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무어(Henry Moore·1898년 7월30일~1986년 8월31일)

현대 영국 조각의 개척자로 알려진 그는 요크셔의 캐슬퍼드에서 탄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학금을 받아 교직과정을 이수해 초등학교 교사가 됐으며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자원으로 참전했고 전후인 1919년부터 조각을 배우기 위해 1921년까지 리즈 미술학교에서 배웠다.

1925년 유학생으로서 이탈리아로 여행, 귀국해서는 왕실 미술학교에서 조각을 가르쳤다. 1928년 런던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어 주목을 받았고, 1931년부터 1939년까지 첼시 미술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전후에는 모교인 리스 미술학교의 명예교수로 추대됐다. 1945년 이후부터 그는 미국·에스파냐·이탈리아 및 발칸 제국을 방문했으며,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비롯한 많은 국제전에서 상을 탔다. 또 그의 작품 전시회도 세계 각지에서 개최해 현대 영국 조각에 있어서 제1인자로서의 명성을 얻게 됐다.

현대 영국 조각의 개척자로 알려진 그는 요크셔의 캐슬퍼드에서 탄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학금을 받아 교직과정을 이수해 초등학교 교사가 됐으며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자원으로 참전했고 전후인 1919년부터 조각을 배우기 위해 1921년까지 리즈 미술학교에서 배웠다.

1925년 유학생으로서 이탈리아로 여행, 귀국해서는 왕실 미술학교에서 조각을 가르쳤다. 1928년 런던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어 주목을 받았고, 1931년부터 1939년까지 첼시 미술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전후에는 모교인 리스 미술학교의 명예교수로 추대됐다.

1945년 이후부터 그는 미국·에스파냐·이탈리아 및 발칸 제국을 방문했으며,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비롯한 많은 국제전에서 상을 탔다. 또 그의 작품 전시회도 세계 각지에서 개최해 현대 영국 조각에 있어서 제1인자로서의 명성을 얻게 됐다.

2014년이 가고 새해가 밝았다. 2015년 새해에 거는 기대와 가슴 설렘보다는 담담히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부족한 아쉬움과 돌아갈 수 없는 그리움에 언젠가는 너의 시절과 그 이름을 불러 볼 수도 있음을….

사람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삶의 순수한 가치를 가슴속 깊이 묻어둔다. 촉촉하고 빛나는 감성은 시간이 산화돼 만든 지층아래 묻혀 시들어 가니 간직하고 있지만 기억 못하는 그 가치는 인간됨이고 사람됨의 척도임을 명심해야 한다.

굳어져 가는 심장을 녹이고 이성의 갑옷을 뚫어 체온을 뜨겁게 데워줄 에너지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자아의 정체성을 세우는 데 있으며 그 중심에 '가족'이 있어야 한다. 나는 가족중심의 이기심이 아닌 가족이 기본이 되는 자애를 말하고 싶다.

영국 현대조각의 개척자 헨리 무어의 작품 '가족'은 단단하고 차가운 브론즈의 비정함을 통해 유대감으로 굳건한 가족의 사랑을 오묘하게 표현하고 있어 따뜻하고 은근하며 깊은 사랑을 영원성으로 승화한 듯하다. 재현도 아닌 추상도 아닌 유기적 형상의 조합을 통해 20세기 영국의 현대조각을 이끌었던 그는 새로운 예술세계를 구현한 예술가로서 존경 받았다.  

-권용복 : 서양화가·교사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