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에 하아얀 꽃비가 내리면
대금산 붉은 꽃잎 사이로 님이 찾아들고
푸른바다 보이는 양지암에서 시름을 잊는다

봄이다. 어느 시인의 비유처럼 고양이 같은 계절이다. 변죽이 심한 고양이의 성격처럼 잠시 따뜻했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다시 고양이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털처럼 날씨가 바뀌어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계절이 또한 봄이다.

지난 며칠 따뜻한 날씨를 시샘이라도 하듯 꽃샘추위가 찾아왔지만 이내 무거운 코트가 부담스러워지는 날씨로 바뀌었다.

늘 이 계절이 돌아오면 생각나는 첫 단어는 '꽃'이 아닐까. 따뜻한 날씨에 춘심(春心)을 못이긴 상춘객들이 하나 둘 꽃구경에 나서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특히 오는 7일 열리는 '대금산진달래축제'는 꽃구경의 백미가 될 것이다. 이외에도 거제는 발길 닿는 곳곳이 꽃으로 만개해 있다. 최근 몇년동안 길가의 가로수들이 대부분 벚꽃으로 바뀌면서 봄이면 꽃비를 뿌리지 않는 곳이 없다. 또 길가에 조성된 화단도 형형색색의 꽃들이 상춘객들을 반기고 있다.

이에 즈음해 본지는 가장 꽃구경하기 좋은 장소 세 곳을 둘러봤다. 물론 객관적인 판단이 아니라 순전히 필자의 주관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대체로 거제시민이면 이를 공감할 것으로 본다.

필자가 찾은 곳은 진달래로 대표되는 장목면 대금산, 튤립이 예쁘게 피어나는 능포동 양지암 조각공원 일대, 그리고 거제의 봄을 대표하는 곳 중 하나인 공고지 등 세 곳이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봄을 대표하는 꽃은 누가 뭐래도 진달래다. 벚꽃이 가로수로 식재되면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오래 전부터 봄에 가장 사랑받아 온 꽃은 진달래였다. 오죽하면 '참꽃'이라는 예명으로 불렀을까.

진달래를 보기 위해 7일로 예정된 축제에 앞서 대금산을 찾았다. 연초를 지나 이목댐 주변으로 난 길을 따라 명동으로 들어서자 진달래보다 먼저 벚꽃이 만개해 반긴다. 간간이 꽃비를 뿌리기도 한다. 꽃빛이 밝고 화사하다. 줄지어 늘어선 풍경이 그림 같다.

그림같은 길을 뒤로 하고 대금산 초입에 들어서면 은자(隱者)들이 살 것 같은 고즈넉한 마을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진달래를 만나기 위해서는 걷는 게 좋다. 조용한 마을의 정적을 깨뜨릴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느린 걸음으로도 30분이면 정상에 닿을 수 있기 때문에 걷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다.

도착한 정상부근은 이미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상춘객들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진달래를 보기 위해 분주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꽃보다 화려한 등산복을 입은 사람에서부터 아직 겨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노 신사는 무거운 코트를 입은 채 그렇게 진달래를 찾아 들었다.

수천년을 살아도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있을 때는 잎을 보지 못하는 상사화. 진달래도 그 상사화를 닮았다. 꽃과 잎이 함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월은 가시는 님을 항상 그리워하기 위해 걸음마다 그 꽃을 뿌렸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전통정서인 한(恨)이 그 속에 서렸음인지 꽃빛은 붉지만 정열적이지 않다. 하지만 은근히 화려하다. 그렇다고 분에 넘치지 않는 빛깔은 다소곳한 한복같은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연분홍 한복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꽃을 사랑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일까. 대금산을 찾은 상춘객들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이 꽃을 가까이에서, 그리고 좀 더 오래 간직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 댄다. 휴대폰이 카메라를 대신하고 있다. 문명의 이기를 톡톡히 누리면서 자연 또한 벗 삼는 묘한 풍경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경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축제가 시작될 쯤이면 오히려 늦을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앞선다. 이미 상춘객들을 위해 진달래가 얼굴을 치켜들었기 때문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 꽃이 져버리고 나면 다시 만나기 위해 일 년을 꼬박 기다려야 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다가 보이는 공원 벤치에서

꽃이 없는 봄은 봄이 아니요, 사람이 반기지 않는 꽃은 꽃이 아니다. 봄에는 꽃이 있어야 하고 꽃은 봐 줄 사람이 있어야 아름답다. 대금산 진달래를 만나기 위해 산을 올라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었다면 이 꽃들은 가볍게 산책하면서 만날 수 있다.

능포동 양지암조각공원과 장승포몽돌개로 향하는 주변의 산책로는 봄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조각공원 입구에 위치한 장미공원에는 튤립이 형형색색으로 피었다. 평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산책 삼아 꽃구경에 나섰다. 벽안의 이방인들도 아이들을 대동하고 튤립을 감상하러 왔다. 간간이 아베크족들도 보인다.

꽃을 보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이 있고 그냥 바라보며 기억 속에 저장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이들도 있다. 어느 방법이 옳은지 알 수 없지만 저마다의 개성에 맞춰 화려한 꽃들을 즐기고 있다.

장미공원에서 걸음을 옮겨 조각공원으로 가는 길 한편은 수선화가 피었다. 다른 한 편으로는 바다와 함께 드문드문 핀 벚꽃이 있다. 멀리 보이는 탁 트인 바다는 꽃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조각공원에서 꽃을 보기는 쉽지 않다. 장미공원의 튤립이 화려한 빛으로 사람을 유혹하지만 막상 조각공원 안은 꽃보다 조각품 감상에 치중하라는 배려가 엿보인다.

꽃에 대한 아쉬움에 다시 발걸음을 옮겨 장미공원을 지나 장승포 몽돌개 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우선 벚꽃이 아름답다. 그리고 동백꽃을 비롯한 수많은 꽃들을 만날 수 있다.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꽃은 벚꽃과 동백꽃이다. 이미 지기 시작한 동백은 꽃잎으로 지는 게 아니라 꽃 자체가 떨어진다.

벚꽃은 꽃잎이 꽃비(花雨)처럼 내리지만 동백은 꽃이 떨어지는 낙화(洛花)에 가깝다. 두 꽃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곳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벚꽃이 꽃비를 뿌린다.

옛 길을 따라 늘어선 벚꽃은 봄의 화려함을 대변하는 듯하다. 산책하듯 가벼운 차림으로 나온 시민들이 꽃비 내리는 봄을 만끽하고 있다. 해안로를 따라 걷다보면 간간이 나타나는 벤치는 이미 선객들이 차지하고 앉았다.

이 길을 빨리 걷기보다 즐기겠다는 심산인 모양이다. 아예 한 무더기 벤치가 놓인 곳은 아기와 함께 온 엄마들이 차지했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채 벤치에 앉아 봄을 즐기고 있다. 벚꽃 아래로 보이는 그 모습이 그림처럼 예쁘게 다가온다.

꽃비가 내리는 길을 질주하는 자동차도 도심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꽃이 주는 묘한 매력 때문일 것이다. 간간이 피어난 설유화와 수줍게 얼굴을 내민 수선화는 단조로워 질 수 있는 풍경에 변화를 주고 있다. 공고지가 아닌 곳에서 만나는 수선화는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나름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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