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충청연합회, 다양한 활동 통해 거제사랑 실천
유대강화 및 돈독한 친목으로 회사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

구국의 후예들, 다시 옥포로

"1592년 6월16일(음력 5월7일) 정오, 옥포항에 정박해 옥포를 침략하고 있던 일본군을 공격해서 모두 26척을 침몰시켰으며 포로들을 구해냈다. 같은 날 오후 웅천현의 합포 앞바다에서 큰 배 한 척을 만나 이 또한 격파했다.

전투는 17일(음력 5월8일)에도 계속됐으며 적진포에서 왜선 13척을 침몰시켰다. 이때 조선 조정은 이미 한양에서 철수해 평안도로 후퇴하고 있었다. 27일(음력 5월18일)에는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이 임진강 방어에 실패해 조선땅의 대부분은 일본군의 침략으로 유린되고 있었다."

구국의 영웅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임진왜란 최초의 승리를 안긴 곳 옥포. 하지만 옥포의 승리를 시작으로 거듭된 조선수군의 승전보는 충무공을 오히려 슬픔에 잠기게 만들기도 했다. 그의 연승에 앙심을 품은 일본군이 친가가 있는 충청도 아산을 보복공격했기 때문이다.

일본군의 공격에 끝까지 항쟁하던 셋째 아들 이면(李·1577년~1597년)은 스물한살의 꽃다운 나이에 전사했다. 셋째 아들을 잃은 슬픔을 난중일기를 통해 절절히 읊조렸던 충무공은 그러나 망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전쟁터로 나아가 조선을 구했다.

이처럼 충무공 이순신으로 인해 임진왜란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던 옥포는 이제 조선도시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으로 인해 세계를 향해 뻗어가고 있는 도시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로부터 400년의 세월이 흘러 구국의 영웅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충청도에서 사람들이 옥포로 다시 내려왔다. 구국의 후손들이 이번에는 전쟁의 영웅이 아닌 경제의 주역이 되기 위해 내려온 것이다.

尙有十二

충청도 사람들에겐 좋은 이미지와 나쁜 이미지가 각각 하나씩 있다. 먼저 나쁜 이미지는 느리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말이 느리기 때문에 여기서 파생된 또 다른 나쁜 이미지 하나가 게으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말이 느리기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이러한 오해의 발생 원인을 좋은 이미지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충청도 사람하면 떠오르는 단어인 '양반'이다.

양반이기 때문에 몸가짐이 단정하고 여유가 항상 넘쳐 침착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말이 느리게 나온다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양반이라는 이미지는 어쩌면 오늘날을 살아가는데 적합지 않을 수도 있다. 권위적이고 독선적일 수 있다는 오해 때문이다.

이처럼 양면의 평가가 공존하는 충청도 사람들은 거제에서 돈독한 정을 쌓아가고 있다. 400여 년 전 나라를 구했던 충무공의 비장함은 아니지만 이 나라 경제를 떠받드는 주역으로서의 당당함으로 살아가고 있다.

대우·삼성 등 조선업이 거제에서 시작되면서 직장을 찾아 거제로 내려온 충청인들은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고 향인들간의 우정을 더 깊이 쌓기 위해 향우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대우조선해양 충청연합회(회장 이영수)다. 400여 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는 이 단체는 충청도 출신들 중 대우조선해양과 관련된 기업이나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었다.

이순신 장군이 첫 승전고를 울린 옥포만에서 400여 년이 지난 지금 호국의 후예들이 다시 만난 것이다.

이들은 올해 '제27회 충청인 한마음축제'를 개최했을 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향인단체이다. 다양한 먹거리와 정겨운 고향 사투리가 어우러진 한마음축제는 우의를 다질 수 있는 다양한 체육행사와 함께 매년 열리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회칙이다. 최초 모임이 시작될 때 만들어진 이후 지난 1987년 개정을 시작으로 상황에 맞춰 개정을 거듭해온 이 단체는 2005년 회칙을 개정하며 기존 3000원이던 회비를 5000원으로 인상했다. 또한 2008년 불우이웃돕기 행사비용 마련을 위한 행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했으며 2012년에는 각종 경조사를 챙기기 위해 회비를 8000원으로 인상했다.

대우조선해양 충청연합회는 △재거충청향우회 △옥포충청향우회 △신현충청향우회 등 세 단체가 연합회를 구성하고 있으며 삼성충청향우회와도 교류를 갖고 있다. 특히 충청연합회에서 주목할 부분은 그들의 회칙이 부칙을 제외한 12개조로 구성됐다는 점이다. 여기서 '12'라는 숫자는 그들이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연계되고 있다. 그들이 충무공의 후예임을 입증하는 장면이다.

