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사랑나눔회'와 함께 한 '달콤한 동행'

장대비가 쏟아진 지난 14일.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드는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미 있는 나눔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단체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기자가 찾아간 곳은 고현동 중앙빌딩 9층 거제제과제빵학원. 다들 빨간 조끼를 입고 앞치마를 두른 채 분주하기만 하다. 따끈따끈한 '사랑의 빵'을 만들어 우리의 이웃들에게 전달하는 '빵사랑나눔회(회장 황연화)'가 바로 그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갓 구워낸 빵이 떠오르며 무언가 '맛있는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즐겁고 유쾌한, 그들과의 하루 속으로 들어가 보자.

◇미세한 차이에도 사랑과 정성이

빵을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맛있는 빵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정확한 계량이 이뤄져야 하고 제대로 반죽이 돼야 한다.

이후 발효 과정을 거쳐 적정량에 맞게 분할이 이뤄지고, 중간발효를 한 다음 빵 모양이 갖춰지게 성형 작업이 계속된다. 다시 2차 발효를 한 다음 드디어 굽게 되고, 냉각한 다음 포장 작업을 거치게 된다.

빵 하나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재료도 상당히 많다. 계량저울을 바라보는 '매서운' 눈과 조금씩 덜어내고 더하고 하는 손끝이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니다'. 학원 한 켠에 걸려있는 칠판에는 오늘 만들 빵에 대한 계량수치와 배달할 곳이 적혀 있다.

오늘 만들 빵은 단팥빵과 앙금이 들어가는 매화빵. 강력분 1800g, 물 874g, 이스트 100g, 제빵계량제 18g, 소금 36g, 설탕 288g, 마가린 200g, 분유 50g, 계란 260g. 이 배합이 대략 110개 가량의 빵을 만들 수 있는 재료들의 수치다. 오늘 빵을 전달할 곳이 실로암, 베데스다의 집, 사랑의 집, 예수의 집, 그리고 경로당 3곳이기 때문에 위 배합을 4번 혹은 5번 반복해야 빵 450∼500개를 만들 수 있다.

정확한 계량이 이뤄지면 반죽기에 재료를 투입, 재료가 고루 섞일 수 있도록 반죽을 한다. 반죽기가 돌아가는 것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많은 양을 하다 보니 반죽기 없이 반죽하는 작업은 그야말로 '막노동'이라는 한 회원의 말이 귓가를 스쳐지나간다.

◇나누고 나눠도 모자라는 사랑

반죽기에서 나온 반죽은 발효기로 들어간다. 그렇게 30여 분 동안 숙성을 시켜야 맛있는 반죽이 된다. 빵사랑나눔회는 현재 31명의 회원이 활동을 하고 있다. 황연화(59) 회장보다 한 살 많은 52년생에서부터 막내가 83년생이다. 그래서인지 엄마와 이모, 딸들이 함께 어우러진 가족 같은 분위기다.

청일점인 김상인(56) 씨는 그 가운데 아빠와 같은 존재다. 회원들은 대부분 여성회관에서 황 회장으로부터 수업을 받았거나 학원 수강생들이다. 쉽게 말해 제자들인 셈이다.

빵사랑나눔회는 작지만 먹는 즐거움이라도 만끽할 수 있도록 빵을 나누는 것을 목적으로 지난해 11월4일에 만들어졌다. 나누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하는 봉사단체지만 그런 목적을 소중히 생각하는 단체로부터 찬조 물품도 가끔씩 들어온다. 모 은행에서는 고무장갑을 보내오기도 했고, 다른 곳에서는 빵 만드는 재료를 기탁하기도 했다.

남자 회원인 상인 씨도 학원을 5개월 다니고 제빵 자격증을 딴 뒤 회원이 됐는데, 금일봉을 전달하기도 했다. 30여 분이 지나자 발효기에서 숙성된 반죽을 꺼낸다. 이어지는 작업은 분할.

말 그대로 적당량씩 반죽을 떼어내는 작업이다. 떼어낸 반죽을 계량저울에 올려 무게를 단 뒤 동그랗게 빚어낸다. 동그란 모양이 차례차례 줄을 지어 놓은 모습이 가히 예술이다.

◇더하고 더해도 부족한 사랑

동그랗게 빚어진 반죽은 또 다시 발효기로 들어가 숙성 과정을 거친다. 숙성이 되는 동안 회원들은 빵 안에 들어갈 속 재료를 준비한다.

단팥과 앙금이 빵에 들어갈 재료. 넓적한 칼 같은 걸로 속재료를 쪼갠 뒤 이 또한 반죽한 것처럼 동그랗게 빚어낸다. 물론 계량저울로 무게를 다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진행 과정 중 하나다.

빵사랑나눔회는 매월 둘째 주 금요일 봉사활동을 한다. 이날 만큼은 있는 시간, 없는 시간 다 쪼개 하루 종일 빵 만드는 일에 전념한다. 할머니가 편찮아서 오지 못한 '막내'와 몇몇 회원을 제외하고는 이날도 대부분의 회원들이 동참했다.

황 회장은 "한 달에 한 번 밖에 하지 않는 봉사지만 정말 빨리 돌아온다"며 "빵 만드는 재미에 맛있게 먹어주는 시설 장애우와 어르신들 덕분에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이 시간이 정말 즐겁다"고 웃어보인다.

열심히 속재료 준비에 여념이 없는 사이 다른 한 켠에서는 상인 씨가 뭔가 열심이다. 빵을 굽기 위한 빵틀을 준비하는데 깨끗하게 닦아내고 기름종이를 틀에 까는데 천생 '일꾼'의 모습이다.

