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시절]거제신문 제18호 1990년 2월17일자
당산제·다리밟기·달보기 등 거의 사라져

예로부터 달을 숭상해온 우리민족에게 풍요다산을 상징하는 보름달은 그만큼 의미가 더했다.

농경을 기반으로 그 의식과 생활정서, 행동양식과 어우러져 살아온 우리민족은 정월 대보름날만큼은 상·하 구분 없는 평등한 몸짓으로 다가올 1년의 생활을 기원하곤 했다.

오랜 세월, 외부의 침해와 내부의 혼란을 안고 살아온 거제도, 우리 땅에도 정월 대보름날의 전통적 풍습은 오래된 책속이나 풍파를 헤쳐 온 사람들의 기억 속에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다.

15명 정도의 부녀회회원들로 구성된 농악대가 마을을 한 바퀴 돈 후, 마을뒷산의 할배당산과 행매당산에서 제를 올리고 바다에서 용왕에게 고사를 지내면서 한해의 액운과 잡귀를 없애고 풍어를 기원한 지난 대보름날의 능포동당산제는 절차나 옷차림 등은 많이 현대화 되었지만 그 의식은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 준 것이었다.

옛적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30~40년 전에는 어느 고을 못지않게 거제에도 정월에는 연날리기가 성했다.

정월대보름을 앞두고 동리끼리 연걸기싸움으로 한때를 신나게 보냈고 보름날이 되면 연대회에서 쓰던 여러종류의 연을 지난해 묵었던 것들과 함께 하늘높이 띄워보내면 연중행사였던 연날리기는 끝을 맺었다.

정월 십사일저녁 자기의 나이대로 다리를 밟아 그해 다리힘을 셈했던 다리밟기에는 외부출입이 잦지 않았던 여자들에게 이날 저녁만은 뭇사람들과 섞여 다리를 밟을 수 있게 허용된 날이기도 했다.

망월은 달오르는 것을 먼저 보면 그해 운이 좋다하여 다투어 달마중가는 것이었다. 농가에서는 달이 대개 뜨면 가물고 달이 늦게 뜨면 물이 많고 두껍게 뜨면 풍년이 든다는 것 등, 떠오르는 달모습으로 그해 농사를 점치곤 했다.

한편, 달집을 만들어 달이 뜨는 그때 불을 질러 「달뜬다」라고 소리를 치면 이 등, 저 등에서 불길을 올리면서 맞소리를 친 놀이도 망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외 체밥을 얻으러 다니던 모습, 농가에서 날가리 하던 풍습은 이제 거의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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