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재선충병 방제현장을 가다…지난 21일 강추위·비탈진 작업 장소에도 아랑곳없이 작업 계속

아찔하고 위험한 순간 곳곳서 연출, 안전에 유의하며 작업 강행
삼성 봉사단도 작지만 힘 보태…다음 주께 군 병력 투입 예정

살갗을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이 매섭던 지난 21일 오전 8시30분께. 연초면 한내리 인근 야산에 2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두꺼운 외투와 안전화, 코팅장갑 등으로 중무장한 이들의 입에서는 새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간단한 체조로 몸을 푼 이들은 곧바로 경사가 제법 심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낙엽과 잔가지 등이 뒤섞인 바닥은 자칫 방심하면 곧바로 미끄러지기 십상이었다. 야산 곳곳에 초록색 비닐 무더기들이 눈에 띄었다. 조심조심 경사면을 오른 이들에게 오늘의 작업장이 나타났다. 재선충 방제작업이 한창인 곳이다.

작업반장이 능숙하게 지시를 내린다.

"어제 작업을 이어 가겠습니다. 베어낸 소나무들을 잔가지 하나라도 남김없이 한 곳으로 모아야 합니다. 경사가 심한 지역이니 안전에 유념하며 작업을 진행해 주십시오."

우렁찬 작업반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작업자들의 발걸음이 분주해 진다. 삼삼오오 짝을 이뤄 베어 놓은 소나무들이 쌓여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산비탈 곳곳에 쌓여있는 소나무는 작은 가지에서부터 사람 허리둘레에 가까운 것까지, 크기도 제각각이다.

"굵기가 2㎝가 넘는 잔가지들도 모두 한곳에 모아 파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잔가지에 서식하는 재선충 때문에 방제작업이 효과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기계가 아닌 사람의 힘이 꼭 필요한 이유가 소나무 잔가지까지 빠짐없이 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작업장을 찾은 거제시 산림녹지과 김규승 방제계장의 설명이다. 작업자들의 동선 체크가 끝나자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우선적으로 둘레가 큰 나무를 비탈면으로 굴려 한 곳으로 모았다. 소나무 파쇄를 위해 한 곳에 소나무를 모으는 산물수집 작업이다. 작업지역은 비탈이 심해 대형 기계가 진입하기 어려워 기계진입로 인근에 나무를 모아야 한다. 작업자들이 아름드리 소나무를 세운 뒤 비탈면으로 밀었다.  

'우지지직 쿵쿵쾅' 굉음을 내며 소나무들이 산비탈을 굴러갔다. 소나무가 구르자 돌멩이와 흙무더기까지 합세했다. 희뿌연 먼지가 이내 시야를 가렸다.

"아랫쪽 사람들 조심하시오"라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계속되는 작업에 영하를 바라보는 추위에도 작업자들의 이마와 코끝에 땀방울이 맺혔다. 잠깐 숨을 고르는 시간. 작업자들의 머리와 어깨에서 아지랑이 같은 새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오전 10시 쯤이 되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작업장에 합류했다. 삼성중공업 산울림봉사단(단장 김성태) 단원들이었다.

재선충 방제작업을 위해 휴일도 마다한 채 작업장을 찾은 것이었다. 1년 전부터 재선충 방제 홍보활동 등을 하고 있다는 산울림봉사단원들은 해상 시운전이 없는 주말이면 재선충 방제활동과 관련한 봉사에 나선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주로 면 지역에서 홍보활동에 주력해 왔습니다. 거제면을 기점으로 전단지를 뿌리고 경로당, 나무를 때는 가정집 등을 찾아다니며 재선충 방제에 대한 설명을 일일이 해왔습니다. 이젠 직접 작업장을 찾아 방제작업을 돕는 일에도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일하는 형태는 다르지만 육체적인 면은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다들 안전에 주의해 작업을 해나가야죠."

산울림봉사단에서 대외협력부장을 맡고 있는 정유현 씨가 말했다. 산울림 봉사단은 작업장에서도 다소 일하기 수월한 곳으로 배정됐다. 비탈이 심하지 않은 곳에서 크지 않은 나무와 잔가지를 한곳으로 모으는 일을 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이지만 작업에 임하는 자세는 열정적이었다.