"일은 혼자서 다 하는 것 같네요"라는 말에 상인 씨는 그냥 미소만 지어보인다. 상인 씨는 "빵을 맛있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빵을 얼마나 깨끗하게 만드는가가 더 중요하다"며 "빵을 받아들고 즐거워할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면 절로 힘이 솟는다"고 말했다.

중간발효를 거친 반죽은 이제 본격적인 '성형' 작업에 들어간다. 이제야 비로소 빵의 외형이 갖춰지는 셈이다. 동그랗게 말아놓은 반죽에 속재료를 넣고 납작하게 누르는 작업이 '성형'이다. 그런데 누르미가 있는데도 전구를 이용해 누르는 작업을 한다. 전구로 열심히 반죽을 누르고 있는 한 회원은 "전구가 누르미보다 훨씬 잘 되더라"며 "이건 사진 찍으면 안되는데…"라고 웃는다.

납작하게 누른 반죽은 이제 가위로 꽃단장을 한다. 매화빵은 4군데를 가위로 잘라주고, 단팥빵은 대각선 방향으로 11자 모양을 내준다. 이렇게 꽃단장한 반죽 위에 계란물을 입혀주면 성형 끝.

◇모락모락 피어나는 행복과 미소

성형이 끝난 반죽은 또 다시 발효기로 들어간다. 세 번째 숙성 과정이다. 2차발효가 끝난 반죽은 드디어 굽기에 돌입한다. 9분에서 10분 가량 구워주는데 중간에 우유를 덧칠한 뒤 1∼2분 정도 굽는 과정이 계속된다. 불과 몇 분이 흐르지도 않았는데 코 끝을 자극하는 냄새가 너무 좋아 자연스럽게 허기가 진다.

그냥 구워졌을 때는 왠지 거칠어보이던 빵이 우유 덧칠 작업을 거치자 반짝이며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우유를 발라주는 이유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윤기가 나게 해 줌과 동시에 역시나 달콤함을 더하기 위해서란다.

첫 번째 빵이 구워져 나오는데까지 무려 5시간 가량이 소요된다. 여러 차례의 숙성 과정과 정밀한 계량 작업 등이 진행됐기 때문인데 그 만큼 빵 하나에 쏟는 회원들의 정성이 대단하다.

빵사랑나눔회는 지난달 9일 독봉산웰빙공원에서 1주년 기념행사 겸 봉사 다짐대회를 가졌다. 이날 회원들은 2인3각, 끝말 잇기, 돼지저금통 넘기기 등 다양한 게임을 하며 그 동안의 노고를 풀고, 더욱 힘찬 1년 간의 봉사를 다짐하는 시간을 보냈다. 대동줄넘기 등을 통해 단결력도 강화하고 말춤과 보물찾기 등 즐거움을 더하는 프로그램으로 피로도 싹 풀었다.

오락부장을 맡고 있는 조도순(44) 회원은 "봉사는 노력과 시간만 있으면 가능한 것"이라며 "여기에 빵사랑나눔회는 회원들이 갖고 있는 빵 만드는 재능을 더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금이나 성품도 어려운 이웃들에게는 소중하지만 우리가 만드는 빵은 정성이라는게 가미되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다"며 "보다 밝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계속 보태고 싶다"고 덧붙였다. 빵을 굽는 정성만큼이나 아름다운 마음을 엿볼 수 있어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손길 하나하나 정성과 나눔

잘 구워진 빵은 충분히 식히는 과정을 거친다. 비닐 포장지에 포장되기 때문에 따뜻한 상태에서는 포장이 불가하다. 500여 개의 빵을 구워내는 것도 일이지만 하나하나 일일이 포장하는 작업도 꽤 많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회원이 포장 작업에 매달린다. 빵사랑나눔회는 봉사를 가는 곳도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결정한다. 경로당이나 시설에 자주 가는 편이지만 지난 10월에는 소방서와 경찰서를 찾았다.

황 회장은 "장애우나 노인시설도 빵나눔이 필요하지만 관공서에서 근무하는 분들에게도 힘든 일에 대한 격려가 필요할 것 같아 가끔씩 찾는다"며 "빵나눔 외에도 고현동 발전협의회의 경로위안잔치 등 각종 행사와 관련해 부탁이나 요청이 있으면 마다하지 않고 힘을 보태고 있다"고 말했다.

◇작지만 큰 선물, 세상을 바꾸는 힘

장시간의 포장 작업이 끝났다. 포장된 빵은 박스에 차곡차곡 담아 빵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일만 남았다. 오늘은 세 팀으로 나눠 빵을 배달한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실로암. 빵을 받아든 원생들은 하나 같이 함박 웃음이다.

황 회장은 "노인 분들도 빵을 기다리지만 특히 어린 장애우 친구들이 제일 반긴다"며 "달력에 '빵 오는 날'이라는 표시를 해두며 기다리는 모습을 볼 땐 보람을 느끼면서도 가끔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도 있다"고 감회에 젖었다.

총무를 맡고있는 김상선 회원은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원생들이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고맙다는 말이 하고 싶더라"며 "봉사를 하면서 아이들 대하는 것도 달라지고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원생들에게 일일이 빵을 나눠주며 그 동안 못했던 이야기 꽃을 피웠다. 한 켠에서는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다른 방문처도 마찬가지. 모두들 큰 선물을 받은 것처럼 입가에 미소가 지워지지 않는다. '빵 한 조각'이라는 작지만 큰 선물. 세상을 바꾸는 소리 없는 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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