충무공은 연전연승하던 당시 왜(倭)와 명(明) 그리고 조정의 일부 간신들로 인해 모함을 받고 백의종군하는 불행을 딛고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된다. 하지만 원균 장군이 칠천량해전에서 왜에 참패해 수군이 거의 전멸직전에 이른다. 이를 감안해 조정에서 바다를 버리고 육지에서 전투할 것을 명하지만 충무공은 이 한마디로 자신의 결의를 분명히 밝힌다.

"상유십이(尙有十二) 순신불사(舜臣不死).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고 이순신은 죽지 않았다."

이 12척의 배로 이순신 장군은 결국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다. 이순신 장군의 승리는 애민정신이 바탕이 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여기 충청연합회의 '12'라는 숫자 안에도 그들이 충무공의 후예임을 입증하는 대목이 나온다. 제2조의 목적을 보면 "본회의 목적은 회원 상호간의 유대강화 및 친목을 돈독히 하고 회사발전과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함에 그 목적이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舜臣不死
#1. 작은예수의집
지난 4월20일과 7월21일, 충청연합회 회원들은 연초면 연사마을에 있는 장애인 복지시설 작은예수의집을 방문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시설을 둘러보고 노후된 것을 새롭게 고치고 페인트칠을 하는 한편 새롭게 사다리를 설치하고 빨래건조대도 마련했다. 어두워 불편했지만 기술이 없어 설치하지 못 하던 조명도 달고 빗물이 건물 내부로 스며들지 않게 빗물유입방지막도 설치했다.

또 시설에 생활하는 장애인들에게 불편을 줄 수 있는 구조물을 철거하고 깨끗이 정리하는 등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했다.

"평일임에도 불구 야간작업을 마치고 이렇게 시설을 정리정돈 할 수 있게 도와 준 충청연합회 회원분들께 진정으로 감사드린다. 그동안 불편했지만 고쳐줄 사람이 없어 방치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도움을 주셔서 생활에 큰 불편을 덜게 됐다."

시설장의 이 한마디에 회원들은 "피로가 확 풀린다"고 말했다.

#2. 옥포종합운동장
지난 9월29일 옥포종합운동장에서는 '제27회 충청인 한마음축제'가 진행됐다. 충청인연합회원 400여 명과 그 가족들을 위한 이 축제는 '장사진'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정도로 많은 향인들이 참석했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각각 팀을 나눠 체육대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30여 개의 천막이 모두 사람들로 빼곡히 들어 찬 행사장은 동네 주민들에게도 이례적인 볼거리를 제공했다.

본부석 한편에는 가득 쌓인 경품이 자리잡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는 행사에 보탬이 되도록 십시일반 후원을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있었다.

각종 식순이 이어지고 드디어 점심시간. 각종 먹음직한 음식들로 채워진 식탁은 각종 이야기와 함께 웃음꽃이 쉼 없이 피어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끄러운 응원가. 이들이 진정 양반의 고장에서 온 사람들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열렬한 응원은 고스란히 그들이 열정적인 사람들임을 대변하고 있었다. 족구, 피구, 배구, 단체줄넘기, 계주 등 여럿이 어울려 진행되는 경기를 통해 우정은 더욱 돈독해지고 있었다. 운동장 다른 한편에서는 맥주 빨리마시기, 풍선날리기 등 다른 행사에서 볼 수 없는 재미있는 경기들도 진행되고 있었다.

축제의 대미는 노래자랑 차지였다.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사랑하는 한민족의 전형이었다. 마지막은 후원자들이 보내 준 경품잔치의 차지였다. 당첨의 순간 지르는 '환호성'이 결코 속되지 않은 순수한 모습이었다.

거북선처럼 당당하게

충청도 사람들이 거제에 정착한 것은 생계를 위해서다.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삶을 영위하는 방편으로 거제를 찾았지만 지금의 대우조선해양 충청연합회는 400여 년 전 충무공 이순신이 나라를 구한 것 못지않은 일들을 하고 있다. 충무공이 큰 틀의 구국을 했다면 이들은 작은 생활 속의 구국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서로 우애를 다지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봉사하는 것은 충무공의 애민정신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매월 정기적인 목욕봉사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또 크고 작은 모임을 통해 지역발전에 기여하려는 다양한 시도는 이들 또한 거제사람이라는 의미가 되고 있다. 이들은 충청연합회를 통해 거제를 위한 더 큰 사랑을 꿈꾸고 있었다.

충무공이 거북선을 타고 거제의 바다를 누비며 이 나라를 구했던 것처럼 이들의 작은 실천 또한 '크게 구한다'는 거제의 밀알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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