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 3기 아버지에 선뜻 간 절반을 떼어 준 '이 시대의 효자' 김상보 군

11시간 넘게 걸린 대수술…재발율 높은 절제술 대신 선뜻 '간 이식' 결정
중3때 랩 동아리 들면서 성격 바뀌어…팀원들과는 둘도 없는 '형제 사이'
랩 가사 쓰는 것과 유사한 카피라이터가 꿈…"아버지가 빨리 건강해졌으면"

2013년 계사년은 간암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간 절반을 선뜻 떼어내 준 한 고교생 아들의 얘기로 밝고 희망차게 시작하게 됐다.

효경(孝經)에 실려있는 공자의 가르침 중에는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 해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으로,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

부모가 물려받은 몸을 소중히 하는 것이 효의 근본이라는 가르침인데 부모가 물려준 신체의 일부를 그 부모를 위해 떼어내 주는 것은 공자의 가르침에 역행하는 것이지만 진정한 효의 실천의 본보기가 아닌가 싶다.

그 주인공은 거제제일고 2학년 김상보(17) 군이다. 그는 간암 3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 김인석(51) 씨를 위해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지난달 27일 건강을 회복중인 상보를 거제관광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11시간의 사투…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상보군의 아버지는 크레인을 만드는 회사 관리인으로 근무하고 있다. 건강했던 그는 수술을 하기 2달여 전에 회사의 정기검진을 받다 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상보는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절제술의 경우 재발율이 80%가 넘는다고 해 이식을 결정하게 됐어요"라며 "아버지니까, 아버지가 있어야 내가 있는 건데 이식을 결정할 수 밖에 없었죠"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래도 아직 어리고 누나도 있는데 대단한 결정을 한 것 같다고 묻자 "누나는 여자잖아요"라고 서슴없이 이식 결정을 하게 된 이유를 밝힌다.

마침내 지난달 13일 대수술에 들어갔다. 서울 삼성메디컬센터에서 오전 7시부터 시작된 수술은 장장 11시간이 걸렸다. 상보는 오후 1시20분께 수술실에서 나왔고, 아버지 인석 씨는 오후 6시가 돼서야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인석 씨는 중환자실에, 상보는 회복실로 각각 옮겨졌다.

인석 씨는 1월 중순은 돼야 퇴원이 가능하다고 한다. 상보도 2주 가량 병원에서 지내야 하는데 예정된 기간보다 앞당겨 지난달 23일 퇴원을 했다.

상보는 "병원에서 하는 게 약 복용 밖에 없더라고요. 병원보다는 집에 있으니까 정신 건강에도 더 좋은 것 같고요. 그래서 퇴원을 앞당겨서 했죠"라며 웃는다.

이래저래 참 건강한 고교생이라는 인상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면서도 의젓한 구석도 많아 보였다. 그러면서 "사실은 여자 친구가 크리스마스 때 공연을 하게 돼 있었는데 그 공연을 꼭 봐야겠더라고요. 그래서 퇴원을 서두를 수 밖에 없었죠"라며 '조기 퇴원'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꿈을 찾는 래퍼…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상보는 1996년 2월 14일생이다. 발렌타인 데이에 태어났기 때문에 생일 선물로 초콜릿만 잔뜩 받았다는 상보는 부산에서 태어나 5년 가량을 부산에서 살았지만 부산에 대한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후 옥포에서 중앙초등학교를 다닌 상보는 계룡중 3학년때 중곡동으로 이사를 왔다.

초등학교때까지는 워낙 조용하게 생활했다는 상보는 중학교 3학년때 성격이 바뀌었다. 그 계기는 바로 동아리 생활. 중3때 옥포문화의집 랩 동아리 '매니악셀'에 가입하고 나서부터 랩의 매력에 푹 빠진 상보는 이 때부터 성격이 많이 적극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제제일고로 진학한 상보는 고1때는 랩 동아리 생활을 잠시 쉬고 공부에만 전념했다. 그리고 고2때 팀이 유명무실 되면서 상보가 직접 동아리를 만들었다. '스왈로 비트'가 상보가 만든 랩 동아리다.

상보는 수술하기 직전까지 회장직을 맡다 수술 때문에 회장직을 후배한테 넘겨줬다. 중2때부터 랩을 좋아하게 됐는데 친구의 권유로 동아리에 들어가게 됐다.

상보는 "랩 가사 쓰는게 마음에 들었어요. 자기 이야기를 곡에 담아내는 매력에 끌렸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재미가 랩에 있는 것 같아요"라며 랩과의 인연을 풀어냈다.

'A'라는 대표 곡이 있는데, 공연을 목표로 만든 곡이어서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 쉽게 푼 후렴구가 매력있는 곡이란다.

상보는 "요즘 아이돌 랩은 별로인 것 같아요. 너무 겉멋만 든 것 같아 '나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학교생활은 랩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되겠어요"라고 랩에 대한 소신도 밝힌다.

