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 창설기념일에 신현파출소 발령 정유진 경사

여자이기 전에 경찰, 주눅들지 말고 자신감을 가져라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첫 발령을 받은 곳이 거제경찰서 신현파출소였다. 발령일자가 2002년 7월1일이었다. 대한민국 여경 창설 기념일에 발령 받은 것을 보면 저에게 있어 경찰은 운명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신현파출소로 첫 발령을 받은 정유진 경사. 당시에는 외근직으로 남자경찰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순찰업무에 매진했다고 한다.

넘치는 의욕과 열정으로 어떤 일이든 감당할 자신이 있었던 정 경사였지만 외근업무는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수많은 취객들을 상대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야간업무에 밤을 새는 일도 다반사였다.

"2002년 이전에는 거제경찰서에서 여경들에게 야간업무를 맡기지 않았다. 그런데 제가 발령을 받은 해에 처음으로 여경도 야간업무를 하도록 했다. 저보다는 저와 같이 순찰을 돈 선배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죠. 일하랴 여경인 저까지 돌보랴."

육체적인 고통은 경찰 인생에 첫발을 디딘 열정으로 커버했다. 야간 순찰업무 당시 선배들과 보조를 맞춰가며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 만취해 길에서 자는 취객들은 모두 정 경사의 몫이었다. 남자 경찰이 잠을 깨우며 집에 가라고 하면 꿈쩍도 않던 취객들 대부분이 제복을 입은 정 경사를 보면 깜짝 놀란 뒤 "죄송하다"며 득달같이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외근업무를 하다 보니 일종의 팬(?)도 생겼다. 거의 매일 파출소에 출근하다시피 한 몇몇 시민들이 언제나 정 경사만 찾은 것이다. 다른 경찰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그의 말만 들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지만, 자신을 찾는 시민들에게 조금 더 관심을 쏟으며 좋은 말로 다독이곤 했다. 

밤샘업무가 끝나면 파출소 인근 국밥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얼큰한 국물을 안주로 기울이는 소주 한잔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그렇게 보낸 1년 동안 정 경사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함께 근무하던 동료와 연애를 시작한 것이다.

"남편이 저 좋다고 하도 따라다녀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골인하게 됐다. 처음에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근무하면서 본 듬직한 모습에 반해 2003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경찰 부부가 된 뒤 그는 경찰서 교통조사계와 민원실 등지로 자리를 옮기며 경력을 쌓았다. 육체적 고통이 뒤따랐던 외근직과는 달리 내근직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했다. 처리해야 할 서류도 많아지고 민원인들의 불만을 온몸으로 받아 넘겨야 했다.

"민원실에서 근무할 때는 시민들에게 욕을 먹는 일이 하루 일과였다. 교통범칙금이나 벌금을 내기 위해 민원실을 찾은 사람들에게 경찰이 곱게 보일 리는 없었겠지만, 그냥 경찰이라고 무작정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고 여경이라고 무시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

그렇게 어려웠던 시절, 선배들의 조언이 큰 위로가 됐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있었던 여경들의 모임. 선배 여경들은 그에게 책임감을 강조하며 민원인들에게 감정적 대응을 최대한 자제하라고 충고했다.

선배들의 말을 되새기며 일에 매진하다보니 일종의 노하우가 생겼다. 민원인과 같이 흥분하면 지고야 만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민원인의 흥분을 해소하는 일이 최우선이었다. 차를 대접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을 했다. 후배들이 민원인과 목청을 높이는 일이 점점 잦아질 쯤, 어느새 자신이 대신해 민원인을 상대하는 모습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후배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여자이기 이전에 경찰이다. 주눅 들지 말고 자신감을 가져라."

대한민국 여경으로 보낸 지난 10년. 20대 중반의 꽃다운 처녀는 어느덧 믿음직한 경찰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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