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포농협 주부대학 농촌사랑봉사단, 중식봉사 현장을 가다

4개조로 나눠 매주 다른 곳에서 '사랑나눔'…도움 필요한 곳이면 '언제, 어디든' 출동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해내는 가족같은 분위기…이젠 서로의 눈빛만 봐도 '일사천리'

때아닌 한파로 을씨년스러운 12월 중순. 지난 7일 거제시종합사회복지관에는 그런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복지관에서 마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늘 많은 어르신들이 소일거리 삼아 복지관을 찾기도 하지만 이날은 한해를 마무리하는 축제한마당이 열리기 때문인지 더욱 많은 어르신들이 복지관 곳곳에 자리했다.

오후 1시30분부터 열리는 축제한마당에 앞서 이틀 전부터 복지관 2·3층에는 한 해 동안 어르신들이 갈고 닦은 기량을 선보인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돼 여느 행사에 뒤지지 않는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1층 식당가에서는 점심준비로 한창인지 맛있는 냄새가 코 끝을 자극했다. 아직 점심 배식시간이 1시간 가량 남았는데도 많은 어르신들이 양쪽 식당 입구에 장사진을 치고 있다. 때마침 북적북적한 양쪽 식당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주방에는 형광색 조끼를 입은 '아줌마 부대'가 눈에 들어온다.

장승포농협 주부대학 농촌사랑봉사단(단장 공선자)이다.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단원에서부터 나이가 지긋한 60대 '할머니(?)'도 보인다. 15명 가량의 봉사단들은 식당 한켠에서 무엇인지 모를 '즐거운 수다'를 떨고 있다. 점심 배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세 시간 가까이 함께 한(물론 단원들이 봉사를 하는 동안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지만…) 그들과의 '유쾌했던 만남'은 짧았지만 그 무엇보다 따뜻한 온기가 가득 남았다.

◇봉사는 즐거움이자 '유쾌한 놀이'

점심 배식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 가량이 남았다. 식당 한 켠에 모여 귤을 나눠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단원들의 이야기를 넌지시 들어보니 지난 봉사 때의 이야기다.

그것도 잠시. '금남의 구역(?)'에 깡마른 총각이 들어서서인지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그 중 가장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단원이 반갑게 맞아주는데, 현장을 방문하기 전에 전화통화를 했던 공선자(69) 단장이다.

69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피부에 잔주름이 거의 없는 모습이 놀랍다. "만나게 돼서 반갑다"는 인사를 하며 짓는 미소가 '바쁜데 괜히 방해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마음을 충분히 진정시켜준다. 공 단장이 자연스럽게 봉사단을 소개한다.

"우리 봉사단은 60여 명의 단원이 현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 4개조로 나눠 매주 다른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오늘은 1조가 이곳 복지관에서 중식 봉사활동을 펼치게 됩니다. 나중에 설거지 하는 단원들의 모습을 보면 아마 놀랄겁니다."

그러면서 단원들의 장점을 부각시킨다.

"우리 봉사단의 최대 장점은 자발적이라는 겁니다. 단원들 모두 누군가가 시키기 전에 일을 알아서 하나씩 하나씩 처리한다는 거죠. 그래서인지 분위기가 항상 단란한 가족 같이 화기애애 합니다. 부럽죠?"

그러고보니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봉사단은 결성된 지 10년 가까이 됐다. 지금은 매주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복지관 중식 봉사는 물론, 파랑포 안나의집과 예수의집에서 점심·목욕 봉사를 펼치고 있고, 장승포농협 관내 결손가정과 홀몸노인 세대를 대상으로 반찬 배달과 청소 봉사도 도맡고 있다. 물론 지난번 태풍 피해와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나 농가의 일손이 부족할 때면 환경정화라든지 농촌일손돕기 등 필요할 때면 수시로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공 단장과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는 동안 꽤 시간이 흐른 모양이다. 이야기 꽃을 피우던 단원들이 하나 둘씩 앞치마와 머릿수건을 두르고 중식 봉사 준비를 시작한다. 공 단장의 말대로 '솔선수범'이다. 따로 지침이 있었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각자의 파트로 알아서 이동을 한다.

