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호 칼럼위원

▲백영호 변호사
대법원은 지난 16일 종래 혼인관계가 실질적으로 유지되는 한 아내에 대해 강제적인 성관계를 한 남편을 강간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한 판례를 변경했다.

그 내용을 보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위 헌법 규정이 정한 개인의 존엄과 가치·양성의 평등·행복추구권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혼인한 부부사이의 성생활에서도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보장되고 보호돼야 한다. 비록 부부사이에 은밀히 이뤄지는 성생활이 국가의 개입을 극도로 자제해야 하는 영역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위 헌법 규정의 적용이 배제되는 성역(聖域)일 수는 없다.

형법 제297조는 부녀를 강간한 자를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형법이 강간죄의 객체로 규정하고 있는 부녀란 성년이든 미성년이든 기혼이든 미혼이든 불문하며 곧 여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형법은 법률상 처를 강간죄의 객체에서 제외하는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문언 해석상으로도 법률상 처가 강간죄의 객체에 포함된다고 새기는 것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 부부 사이에 민법상의 동거의무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폭행, 협박에 의하여 강요된 성관계를 감내할 의무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없다. 혼인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포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없고, 성적으로 억압된 삶을 인내하는 과정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혼인과 가족생활의 내용, 가정에서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변화, 형법의 체계와 그 개정 경과, 강간죄의 보호법익과 부부의 동거의무의 내용 등에 비춰보면 형법 제297조가 정한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에는 법률상 처가 포함되고, 혼인관계가 파탄된 경우뿐만 아니라 혼인관계가 실질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경우에도 남편이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을 가하여 아내를 간음한 경우에는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남편의 아내에 대한 폭행 또는 협박이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른 것인지 여부는, 부부 사이의 성생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가정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최대한 자제하여야 한다는 전제에서, 그 폭행 또는 협박의 내용과 정도가 아내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정도에 이른 것인지 여부, 남편이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 혼인생활의 형태와 부부의 평소 성행, 성교 당시와 그 후의 상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3. 5. 16. 선고 전원합의체 판결 부부강간 사건).」라고 정상적인 부부 사이에도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정부는 2012년 12월 18일 형법개정을 통해 변화된 시대 상황을 반영하여 다양화된 성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성폭력 범죄의 객체를 '부녀'에서 '사람'으로 변경 △추행·간음 목적의 약취·유인·수수·은닉죄 및 강간죄 등 성범죄에 관해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삭제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해 구강·항문 등 신체의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항문에 신체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유사 강간행위를 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는 유사 강간죄 신설 △실효성이 미약하고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훼손하는 혼인빙자 간음죄를 폐지해 오는 6월18일부터 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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