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주 변호사(전 거제신문 편집부장)

김한주 변호사(전 거제신문 편집부장)
빛바랜 원고지, 군데군데 상처가 난 철제 캐비넷, 적은 월급에 낡은 카메라, 유난히 낡은 2층 건물의 세입자. 20여년 전의 거제신문 풍경이다.

필자는 1990년 신문방송학과를 나왔지만 치열한 학생운동으로 얻은 전과(?) 덕분에 진로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 거제에서 연락이 왔다. "같이 지역신문을 만들어보지 않겠냐"는 선배의 말에 나는 별로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게 거제신문의 인연이었다.

편집할 수 있는 시설이나 장비가 없어 부산과 창원을 오가며 편집하고 인쇄가 끝나면 트럭이나 배를 이용해 가져온 뒤 배달까지 해야 일주일이 마무리됐다. 일주일에 원고지 100장 분량의 기사를 쓰는 것도 예사였고, 때로는 광고카피라이터까지 맡아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 당시엔 팔방미인(?)이었다.

당시의 초라한 위상과 열악한 근무환경은 해질녘 옥수동 포장마차에서 마시던 시원한 소주 한 잔이 위로였다.

정론직필(正論直筆)! 말처럼 그리 쉬운 게 아니다. 배고픔에는 촌지의 유혹이 있기 마련이고, 관계(?) 공무원이나 기업체로부터 제공되는 술과 밥도 뿌리치기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젊은 기자들은 잘 견디며 한 주 한 주 신문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시작한 거제신문이 지령 1,000호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야말로 감개무량이다. 비유컨대 천 마리의 학을 접는 마음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시설이나 기자들에 대한 대우도 달라졌고, 인터넷매체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작은 단신기사 하나하나도 읽어보는 독자들이 있고, 오타 한 자도 발견해서 신문사로 전화해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흔히들 언론을 사회적 공기(公器)라고 한다. 이 또한 말처럼 쉬운 게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지역의 올바른 여론형성과 시민들의 알권리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고, 그 중심에 거제신문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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