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달석 화백

▲ 양달석 화백

양달석 화백

△1908 10.18 경남 거제군 사등리 성내 출생 △1924(17세) 통영보통공립학교 3학년 보궐시험합격으로 전학 △1925(18세) 전조선미술최고상 수상 △1926(19세) 진주국립농업학교 입학 △1928(21세) 일본 오오사카신문사 주최 전 일본중등학교 미전에 <농가>로 특선 △1932(25세) 조선미술전람회(11회) 입선 △1934(27세) 거제군 사등면 면서기 봉직(3년) △1934, 39년 조선미술전람회(17·18회) 입선 △1960(53세) 개인전 동화화랑(스칸디나비아의사 12점 사감) △1962(55세) 제1회 경상남도 문화상 수상 △사회유공표창(도지사) △1972(65세) 한국근대미술60년전 출품(국립현대미술관) △1973(66세)한국현대미술: 한국현역작가 100인전(국립현대미술관) △1983(76세) 현대미술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 △1984(77세) 타계

부산 미술을 개척한 1세대 서양화가인 양달석 화백. 목가적인 전원 풍경과 티없는 동심의 순박함을 그린 작가로 알려져 왔다. 한데 우연하게 발견한 57년작 '잠시(156.5×112cm)'는 기존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한여름 농촌의 농부들이 밭에서 점심을 먹고 난 뒤 잠시 휴식을 취하는 그림이다. '소와 목동'으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양달석 화풍으로 지목된 것들과는 판이한 소재와 주제다. 건강한 농부의 삶과 노동의 가치를 당당하게 내세운 작품이다.

서구적인 화풍의 답습, 추상화 경향, 정태적 소재주의에 빠진 당시 화단의 상황에 비춰 볼 때 유례가 없는 독보적인 화풍이다. 평론가 옥영식은 "불화의 평면화법을 쏙 빼닮은 작품"이라고 했다. 

곡괭이를 짚고 있는 사내에게서 사천왕상이 언뜻 연상되거나 함지박을 인 여성의 손마저 불끈불끈한 근육질로 표현한데서 불화의 과장된 인체표현법이 보이는 거다. 화면 전체의 색채미도 불화의 배색을 수용해 계승했다. 분황과 파랑 색조의 대비가 그것이다.

<본 내용은 지난 10일 거제미술협회에서 주최한 거제의 문화인물 양달석 세미나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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