공 단장은 "조금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단원 모두 알아서 잘 합니다. '너는 어디서 뭘 해라, 너는 이걸 맡아라'고 시키지 않아도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소통이 된다고 해야 하나? 뭐, 그런 경지에 이른거죠"라며 웃는다.

오늘 봉사단의 '미션'은 '청결한 위생'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공공기관의 식당에 걸맞게 '깨끗한 설거지'를 책임지는 것. 설거지 통 앞에 서서 배식을 하는 곳을 바라보는 '빨간 고무장갑의 여전사'들의 눈빛이 서서히 이글거리기 시작한다.

◇'Slow Slow Quick Quick' 즐거움과 정성을 적절히 섞어

배식이 시작됐다. 오늘 배식은 복지관 직원과 개인 봉사자들이 맡았기 때문에 봉사단은 배식은 따로 하지 않고 오로지 설거지에만 전념하면 된다.

2∼3명씩 짝을 지어 한 쪽은 식판 담당, 한 쪽은 수저 담당, 한 쪽은 국그릇을 담당하고, 반대편에는 2차 세척과 식기 건조를 맡았다. 물론 식당에서 나오는 빈 식기를 챙겨오는 '중책'을 맡은 단원도 있다.

복지관 식당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듯 배식 받는 것부터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한 뒤 그릇을 치우는 일까지 일사불란하다. 때마침 매주 금요일 복지관에서 난타 수업을 받고 있는 계룡중학교 특수학급 학생들도 할아버지·할머니들 틈새에 끼어 맛있게 점심을 먹는다.

식기들이 하나둘씩 주방으로 건네지고 식기를 씻는 손길이 차츰 빨라진다. 물론 중간중간 유쾌하게 들리는 '아줌마들의 수다'는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거나 식사에만 열중하는 식당 분위기와는 달리 역동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설거지 도중 젓가락이라도 하나 흘리게 되면 주방안은 어느 순간 웃음바다가 되고 만다. 물론 '작은 실수'를 한 단원은 만회하기라도 하려는 듯 수세미질을 하는 오른손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봉사는 어느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일'

점심시간이 어느 듯 끝나가는 모양이다. 북적거리던 식당 안에는 어르신 몇 분만이 식사를 하고 있다. 그제서야 단원들도 앞치마를 풀고 복지관 직원들과 함께 식판을 하나씩 집어 든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공 단장이 불쑥 식사를 하자고 손을 잡아 끈다.

오늘 메뉴는 어묵탕에 생선구이와 고사리나물 등 몇 가지 반찬이 나왔다. 진한 국물이 우러난 어묵탕은 쌀쌀한 날씨에는 그만인 것 같다.

"몇 시간 되지않지만 이렇게 신나게 일을 하고 나면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마음도 즐겁고 몸도 건강해지는 것 같죠. 집에 가만히 있으면 뭐 하겠어요? 이렇게 사랑도 나누고 말동무도 생기니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 이상이죠. 일한 뒤에 먹는 한 끼 식사는 그래서인지 더욱 꿀맛입니다. 하하"

먼 발치서 단원들의 봉사 활동을 구경만 했지만 그런 따뜻한 마음을 느껴서인지 한 끼 식사가 순식간에 끝났다.

식판을 치우면서 한 단원이 말을 건넨다.

"이제 우리가 먹은 마지막 설거지만 남았네요. 봉사라는 게 처음에는 '나도 할 수 있을까'하고 고민을 많이 했지만 막상 해보니까 마음만 있으면 되더라고요. 이제는 정말 몇 시간이 몇 분으로 느껴집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엄청나게 느끼는 보람, 그 맛에 봉사를 하는 것 같아요."

그러고보니 어느새 세 시간이 흘렀다. 때마침 식당 창문 밖으로 제법 굵은 눈보라가 휘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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