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석 논설위원

▲ 이아석 남해안시대포럼 의장
지난 1991년에 작고한 아베 신따로는 현 아베 일본 수상의 선친이다.

그는 작고하기 전 자신이 한국계 후손이라고 실토한 적이 있었지만 비교적 일본 현실정치의 우익노선을 철저히 지켜 온 정치인으로 기억된다.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로 성장한 현 아베 수상이 보여주는 행보는 꽤 국수주의적이고 기회주의적 극우인사의 전형이다.

사석에서 조상의 뿌리를 회상했던 그의 아버지와는 달리 무장일본의 목표를 향해 자신의 역할에 대한 긍지와 외교적 오만으로 가득 찬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강온 양론으로 주야의 정서를 위장하기 좋아하는 전형적 일본인의 후손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집권한 한중의 동북아 정상들에게 있어 아베 신조는 한심한 무장세력의 선봉이자 국우일본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거나, 영토분쟁을 충동질하는 어떤 언행에도 쉽사리 동요하지 않는 이웃국가들을 보면서 그 장막 안에서 착실히 춘추전국시대의 향수를 뿌려대고 있는 근성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 와중에 무라야마 전 수상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의 정확한 방한 목적이 노회(老獪)한 정객의 선린행보인지, 유유자적한 황혼의 외유인지, 소신을 지닌 무라야마 담화의 실체를 확인하는 과시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외견상 위안부 생존자들을 향한 대화나 태도, 현 일본 내각을 향한 평가를 되새기면 아베 신조와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일본인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무라야마 담화는 비극적인 한일 역사에 있어 눈에 띌 만한 자극제는 아니었다. 무라야마 담화가 담고 있는 역사 인식의 정도는 당연하고도 평범한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의 선량함이 있다고는 하나 그들의 전쟁범죄가 낳은 반인륜적 폐해와 후유증에 대해 어떤 해결책도 없는 문구로 일관했다.

적어도 그런 세대의 일본 정치인은 전쟁의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면서 일본재건의 안전을 위해 어떤 제스처를 써야 하는지를 아는 수준이다.

누군가 뉴스거리에서 드러나는 아베와 무라야마의 서로 다른 언행을 두고 수용의 호불호를 함부로 판단했다면 이는 경박하고 어리석은 소행일 수 있다.

일본이라는 정부를 담당하는 능력의 표현이 서로 다를 뿐, 그들이 기여하는 역사적 힘과 흐름을 국수적 과제로 이끄는 요령은 같은 이치다.

'때리고 어루만져 주는' 정치적 술사가 세대를 두고 다르게 나타나는 차이에서 그들의 역사관이 다르다거나 국가 간의 위상에 변화를 줄 아무런 개연성은 의미 없는 수사어다.

나라 간이나 개인 간의 의사 표현이 모두 말로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그런 말이 진정성을 갖지 않으면 또 다른 은닉무기로서의 말이 될 뿐이다.

아베의 뿌리가 거론되고, 무라야마가 친한인사의 표정으로 다녀가고, 고노담화의 해석을 두고 한미일의 신경전이 계속되는 동안 여전히 변하지 않은 사실은 일본이 점점 무장헌법을 노골화하고 영유권 침범의사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 뿐이다.

비록 해당 자치단체에 의한 행사라고 하지만 정부고위직을 파견한 이 행사와 동경거리에서의 극우단체 시위는 오늘의 일본이 어디로 가고 있고 무슨 할 것인지를 대변하는 예고편일 수 있다.

물론 여기에 관한 한 우리나라나 중국을 비롯한 어떤 나라도 과거 시절처럼 '원숭이에게 할키고 찢기는' 일을 당하고 있을리 없다.

그런 시절과 좀 달라졌다면 당시 전쟁 당사자였던 미국이 오늘의 일본을 울타리로 이해를 저울질하고 있고, 그 힘을 등에 업은 일본의 교활하고도 가증스러운 간계가 끊임없이 심기를 건드릴 세월이 계속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지금 필요에 따라 한통속이 되고 신뢰를 뒤집는 미국을 두고 한탄을 하기에는 이르지만 미국이 아니라 그 어느 국가도 이런 일본을 앞잡이로 안보를 위협하는 술책에는 냉정하고 단호하게 경고를 보내야 한다.

'고양이 앞의 쥐' 신세였던 처지에서 고양이 흉내를 내고 다니다가 언제든 고양이 뒤에 숨을 수 있다는 표정을 가진 쥐새끼가 지금 역사의 상처를 쥐어 뜯고 있다. 용서할 수 없지만 언제 생포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밖의 쥐를 잡는 일보다 더 위험한 우리 자신의 안보 경각심을 먼저 챙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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