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만나러 가는 길
자연이 만든 편안함과 사람의 창조작업이 공존하는 공간

제주 둘레길이 전국적 명성을 얻고부터 시작된 걷기열풍이 최근 몇 년 사이 거제에도 퍼져 이제 걷기는 보편적 일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에 맞춰 거제시도 천혜의 해안절경과 숲길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도록 '거제 섬&섬길'을 조성 중이다.

거제시가 계획한 18개 코스 중 이미 4개 코스가 사업비 15억6400만 원을 투입해 완공했으며 나머지도 예산을 확보 중이거나 이미 진행 중에 있다. 현재까지 완공된 코스를 보면 남부면 쌍근~저구 구간인 무지개 길(8.7km)과 고현동 계룡산 둘레길(18.1km), 옥포항~장목면 외포 구간 충무공 이순신 만나러 가는 길(8.3km), 일운면 와현~지세포 구간 천주교 순례길 1차(3km) 등이다.

이미 조성된 길 중 어느 하나 거제의 정서를 그대로 담지 않은 길이 없겠지만 특히 옥포항에서 장목면 외포마을까지 연결하는 '충무공 이순신 만나러 가는 길'은 상징적 의미가 깊다.

구국(救國) 거제의 이미지가 가장 확실하게 각인돼 있으며 또한 봄이 오는 소리마저 다른 여느 길보다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과 옥포조선소에 대한 부차적 설명은 더 이상 필요없을 것이다. 그러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는 그 길을 2월말께 어느 주말을 택해 답사에 나섰다.

◇봄날 오후, 길을 나서다

이 길에 대한 이용객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이 길은 지난해 7월19일 개통된 이후 7개월여가 지난데 불과하지만 이용객들이 많아 옥포항에서 팔랑포 마을로 넘어가는 길까지 조성된 데크 곳곳이 파손되면서 일부 이용객들로부터 불만이 제기됐다.

데크뿐만 아니라 이를 지탱하는 부분의 철재 빔도 설치 당시 바닷물로 인한 부식을 고려하지 않고 설치돼 일부 이용객들이 안전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걱정에도 불구 한결같은 반응은 "잘 만들었다"는 것이다. 도심과 가까운 곳에서 좋은 경치를 구경하며 바닷가를 걸을 수 있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었다.

옥포항에서 출발해 옥포만을 끼고 데크로 제작된 바닷길을 따라 1㎞남짓 걷다가 숲을 지나고 다시 마을을 지나 도착하게 되는 옥포대첩기념관까지를 이날의 답사코스로 잡았다.

입춘과 우수를 지나 이미 봄의 초입을 멀찌감치 지난 이날은 날씨조차 포근해 걷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을 갖췄다.  그런데 상춘객을 맞이하는 입구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옥포항 주변의 정리되지 않은 어구와 버려진 쓰레기들이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길을 만들고 시민들에게 개방했으면서도 정작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음이었다.

대부분 이 길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만 산책코스로 이용하기 때문에 입구에서 만나는 시각적 불편에 만성이 돼버린 모양이었다. 바닷길로 들어가는 입구 데크에 겹겹이이 쌓인 먼지, 부러진 난관, 파도를 이기지 못해 이미 부식이 진행된 철제 빔과 콘크리트 타설 부위 등.

어느 멋진 봄날 오후를 기대하며 나선 산책길의 첫 인상은 엉망이었다. 하지만 그런 길을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걷고 있었다. 먼저 왔다가 산책을 끝내고 돌아가는 사람이 있고 막 산책에 나선 사람들도 있었다.

연인도 있고, 가족도 있으며 친구들과 함께 나선 무리들도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벽안의 이방인들도 길 위에서 만날 수 있었다. 팬츠에 운동화를 신고 달리는 그를 보며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이국의 정취마저 느꼈다. 이미 옥포는 세계적 도시로 나아가고 있음이랄까.

◇주말에도 들리는 공장의 기계소리

바닷길에서 만나는 옥포만은 옥포항에서 만나던 그것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거대한 배들이 건조되고 있는 옥포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에서 건조되고 있는 다양한 배들을 바닷길을 지나는 동안 만날 수 있었다. 바닷길 쪽의 절경과 대형선박이 건조되고 있는 대우조선 야드가 옥포만을 가운데 두고 경쟁하고 있었다. 자연이 만든 편안함 그대로와 사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창조작업이 공존하고 있었다.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공간은 옥포만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그 사이를 갈매기는 창공의 길을 통해, 배는 바닷길을 통해 왕래하고 있었다. 이런 광경은 '충무공 이순신 만나러 가는 길', 바로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곳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길을 자주 이용하는 이 지역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특이한 광경에 대한 감탄이나 불만이 아니라 그저 일상의 근심이나 소소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걷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지나치면서 어느 순간부터 귓전에 한 가지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는 것을 느꼈다. 기계소리. 틀림없는 기계음인데 묘하게 박자를 갖고 있었다. 주말이지만 공장의 대형 기계들이 돌아가면서 내는 소리들이 건너편 언덕까지 와닿고 있었다.

불쾌하지 않고 오히려 그 속에서 규칙성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그 소리는 우리 경제가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대변한다는 착각을 일으켰다. 주말도 모자랄 만큼 잘 돌아간다는 시위처럼 들렸다.

기계음은 이날 최종 목적지인 옥포대첩기념관까지 이어졌지만 귀에 거슬린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두륨바위 근처에서 팔랑포로 가기 위해 들어선 숲속에서도 기계음은 새들의 노래소리와 조화를 이루며 쉴새없이 상춘객을 따라오고 있었다.

바다를 지나고 다시 숲을 건너 맞닥뜨린 팔랑포 마을. 이미 그곳도 상춘객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잠시 쉬면서 다음코스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옥포항으로부터 1.6km 정도 되는 거리였다.

봄볕이 따사롭게 느껴지는 것은 지나온 길들에 대한 만족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마을까지 따라온 기계음은 봄볕에 누워 오수를 즐기는 고양이의 그렁그렁하는 숨소리와도 닮아 있었다.

이 길을 지나오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기계음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봄날은 간다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충무공 이순신 만나러 가는 길'을 모두 둘러보지는 못했다. 옥포대첩기념관까지만 걸었다.

처음부터 목적지를 그곳으로 정했으며 길을 지나오는 동안 주변 경치를 보면서 춘심(春心)이 일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 팔랑포 마을 선착장 근처에서 낚시를 즐기는 이들과 목적지로 가는 중간 나물을 캐서 이고 오는 촌로(村老)를 보면서 춘심은 설렘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 설렘은 빨리 이 작업을 끝내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빨라진 걸음으로 도착한 옥포대첩기념관 앞 방파제에도 가족단위의 상춘객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봄볕과 함께 낚시를 즐기기 위해 찾은 사람들이었다. 방파제에 선 사람들에게 이미 봄은 깊어 가고 있었다. 바닷바람 때문에 두꺼운 코트를 입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봄을 즐기고 있었다.

"와~ 이런 멋진 풍경이 있어!"

방파제 입구에서 주변 경치를 돌아다 보며 소리 친 어느 상춘객의 말에서 이미 봄은 와 있었다. 아직 겨울이라면 건너편에 보이는 조선소의 강철로 된 대형 플랫폼을 보고 '멋지다'는 감탄사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천혜의 자연과 인간의 창조성이 공존하는 '충무공 이순신 만나러 가는 길'. 그 길 위로 봄날은 이미 깊어만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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