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더위를 온몸으로 이겨내고 있는 여성 산업전사 방미경씨

직업훈련생에서 대기업 근로자가 되기까지 7년 + 그 후 6년 …

'이젠 더 큰 꿈을 꾼다'

 

새 천년의 시작으로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들썩였던 지난 2000년 부산. 27살의 방미경 씨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내가 과연 조선소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밤잠을 설치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며칠 전 집으로 찾아온 형부의 말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처제, 대우조선에서 직업훈련소를 운영하는데 여자도 뽑는다고 하니까 원서를 넣어봐. 그곳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면 조선소에서 일을 할 수 있을거야."

학교를 졸업한 뒤 줄곧 사무실에서만 일을 해온 그였기에 조선소 현장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일생의 모험이나 다를 바 없었다.

"용접하는 일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하던데…."

대우조선에서 근무하는 형부가 적극적으로 권유하며 직업훈련소 참가를 독려했지만, 그의 마음은 쉽사리 정해지지 않았다.

평생 노동일에 잔뼈가 굵었던 부모님은 막내가 조선소에 취직하려 한다는 소리를 듣고도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대신 어디에 가서든 열심히 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덤덤히 말했다.

녹록지 않았던 현실은 결국 그를 조선소 생산현장으로 이끌었다. 3남매의 막내로 24살에 결혼해 아이까지 있었던 그의 선택에는 부산지역의 어려웠던 경제여건도 한몫을 했다.

원서를 접수한 뒤 합격을 알리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그래, 이왕 결심을 했으면 치열하게 한번 부딪혀 보자."

통지서를 손에 쥔 그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곧바로 짐을 챙겨 거제도로 향했다.

4개월 과정의 직업훈련소에는 총 68명의 훈련원생이 입소했다. 훈련원 가운데 8명이 여성이었다. 훈련소 생활 첫 날, 철판 위에서 튀는 용접불꽃을 보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조선소 일의 특성상 집중력이 필요했지만, 두려움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온 뒤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건 내가 할 일도 아니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부터 그에게 훈련소 생활은 지옥과 같았다. 교육시간에는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절단과 용접을 하는 실습시간이 너무나 싫었다. 교관들이 그의 실습 샘플을 보고 "발로 해도 이것보다는 잘 하겠다"며 핀잔을 줬다.  

그렇게 적응을 못하고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에게 다른 실습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식사 때나 저녁시간에 모여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들 대부분이 어렵고 힘든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신만 힘들고, 자신만 불행하다는 생각에 빠져있던 그에게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는 순간이었다.

당장 마음을 고쳐먹었다. 여전히 불꽃이 두려웠지만 실습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마음가짐이 달라지자 행동도 보다 적극적으로 변했다. 교관을 귀찮게 하며 동료들에 비해 뒤처졌던 기술습득에 열을 올렸다. 그렇게 4개월이 흘렀다.

훈련소 과정이 끝나자 훈련생들 모두가 사내 협력사에 취업했다. 여성 훈련생들은 기숙사가 제공되는 회사에 배정을 받았다.

훈련생 신분에서 협력업체 근무자로 야드에 투입됐다. 남성들만의 공간이었던 조선소 현장은 그에게는 너무나 낯선 곳이었다. 딱 한사람 정도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서 자격증을 따기 위해 했었던 훈련소 생활과는 딴판이었다. 용접사로 취직했지만 처음 3개월 동안은 거의 청소만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남자 사수는 별다른 가르침을 내리지 않았다.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들의 작업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며 짬날 때마다 연습을 했다.

그러던 중 다른 회사로 가게 됐다. 취업 1년 동안은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하도록 돼 있었지만 회사대표의 배려로 가능했다.

새로운 둥지에서 반자동 용접을 배웠다. 새로운 사수는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줬고, 그와 발맞춰 실력도 늘어갔다.

그러던 사이 남편과 각자의 길을 가게 됐다. 혼자가 된 그는 오직 일에만 몰두했다. 일이 바쁘면 새벽이든, 밤이든 시간을 가리지 않았다.

전해오는 소식으로 8명의 훈련소 여성동기 중 7명이 일을 그만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럴수록 이를 악물고 일을 해나갔다. 여자라서 도움이 안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7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20대 후반이었던 그도 30대 중반의 나이가 됐다. 여자 후배들도 생겨나 일을 가르쳤다.

언제나 제일 먼저 출근해 청소를 하고,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를 보고 회사대표가 추천서를 써주겠다며 직영 응시를 권했다. 2006년부터 협력사 사원들의 직영 전환이 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주위에서도 응시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겉으로는 덤덤한 척 했지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회사대표와 반장에게만 응시하겠다는 사실을 알린 채 시험을 봤다. 떨어지면 창피할 것 같아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얼마 후 작업반장이 "축하한다"며 합격소식을 전해왔다. 공개채용 후 처음으로 입사하는 현장직 여성사원이 됐다. 작업 동료들은 "100만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일"이라며 축하인사를 건넸다.

협력업체 근로자에서 직영 사원으로 첫 출근을 하던 날. 작업복에 박힌 이름표와 출입증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20대 이혼녀였던 방미경 씨가 30대 대기업 근로자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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