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파출소 정채호 경위

 

"법 집행만이 경찰의무 아니다"

불의 못참는 불같은 성격, 그가 형사를 꺼리는 이유
5년 남은 경찰생활, 주민들과의 거리 좁히는 데 매진

"경찰도 실적에만 욕심 부리지 않고 한 걸음만 양보하고 배려하면 주민들 스스로가 발길을 향하는 경찰서가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목표로 경찰생활을 해왔고 지금까지도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정채호 경위가 1982년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첫 발령을 받은 곳은 거제경찰서 동부지서였다. 공권력이 지배하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작은 마을인데도 동료경찰들이 주민을 권위적으로 대하는 게 허다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경찰과 주민 간에 거리감이 있는 게 안타까웠다는 정 경위. 주민들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친근감 있는 경찰이 되고 싶었다는 정 경위는 조용한 하청면 치안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

"경찰서나 파출소에서 일했다면 주민들이 어떤 고민을 안고 있는지 자세히 모르고 지내왔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주민들과 직접 대화하고 1대1로 만나게 되기 때문에 주민들의 실질적인 생활 모습이나 고민, 절실한 바람이 무엇인지 알게 돼 좋더라. 내가 해결해주지는 못하더라도 고민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그에게 경찰이란 직업은 성격적인 궁합과 너무 잘 맞는 천직이었다. 정의감이 유달리 강했던 정 경위는 어려서부터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모습에 치가 떨려 경찰이 돼서 약자의 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경찰이 되겠다는 꿈을 이룬 뒤에는 25년간 거제경찰서에서 근무하면서도 수사과는 자연스레 기피하게 됐다고 한다. 아무래도 수사과에서 형사로 일하게 되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격을 컨트롤하지 못해 가혹행위라도 저지르게 될 것 같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성격적으로는 형사가 잘 맞긴 하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민원실이나 교통계에서 일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사람을 상대하는 게 힘든 일일 수는 있지만, 처음 경찰이 될 때부터 꿈꿨던 주민과 직접 소통을 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돕는 경찰이 될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마을이다 보니 주민들과의 소통도 제법 원활해 간혹 재미있는 일도 생긴다.

"순찰을 돌며 노인정 같은 곳을 가보면 대낮부터 술을 권하는 노인들이 더러 있다. 그래도 근무시간에는 절대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대신 주민들이 감사의 표시로 음료수라도 건네주게 되면 그걸 다시 노인들께 나눠주곤 한다. 경찰로서 당연한 일을 하는 건데도 감사해하니 오히려 제가 더 고마워서 그렇게 돌려주곤 한다."

사건이 많지 않은 시골이라 여유로울 것 같지만, 정 경위의 하루 스케줄은 빼곡하기만 하다. 오전 7시30분에 센터에 도착해 마을에서 간밤에 무슨 일이라도 있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오전 내내 주민들의 민원처리를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낸다.

오후에 칠천도를 포함한 하청면 전체를 순찰하는 업무 역시 그의 몫이다. 순찰업무는 그의 하루 일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과란다. 신고출동은 연초파출소에서 오기 때문에 바쁘게 움직일 이유가 없는 정 경위는 마을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주민들의 안부를 묻는다. 행여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주민이라도 보이면 곧장 달려가 일손을 거들어주는 것 또한 마다하지 않는다.

"무조건 법 집행만 하는 것이 경찰의 의무가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싶었다. 주민들도 처음엔 어색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먼저 안부를 물어오곤 하더라. 경찰도 주민들과 얼마든지 가깝고 친근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

순찰이 끝나고 치안센터로 돌아오는 시각은 오후 4시께. 그가 자리 비운 사이 들어온 민원이라도 있으면 그것들을 처리하느라 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그래서인지 오후 6시로 정해진 퇴근시간을 지켜본 적이 거의 없단다. 그는 주민들의 안부가 걱정돼 쉴 수 있는 주말과 공휴일에도 시간 내서 마을을 들른다고 한다.

올해로 55세인 그에게도 천직이라 생각해온 경찰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5년 남짓 남았다. 투철한 사명감 때문에 지금까지 경찰이 된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는 정 경위.

"남은 5년이라는 시간이 저에게는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그동안 이 일을 선택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전히 파출소를 드나드는 것을 어렵게만 생각하는 일반시민들의 인식이 좀 더 좋아질 때까지 매진할 계획이다."

경찰생활을 한 지도 어느덧 31년째. 20대의 열혈청년이었던 그는 어느새 두 아들의 아빠이면서도 친근하고 믿음직한 경찰관,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민중의 지팡이가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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