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포럼에서 "우리사회는 죄를 지었고, 지금의 자본주의는 빈궁의 낙오자를 껴안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물적·제도적 지원,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이루어진 부를 부자들이 독점해 왔고, 분배의 실패로 우리사회는 빈곤층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줘 반기업 정서는 극에 달했다고 볼 수 있다.

재벌그룹 및 부자들의 해외 비자금은닉, 횡령 등의 사태에서 국민은 분개했고, 정부수사를 반신반의하며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자유시장 경제에서는 부가 부를 축적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만 세금탈루, 해외은닉 재산, 횡령 등에 대해 정부가 성역 없는 수사로 조세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만이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있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지 않을까 싶다.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의 시작이 또한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경제정책이어야 하기에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는 수사를 해 주기를 촉구해 본다.

오늘 천년송이 이 땅의 돈 많은 부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기부에 대한 것인데 서두가 길다보니 다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다음기회를 기약하고, 오늘은 왜 부자들이 기부를 하고도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지탄의 대상이 되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주(No bless oblige)'라는 말을 잘 알 것이다. 개인적으로 천년송은 이 말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 말은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는 의미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혜택을 베푼다는 기부문화의 시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돈 많은 자들이 자기들의 지위를 이용하기 위해 동냥 주는 식의 한푼두푼 기부로써 부자의 지위유지 수단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부자들의 기부가 자기들의 생색내기용에 불과하기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나 빈곤층들의 반기업 정서나 반부자 정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권력들에서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부자들이지만 진정으로 존경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사회공헌 차원에서 많이 베풀었는데도 지탄의 대상이 돼 아니함만도 못한 것이 되었으니 어찌하리오. 이 문제는 다음 글에서 고민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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