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승리의 숨은 공신 '민속놀이'
팔랑개어장놀이
거제칠진농악
▲ 팔랑개어장놀이

거제를 대표하는 전통놀이로는 팔랑개어장놀이를 들 수 있다. 옥포동 파랑포 마을에서 풍어를 빌며, 마을 공동으로 고기잡이 하는 세시풍속 놀이가 팔랑개 어장놀이다. 예부터 거제에서 전해 내려오는 배신굿과 풍신제를 변형한 독특한 민속놀이다.

파랑포는 임진란 때 첫 승첩을 거둔 옥포만 동북쪽에 자리한 전형적인 작은 어촌 마을이다. 잔잔한 물결이 팔랑팔랑 거린다고 해 파랑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옥포대첩 때 패전한 왜군 병사 여덟 명이 도망가 편안히 보낸 마을이라 해 팔랑포라고 불린다는 구술설화도 전해져 오고 있다.

팔랑개 어장놀이는 어느 특정한 날을 정해 하는 놀이가 아닌, 일상적인 어로작업에서 파생된 놀이다. 작은 어촌 마을에서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나가는 것은 남자들. 그들이 풍랑으로 돌아오지 않자 그 일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남은 부녀자들 뿐이어서 놀이의 구성도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

팔랑개 어장놀이의 구성은 모두 다섯 마당. 질굿마당에서 시작해 도리깨질마당, 용왕제마당, 그물소리마당에 이어 가래마당(만선마당)으로 마무리 된다.

여는 마당인 질굿마당은 고기잡이 나갈 날이 돌아오자 선주가 술과 음식을 준비시키고 메구패를 동원해 마을을 돌면서 주민들을 불러 모으는 상황을 묘사한다.

두 번째 마당인 도리깨질 마당에서는 선창에 쌓인 그물을 넓게 펼쳐 찢어진 곳을 바늘로 꿰매고, 그물에 붙어 있는 불가사리 등 이물질을 도리깨를 이용해 털어 낸다. 수선된 그물을 어구와 함께 배에 싣는 동안 메구패의 신명나는 농악이 흥을 돋운다.

세 번째 마당인 용왕제마당에서 어부들은 무사 안녕과 고기를 많이 잡게 해 달라고 빈다. 제가 끝나면 배는 바다로 나가고 남은 음식을 갖고 신명나는 잔치를 벌인다. 그물소리마당은 배가 출어해 어부들이 노를 젓고 그물을 펼쳐 고기를 잡는다는 상황을 표현한다.

마지막 가래마당(만선마당)에서는 그물 가득 고기를 잡은 배가 만선기를 꽂고 선창으로 돌아와 가래를 이용해 고기를 퍼 나르며 기쁨을 나누는 모습을 형상화 한다.

▲거제칠진농악

팔랑개 어장놀이와 쌍벽을 이루는 것이 거제칠진농악이다. 거제칠진농악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게 아군이 많음을 보이기 위한 시위전술로 행해진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농악대의 구성은 군령을 뜻하는 '영(令)'을 새긴 깃발 2개와 꽹과리, 징, 그리고 장고·북·소고가 짝수로 이뤄지며 꿩포수와 무용수도 포함된다.

거제칠진농악은 크게 다섯가지 형태로 이뤄진다. 제일 처음 농악을 치며 입장해 일반농악처럼 좌우 원을 그리며 노는 원돌기에 이어, 상쇠의 지휘아래 달팽이 모양을 그리며 몰아 들어가다가 완전히 다 감은 상태에서 일제히 악기 소리를 멈춘다. 그러다 상쇠가 "수영수(목숨을 걸고 명령을 지키겠는가?)"하고 물으면 주위에서 "에이!"하고 대답하고 다시 원을 그리며 도는 덕석(멍석)몰기와 풀기가 이어진다.

