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서양화가 양달석

부산 미술을 개척한 1세대 서양화가인 양달석 화백(1908~84) 화백. 목가적인 전원 풍경과 티 없는 동심의 순박함을 그린 작가로 알려져 왔다. 한데, 우연찮게 발견한 57년작 '잠시(156.5×112㎝)'는 기존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천막천 위에 유채로 그린 그림인데, 같은 해 제6회 국전에 입선한 뒤 곧바로 지금의 소장가에게 넘어가 50년 넘게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작품이다. 한여름 농촌의 농부들이 밭에서 점심을 먹고 난 뒤 잠시 휴식을 취하는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다. '소와 목동'으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양달석 화풍으로 지목된 것들과는 판이한 소재와 주제다. 건강한 농부의 삶과 노동의 가치를 당당하게 내세운 작품이다. 서구적인 화풍의 답습, 추상화 경향, 정태적 소재주의에 빠진 당시 화단의 상황에 비춰 볼 때 유례가 없는 독보적인 화풍이다. 평론가 옥영식은 "불화의 평면화법을 쏙 빼닮은 작품"이라고 했다. 곡괭이를 짚고 있는 사내에게서 사천왕상이 언뜻 연상되거나, 함지박을 인 여성의 손마저 불끈불끈한 근육질로 표현한데서 불화의 과장된 인체표현법이 보이는 거다. 화면 전체의 색채미도 불화의 배색을 수용해 계승했다. 분홍과 파랑 색조의 대비가 그것. 옥영식은 "입선작에 그쳤지만 당시 국전의 주류 경향과 다른 양달석 화풍의 완성을 보여주는 인물화로 재평가 받아야 할 작품"이라고 했다.

10월의 시원한 바람속에는 가을의 쓸쓸함이 고여 있다. 완고한 짙은 초록이 빛을 잃어가면서 여름은 저 만큼 물러나고 조금씩 힘을 잃은 갈색들이 자리를 잡아 가니 한가하게 즐길 여유마저 없는 가슴들 조차도 가을의 안온한 감성들을 피해 갈 수는 없으리라.

자연이 그렇듯 진정성이 담겨진 예술품들 역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좋은 그림 한점으로 인생의 무게를 덜어내고 다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속세의 섣부른 찬사나 평가를 초월한 그림은 자연을 닮았다.

시각적 유혹과 이끌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미술은 자극적이고 찰나적인 요소가 오히려 생명이지만
근대를 살아간 이 땅의 많은 예술인들은 고요를 그리워하여 적조했고 깊이에 경의를 보내면서 사의를 중시했다. 10월 거제예술제를 목전에 두고 다시 한번 여산 양달석 선생님의 작품들이 그리워 진다.

글: 권용복 (사)한국미술협회 경남지회 부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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