작품 해설이 진행된다.

고단한 삶과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전형적인 어머니 모습이 아니라 어머니 자신을 위해 스스로의 삶에 집중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어머니를 살필 수 있기를. 따스한 5월의 봄날, 여자인 어머니와 함께 하는 미술관 산책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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