곧바로 짝수로 구성된 악기들이 깃발을 앞세우고 양편으로 나눠 군령을 전달하는 모습을 재현하는 양편 가르기와 행진하던 농악군들이 가락을 멈추고 "별따자 별따자 하늘올라 별따자" "놀았네 놀았네 처녀방아 놀았네" "헤이소 헤이소 구경꾼들 헤이소"라고 외치는 마무리 의식이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농악대가 흥겹게 논 뒤 군령기를 앞세우고 구경꾼을 향해 돌아서 인사하고 퇴장하는 악기끼리 놀기를 끝으로 칠진농악은 마무리 된다.

 

웃고 울고'''선조들의 삶 그대로-

노동요 '굴까로 가세', 변방 군병들의 '석전올이', 탈놀음 '학산오광대' 등도 볼거리

▲ 굴까러가세

굴까로가세는 장목면 시방마을에 전해오는 일종의 노동요다. 이 노래는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갯바위에 자라는 미역, 멍게, 홍합, 굴 등을 따면서 아낙네들이 불렸던 노래다.

는 장목면 시방마을에 전해오는 일종의 노동요다. 이 노래는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갯바위에 자라는 미역, 멍게, 홍합, 굴 등을 따면서 아낙네들이 불렸던 노래다.

우리 조상들의 슬픔이 담겨 있고, 재미있고 흥겨운 가사를 담고 있는 이 민요는 현재 4개의 장으로 구성된 민속놀이로 재연됐다.

제1 과장은 마을 부녀자들이 굴까러 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대바구니와 굴쪼시를 준비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제2 과장은 머리에 대바구니를 이고, 손에 굴쪼시를 든 아낙네들이 선창자를 따라 노래하면서 입장한다. 제3 과장은 자연적이고 아무런 부담없이 앉고 서서 노래를 부르며 굴을 깐다.

이 세 번째 과장이 이 놀이의 제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제4 과장은 대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퇴장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이밖에도 거제 석전놀이와 학산오광대 놀이가 있다. 석전놀이는 옛날 군병들이 적을 공격하던 석전이 놀이에서 전승된 것으로, 왜적의 침입이 잦았던 변방지역 특유의 민속놀이라고 할 수 있다. 15㎝ 길이의 약간 긴 돌멩이를 잡고 팔을 머리 위로 올렸다가 힘차게 앞으로 뻗으면서 던져 누가 목표물을 많이 맞히는가에 따라 승자를 결정한다.

석전놀이는 20m거리에 길이 30m, 직경 6cm의 철봉을 매달아 돌을 던져 맞히는 경기이다. 개인 또는 5인 단체전으로 1인 10개씩의 돌을 준비해 1회에 5개씩 궁도방식으로 순번에 따라 돌살을 던진다.

석전대회에는 반드시 기생의 춤과 노래가 함께 했다고 한다. 돌살이 철봉에 명중하면 기생들이 '지화자'라고 외치며 창을 하고 흥을 돋웠다고 한다.

▲ 학산오광대
학산오광대는 둔덕면 학산리에 전승되던 탈놀음으로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해마다 음력 정초에 동제를 지내고 매구패가 동제를 지낸 순서대로 당산ㆍ당ㆍ진터ㆍ샘ㆍ다리ㆍ갯가ㆍ거리 등으로 돌면서 고사를 지낸 뒤, 저녁에 동사 앞마당에서 오광대 공연을 했다고 전해진다.

놀이내용은 말뚝이가 양반을 풍자하는 장면, 큰 각시가 오줌을 눌 때에 키로 부치는 장면, 상여가 출상하는 장면 등이 있어 통영오광대와 비슷한 계통의 탈놀음이었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놀이에 쓰이는 가면은 양반·말뚝이·홍보·곰보·검정탈·큰각시(할미)·작은각시·할미양반·조리중·상좌·봉사·상주·사자ㆍ포수·문둥이 등인데, 몇몇 바가지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두꺼운 백지에 그림을 그려서 만든 평면지 가면이었다고 한다.

마을의 무사태평과 풍농풍어를 위하여 해마다 놀던 오광대는 1930년대 일제가 금해 동제와 함께 폐지돼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