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거제와 인연 … 거제문화예술회관 조정란 큐레이터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소녀
동·서양 미술사에 흠뻑 빠져들다

어려서 음악을 좋아한 한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언니와 피아노를 배우며 막연히 음대 진학에 대한 꿈을 꿨다.

언니가 음대에 들어가 성악을 전공한 것도 음대진학을 꿈꾸는데 한 몫 했다. 하지만 그가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의류학이었다. 1지망에서 낙방하고 2지망으로 선택한 학과였다. 잠시 재수를 고민했지만, 대학에 우선 진학한 뒤 학과를 바꿀수도 있다는 말에 그냥 입학했다.

"대학 4년은 무난하게 흘러갔습니다. 졸업이 다가오자 취직에 대한 고민이 밀려왔고, 전공을 살려보고자 했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결국 졸업 후 입시학원에 영어강사로 취직을 해야만 했죠."

영어학원 강사로 20대를 보내고 30대를 맞았다. 20대 후반에 결혼을 재촉하던 부모님의 성화도 30대로 접어들자 다소 수그러들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던 그에게 불쑥 사랑이 찾아왔다. 서른 초반의 나이에 불어온 훈풍이었다.

상대는 대학 선배였다. 대학시절에는 그리 친하지 않아 얼굴만 알고지내던 사람이었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그는 달랐다. 무척이나 따뜻한 마음 씀씀이에 저절로 끌렸다. 딱히 독신을 고집한 것도 아닌지라 34살에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곧 사랑스런 아이도 태어났다.

결혼 후에도 학원 강사생활은 계속됐다. 하지만 혼자 지내던 때와는 달랐다. 아이를 키우며 학원생활을 한다는 것이 무척 힘에 겨웠다. 야간수업을 해야만 하는 학원의 특성 때문이었다.

10년 넘게 한 학원생활을 접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운이 좋았던지 공무원 시험에도 바로 합격했다. 37살이란 늦은 나이에 철도청에 입사했다. 그때만 해도 공무원으로 안정된 삶을 누릴 것이란 생각에 마냥 기뻤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변수가 발생했다. 근무지가 자신이 살고있던 전남 광주가 아닌 서울이었다. 아이를 시댁에 맡겨둔 채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아이와 생이별을 해야 하는 상황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미술을 전공한 남편이 뜻하지 않은 제의를 했습니다. 학예사 자격증을 따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남편의 권유에 '공부를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예사 자격증을 따게 되면 자신의 삶이 크게 변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다. 어차피 하는 공부라면 좀더 전문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에 공무원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2004년부터 대학원 미술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대학을 졸업한지 20년 만이었다.

당장 벌이가 줄어들면서 잠시 그만뒀던 학원강사 일도 다시 시작했다. 대학원 생활은 즐거웠다. 인문학이며 동·서양 미술사에 대한 공부에 흠뻑 빠져들었다. 하지만 몸은 혹사를 당하고 있었다. 육아에다 대학원 생활, 학원강사 일까지. 그야말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힘든 나날 속에서도 남편의 응원은 큰 힘이 됐다. 대학원 리포트나 발표수업이 있을 때면 아이 돌보는 일은 남편 차지였다. 2년 동안의 대학원 생활은 그야말로 꿈같이 지나갔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공부에 재미를 느끼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대학원 생활을 했다.

그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대학원 졸업 후 정식 학예사 자격증을 갖게 됐다. 당시 대학원 졸업 여성들의 전문직 선호도 1위가 큐레이터였던 터라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졸업한 해인 2006년 5월에는 광주비엔날레에서 특별전시를 하는 영광도 누렸다. '신진 기획자 발굴 프로젝트'에 제출한 그의 기획안이 당선이 되며 '미술 오케스트라'라는 특별 전시를 하게 된 것이었다. 햇병아리 큐레이터의 데뷔 무대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큰 무대였고 좋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인생 출발로 한껏 들떴던 가슴이 이내 가라앉아 버렸죠. 광주 시립미술관에 학예사로 취직했지만, 얼마 후 무기계약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였습니다. 일종의 상실감이 밀려왔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습니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근무한지 얼마 되지않아 거제문화예술재단에서 문예회관 큐레이터를 뽑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함께 일을 하던 동료가 좋은 기회라며 응시를 권유했다.

2007년 4월, 응시원서 등의 서류를 들고 거제로 향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거제문화예술회관의 모습은 한편의 아름다운 예술작품과도 같았다.

수입인지를 사기 위해 장승포동사무소로 향했다. 해안도로 옆으로 펼쳐진 장승포항의 바닷물이 너무나 맑게 빛나고 있었다. 조정란 규레이터와 거제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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