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석 칼럼위원

▲ 이아석 남해안시대포럼 의장
지금도 인천에 가면 알만한 사찰에 주지스님이 한 분 계신다. 본시 특수부대의 지휘관으로 오랜 군 생활을 하신 경륜을 가진 분인데 전역 후에 자신과 함께 생사고락을 했다가 유명을 달리한 분들을 위해 염불하기 위한 생활을 자처한 분이다.

그 분은 고령에도 대단한 애국심과 긍지로 해외를 드나들면서 유해 송환에 앞장 서시거나 해외 도난 문화재들을 귀환시키기 위해 소재를 찾아다니시는 열성을 보였다.

필자도 십 여년 전부터 몇 차례  그 분과 함께 대마도에 있는 불상 소환에 참여했던 일이 있었다. 아마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어느 시기에 해안으로부터 도적질에 나선 일본인들이 충남 부석사에 있던 국보급 불상을 가져다 놓은 것을 알고 반환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후에 대마도 관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지방문화재로 지정해 버려서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는데 지난 해 그걸 대담하게 운반해 온 분이 있어 깜짝 놀란 일이 벌어졌다. 당연히 주인이 있는 땅으로 가져 온 것이지만 절차상의 문제가 생긴 것이다.

대마도에는 지금도 해적질로 약탈해 간 우리나라의 수많은 보물들이 자물쇠로 잠긴 채 신사라고 받드는 그네들의 전통 창고들에 여기저기 숨겨져 있다.

달리 표현하면 당시는 타국도 아닌 한반도 남해의 섬 구석구석에다 그저 숨겨 놓았던 해적들의 소행이 국적을 모르는 대마도의 위상 때문에 지금은 일본국에 속해 있다고 여겨야 옳은 일이다.

한반도의 남해안에서 대마도는 제주도 다음으로 큰 우리의 섬이다.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대마도는 엄연히 한반도에 속해있고 지배를 받았던 영토다.

지금 근세에 이르러 엉뚱하게도 울릉군에 속한 독도를 시비하는 사태가 생겨난 가운데 당연히 수복되어야 할 대마도에 대한 수복의지가 실종되고 있다. 지금 대마도 사람들이 그들의 역사적 사료라고 전시해 놓은 이즈하라 현립 박물관이나 미네 민속박물관의 모든 전시품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것이다.

심지어 미네 면사무소에서 그 전시안내를 담당하고 있는 안내 관리조차 신라계열의 성을 가진 후손이며, 모든 민속품이나 심지어 전설까지도 한반도와 관련된 것들로 채워져 있다.

한반도를 집권했던 여러 군소국가의 정권들이 때로는 부강한 적도 있었지만 무력하고 나태하여 제 땅을 잃고도 찾지 못하는 역사적 수치가 있어 차마 조상들을 향한 망언이 두려워 버려두었던 것일까.

독도가 급한 일이 아니라 대마도를 수복해야 한다. 일의 선후치고는 한참이나 거꾸로 가는 처사가 지금껏 방치되고 있었다는 반성과 함께 당연히 찾아야 할 우리의 영토가 대마도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1800년 전쯤, 가야의 멸망을 분으로 삭히며 대마도 서해안에 짐을 풀었던 신모(神母)가 결국은 일본국의 황실을 창건했다는 사실은 지금의 일본 천황이 엄연하게 실명으로 기록해 놓은 표식이 있다.

그것도 대마도 서해안에 '나의 조상 할머니가 오르신 곳'이라고 쓰고, 마을 사람들은 나름대로 신화의 마을이라고 위장해 놓았다. 항해술이라고는 거의 원시적 수준이었을 당시 가야의 신모가 굳이 대마도를 다시 벗어 나 후쿠오카로 향한 것은 당시부터 대마도가 일본 땅이 아니고 타국으로 가는 남해안의 거점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후 신라인들이 간혹 거주해 온 흔적들이 있고 고려 말부터 아예 행정적으로 관할하기 위한 도주(島主) 설치와 해적소탕에 나선 기록들이 있다. 지금 이런 우리 고유의 영토를 어느 세월엔가 손 놓아 버리고 타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독도 분쟁에 관한 우리 정부의 당연한 대응을 감안한다면 지금부터라도 대마도를 수복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마땅하다.

필요하다면 비록 투쟁력이 미약한 처지지만 바로 이웃섬인 이곳 거제에서 '대마도수복위원회'를 결성해서 그 의지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늘 수세에 몰려 영토공세에 마지못해 응하거나 적반하장의 군사적 문화적 침공을 뻔히 알면서도 분쟁이니, 수호니, 하는 소아병폐적 대비를 일삼을 것이 아니라 이제는 당당하게 우리의 것을 다시 되찾는 수복의 의지를 보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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