현재 상보는 거제제일고에서 엘리트반에 속해 있는데 공부도 곧잘 하는 모양이다. 학기 중에는 한 달에 1회, 방학중에는 2∼3회 공연을 펼치고 있다.

◇진솔한 대화…팀원들은 비밀도 없는 친형제

지난 여름방학때 상보와 팀원들은 공연을 2주 가량 앞두고 망치 바닷가로 팀워크 다지기 MT를 1박2일 코스로 다녀왔다.

마침 아버지 친구가 운영하는 숙박업소가 있어 10여 명의 팀원들은 여기서 알찬 MT를 보낼 수 있었다. 상보와 팀원들은 격려차 MT에 들른 부모의 허락 하에 술을 한 잔 하면서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상보는 "아직 고등학생인데 술 얘기를 하면 안 되겠죠? 하지만 부모님이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데 술을 한 잔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얘기에 술잔을 기울였어요.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부모님과의 약속 때문에 사고 같은 것은 없었어요. 정말 깔끔하게 대화의 장을 만들었어요"라며 당시 추억을 더듬어 냈다.

마찰이 있던 팀원들과의 오해도 풀고 많이 울면서 서로를 보듬었다고 한다. 특히 자기 자신을 친형처럼 이끌어준 1살 위의 진수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인터뷰 자리에 같이 나온 옥진수(해성고 3년) 군은 "상보가 저를 친형처럼 믿고 따라줘요.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쌓인 오해와 갈등은 대화로써 풀려고 노력합니다"라고 상보의 어깨를 토닥거려 준다.

팀원들은 거의 매일 만난다고 한다. 특별하게 할 게 없는데도 만나서 뭘 할지를 정한다.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좋단다. 밥도 같이 먹고, 연습을 할 때도 있고, 그냥 PC방이나 노래방에서 놀기도 한단다. 팀원들 간에는 비밀도 일체 없다고 한다.

한 살 어린 상보 여자친구도 상보팀의 정기 공연 때 게스트로 출연한 댄스 동아리 멤버다. 같이 공연을 하며 '눈이 맞아' 사귀게 됐다고 하는데 한 달 반 정도 됐다고 한다.

◇마음가짐의 문제…후회 없는 하루 하루를

아직 젊은 10대답게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한 번은 공연 후 뒤풀이로 노래방을 갔는데, 제일 큰 방에 50여 명이 들어가 신나게 놀았더니 처음에 18℃였던 실내온도가 '젊은 피'들의 열기 때문에 25℃까지 오른 적이 있다고 한다.

클럽을 빌려 클럽 공연을 할 때면 일반 공연과는 다르게 더욱 많은 준비를 한다. 5∼6개팀이 4∼5곡 정도 선보이면 2시간은 훌쩍 지나가는데 그래도 나름 명성이 있는 팀이어서 2000∼3000원의 입장료면 클럽 대여료는 상쇄 된단다. 상보는 현재 30개가 넘는 옥포문화의집 전체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다.

상보는 "매니악셀 첫 공연때는 성공적이었습니다. 형들이 잡아놓은 틀에서 저는 주어진 파트만 잘 하면 됐거든요. 그런데 스왈로 비트 첫 공연때는 실패했어요. 신생팀이다보니 선생님들도 '잘 할 수 있을까'하는 시선이 대부분이었죠. 라이벌 팀 리더가 도와줘 첫 공연을 마치기는 했지만 순서가 계속 밀려 메인 공연 직후에 공연을 하다보니 떨리고 해서 제대로 공연을 하지 못한 것 같아요"라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 놓는다.

상보의 꿈은 카피라이터다. 고1때부터 가진 꿈이란다.

상보는 "가사 쓰는 것과 거의 같다고 봅니다. 가사 쓰는 게 좋아 최대한 비슷한 일을 찾다보니 카피라이터를 찾게 됐어요. 뭘 하던 내 자유지만 기본적으로 할 건 하려고 합니다. '후회하지 말자'가 원래 좌우명이었어요. 후회할 일을 해도 정신차리고 다음을 생각하려고 했죠. 그런데 좌우명이 바뀌었어요. 페이스북 친구였던 이노베이터라는 좋아하는 래퍼가 있었는데 그 래퍼는 '뭐든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했어요. 그 때부터 '후회할 일을 해도 정신 차리고 다음을 생각하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솔직히 부모님께 짐이 안되고 싶은 게 지금의 목표예요. 걱정 안끼치고 민폐가 되지 않으면 좋겠어요"라고 마음을 털어놓는다.

말 한 마디, 생각 하나, 행동거지까지 어른스럽다.

상보는 "지금도 아프긴 아파요. 진통제를 항상 들고 다니죠. 마약 성분이 들어있는 진통제 때문에 토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잘 참고 있어요. 아직 어리니까 건강하잖아요. 그 보다 아버지가 빨리 건강해졌으면 해요"라고 애써 웃어보인다.

연말연시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어떤 소식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만난 상보는 나눔과 사랑이라는 큰 선물을 안겨준 것 같다. 해맑은 상보의 미소가 건강하게 돌아올 아버지의 모습처럼 계속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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