오전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태양이 머리 위로 떠오르자 작업자들이 제법 널찍한 공간으로 모였다. 이들의 손에는 집에서 싸온 도시락이 들려있었다. 추운 바람 속에서 먹는 점심이었지만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며 온기를 나누고 허기를 채웠다.

오후 작업이 시작되자 소나무를 베는 전기톱의 요란한 소리가 야산을 가득 채웠다. 인근 주민들이 땔감으로 쓰기 위해 베어낸 소나무를 가져가는 일이 수시로 일어나기 때문에 베어낸 나무는 잘게 자르지 않고 한동안은 그대로 놔둔다고 한다.

전기톱을 가진 작업자가 이곳저곳을 누비며 절단작업을 진행했다. 족히 10여m가 넘는 긴 소나무들이 잘게 잘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전기톱 작업이 마무리되자 작업자들이 오전 내내 했던 작업을 반복했다. 작업자들이 힘을 쓸 때마다 산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나무들이 계속 이동했다. 굵은 나무둥치가 굴러가는 곳에 잠시 머물렀던 작업자가 화들짝 놀라 자리를 떴다.

"정신 차리고 똑바로 하세요. 나무가 굴러 내려오는 것을 본 뒤에는 늦다고 몇 번을 이야기해야 합니까. 굴러가다 어디로 튈지도 모르니까 위쪽으로 빨리 올라오세요. 큰일 납니다."

아찔한 순간이 발생하자 작업반장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수십 ㎏이 넘는 소나무에 부딪히면 단순 골절상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후작업 속도에 박차를 가한다. 소나무를 한곳으로 모으는 단순한 일이지만 일일이 사람 손이 닿아야 해 작업량이 만만치 않다. 세찬 바람 속에서도 작업자들의 얼굴이 땀으로 흥건해 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힘든 일이지만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위험한 작업이지만 안전교육을 철저히 숙지하고 작업지시에 따라 일을 하다보면 일종의 요령이 생기지요. 비탈이 가파른 곳에서 일을 하다보면 힘든 부분이 많지만 안전에 유의하면 크게 위험한 부분은 없습니다. 조금만 몸을 움직이면 땀이 나기 때문에 웬만한 추위는 신경 쓸 겨를도 없지요."

베테랑 여성 작업자인 백태선(56·거제면) 씨의 말이다.

겨울은 낮이 짧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야산에 어둠은 빨리 찾아왔다. 작업자들의 작업속도도 덩달아 빨라졌다. 모두가 남은 힘을 짜내며 하루치 작업량을 채우느라 분주했다.

"이제 그만하고 내려갑시다. 나머지는 내일 계속합시다."

작업반장의 목소리에 작업자들이 한곳에 모였다. 어둑해진 풍경 속에서 연신 뱉어내는 하얀 입김이 작업의 강도를 말해주는 듯했다. 시계를 들여다봤다. 오후 5시30분이 넘었다.

"작업인원에 비해 물량이 너무 많아 힘들 때가 많습니다. 여름철에는 더위와 모기 때문에 더욱 고되죠. 추위는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무거운 나무를 들고 옮기는 작업을 반복하기 때문에 어깨와 무릎, 허리 등에 부담이 많이 갑니다. 근육통을 달고 살 수밖에 없지요.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지만 확산속도가 너무 빨라 가슴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다른 지역에 놀러 가더라도 재선충이 번져있는 산에 눈이 먼저 갑니다. 아무튼 지역의 재선충을 박멸한다는 각오로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내 고장을 지킨다는 생각에 잠시도 소홀할 틈이 없습니다."

올 1월부터 재선충 제거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김영돌(65·동부면) 씨가 말했다.

"군 병력 투입이 혹한기 훈련 때문에 조금 늦어지고 있지만 방제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음 주부터 군 병력이 방제작업에 투입되면 작업속도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민·관·군이 협력해 재선충 없는 거제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만큼 시민들의 관심과 협조를 거듭 부탁드립니다."

재선충 방제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거제시 권태민 산림녹지과장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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