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연한 빛을 발하는 보석을 우연히 발견하면 다른 이들에게 자랑하고픈 생각에 마음이 들뜨는 성격입니다. 큐레이터가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예술작품을 소개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고요. 이런 면에서 본다면 제 성격과 딱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07년부터 거제문화예술회관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조정란 큐레이터는 40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젊은 외모의 소유자다. 물론 외모만큼이나 젊은 생각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2006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사로 근무하다 그 이듬해부터 거제문예회관과 인연을 맺은 조 규레이터는 장승포를 처음 찾았던 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필요한 서류를 챙겨들고 거제로 향했지만 솔직히 합격에 대한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장승포에 도착하니 생각이 달라져버렸어요. 서류에 붙일 수입인지를 사러 장승포동사무소로 가다 해안도로 쪽 바다를 들여다보게 됐는데 너무너무 맑아서 한참동안 넋을 잃고 바라 봤죠. 자연스레 '정말 거제로 오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구요.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그날 이후에는 그만큼 맑게 빛나던 장승포항 바다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제가 거제에 와서 살 인연이었나 봅니다."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늦깎이로 시작한 대학원 생활은 그에게 가장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대학졸업 후 20년 만에 대학원에 들어가니 대학교수와 비슷한 나이더군요. 하지만 새롭게 시작한 캠퍼스 생활에 시간가는 줄을 몰랐어요. 미술사 뿐만 아니라 철학 등의 인문학 공부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특히 동기생 2명과 20여일 동안 학교 지원을 받아 떠났던 유럽 배낭여행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말로만 듣던 루브르박물관과 오르쉐미술관 등을 방문해 수많은 작품을 직접 감상하며 동기들과 밤을 새워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알찬 여행이었지요."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국내에 소개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기만 하다. 그런 면에서 조 씨가 거제에 온 첫 해에 발생한 신정아 사건은 거제시민들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고 했다.

"신정아 사건이 터진 뒤 큐레이터라는 단어가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서 덕을 좀 봤다고 생각해요. 저를 큐레이터라고 소개하면 많은 분들이 '아~, 신정아' 하면서 관심을 가져줬었죠. 울기도 뭣하고 웃기도 뭣한 아리송한 상황이었습니다."

문화에 대한 저변이 다소 부족한 거제시이기에 그가 맡은 책임은 막중하다고 볼 수 있다. 변변한 전시공간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지역 현실에서 문예회관 전시실의 중요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좋은 기획전시를 마련해 많은 시민들이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현재의 여건만 탓한다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겠죠. 문화공간이 없다고들 하시는데 문예회관은 전국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장소에요. 좋은 공연, 좋은 전시를 유치해 지역민의 관심을 유도한다면 거제가 문화의 불모지라 불리는 현실도 많이 개선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저부터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전시 기획, 작가 선별, 작품 배치 등에 더욱 노력할 생각입니다. 내년부터는 의무감을 갖고 큐레이터로서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볼 각오입니다."

기획 전시 외에도 그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은 예술교육 분야다. 학교를 찾아 학생들에게 문화강연을 하고 있고,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미술사 강의도 빼놓지 않는다. 특히 화순 전남대학교 병원을 찾아 암 환우들과 함께한 시간은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라고 했다.

"내가 갖고 있는 전문지식을 남들과 나누는 것이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저변을 넓히는 데는 학생들과 소통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죠. 지역 학생들과의 만남이 늘 설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화순 전남대 병원을 찾아갔을 때 암으로 고생하는 어린 환우들과 미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자연스레 힐링을 하는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클래식 음악 등 식상한 공연 외에도 또 다른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줬죠. 앞으로도 지역민은 물론 그곳의 환우들과도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질 생각입니다."

기획전시 일정 중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방명록에 적어주는 좋은 글귀에 힘을 얻고, 작품 설명을 들으며 즐거워하는 관람객들의 반응에서 보람을 찾는다는 조정란 큐레이터.

그의 모습에서 예술을 사랑하고 나눔의 소중함을 실천하는 지식인의 따뜻한 감성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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