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구마을 공곶이, 수선화 핀 한적한 갯마을 풍경으로 상춘객 유혹
붉은 동백꽃 융단에 드리운 따스한 햇살 일품, 이달 말이면 꽃대궐

봄나들이 1번지, 그곳에 가면…

공곶이 바닷가의 수선화는 지심도 숲에 핀 붉은 동백꽃과 더불어 거제의 봄소식을 전하는 전령사다. 지난 16일 찾아간 공곶이는 봄기운을 가득 머금은 수선화가 군데군데 샛노란 꽃잎을 수줍게 열고 있었다.

공곶이는 '거제8경' 중 하나로, 섬이 숨겨 놓은 명소다. 다소 외진 이곳은 동백터널과 수선화, 종려나무가 명물로 자리잡고 있다. 사람의 손끝에서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거제도의 봄나들이 1번지라 하겠다.

공곶이는 강명식·지상악 부부가 40년 넘는 세월 동안 피와 땀으로 일군 농원이다. 산비탈 아래 터를 잡고 있는 탓에 작은 야산을 넘어가는 수고를 감수해야 그 속살을 만끽할 수 있다.

예구마을에서 공곶이까지는 20분 남짓 발품을 팔아야 한다. 우거진 숲길은 숨을 할딱거릴 정도로 가파르지만, 길이 잘 닦여져 있어 피로감이 덜하다. 숲길 중턱에 들어선 정자에서 숨 한자락을 내려놓으면 구조라와 와현해수욕장, 예구마을 전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발걸음을 재촉해 산 언덕에 오르면 관광안내판과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풍경이 사람들을 반갑게 맞는다. 내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바다 위로 치솟은 해금강이 저 멀리 아련하다.

고개를 돌리자 최근에 만들어진 천주교 순례길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지세포~공곶이 끝자락 서이말 등대까지 4km 구간을 잇는 또 다른 탐방 명물이다.

해마다 3월말에서 4월 초순이면 공곶이는 꽃의 바다가 된다. 샛노란 수선화와 붉은 동백, 새하얀 조팝나무가 쪽빛 바다와 어우러져 절경을 펼쳐낸다. 수선화가 필 때쯤 눈꽃이라고도 불리는 설유화도 함께 핀다. 샛바람에 어린아이 새끼손톱만 한 꽃잎을 파르르 떠는 모습이 앙증맞다. 아직 바람이 차가운 탓인지 노란색 수선화는 농원의 양지바른 곳에서만 꽃망울을 터트린 상태였다.

공곶이는 10년 전 김유미와 김민종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종려나무숲'의 촬영지가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지역민들만이 아는 곳이었던 까닭에 관광객들은 알음알음 찾아오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공곶이의 역사를 되짚어 보려면 19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처가가 있는 예구마을로 선을 보러 온 강 씨가 아내 지 씨와 마을 뒷산을 산책하다 공곶이를 발견했다고 한다. 쪽빛바다와 몽돌이 가득한 해안, 우거진 숲은 강 씨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결혼 뒤 10년 가량 대도시를 전전하던 강 씨 부부는 1969년 마침내 이곳에 터를 잡는다. 10년 이라는 시간은 공곶이에서 생활할 수 있는 돈을 모으던 시기였다고 한다.

공곶이에 안착한 부부는 산비탈에 계단식 밭을 일궈 꽃과 나무를 심고 가꿨다. 척박한 야산인 탓에 농기계는 이용할 엄두도 못 냈다. 대신 호미와 삽, 곡괭이로 애면글면 가꿨고, 그 덕에 공곶이는 자연미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동백터널 지나 꽃향기에 취하며 몽돌해변으로

공곶이 입구는 동백터널로 돼 있다. 폭 1m, 길이 200m 쯤 된다. 가파른 흙길에는 돌계단을 만들었다. 그 위로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피고 지기를 거듭하는 동백꽃이 떨어져 붉은색 꽃잎 융단을 깔아 놓았다. 터널 초입, 농원 유일의 백동백도 봄볕의 유혹에 못 이겨 꽃잎을 연 상태였다. 동백꽃 융단을 밟고 지나는 터널 속으로 따스한 봄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농원 규모는 총 14만 8761㎡(4만 5000평)이고 경작면적은 3만 3058㎡(1만평)다. 노부부의 손길이 보듬은 나무와 꽃만 해도 50여종에 달한다. 수선화와 동백·종려나무가 주를 이루고, 천리향과 만리향·설유화 등도 각기 제 향기를 낸다고 한다.

동백터널 양쪽 산비탈은 수선화와 종려나무 군락지다. 봄기운에 물이 잔뜩 오른 종려나무가 쪽빛 바다와 어우러져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아직은 다소 이르지만 수선화와 더불어 조팝나무 등이 순백의 꽃을 터뜨리는 4월께면 공곶이는 그야말로 꽃 대궐로 변한다.

동백터널을 나와 돌담과 종려나무숲 사이 오솔길을 따라가면 쪽빛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오솔길 한쪽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봄이 왔다는 소식을 전한다. 눈 앞의 내도가 손에 잡힐 듯하다. 한적한 해변에는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만 들릴 뿐이다.

바닷가는 동글동글한 자갈이 깔린 몽돌해변이다. 이 해변은 서이말등대를 향해 길게 뻗어 있다. 예구마을로 향하는 해안길도 최근에 조성돼 탐방객들의 즐거움을 더 한다. 

바닷가 쪽으로는 몽돌로 담이 둘러져 있다. 멧돼지 등을 막는 방지벽과 방풍벽 노릇을 하는 돌담이다. 노부부의 살림집 앞마당과 돌담을 둘러친 집 주변은 온통 수선화 밭이다. 다소 이른 시기인지라 하얀색 수선화만 피어 있었다. 수선화 재배면적만 6600㎡(2000평)이다. 이달 말쯤이면 밭고랑마다 수선화가 노란 꽃망울을 앞다퉈 터뜨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터다.

애초부터 관광농원으로 조성한 외도 등과 달리 공곶이는 강 씨 부부가 먹고 살기 위해 조성한 삶의 터전이다. 관광지가 아닌 까닭에 입장료가 없다. 매점도, 쉬어갈 벤치도 없다. 그저 사람의 손에 의해 다듬어진 자연만이 사람들을 반길 뿐이다.

공곶이, 그곳에 가면 진정한 생태공원 참 맛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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