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떠난지 10여년이 훌쩍 흘렀다. 너무나 먼길을 걸어왔다. 벌써 마흔셋. 그도 중년이 됐고 이제 가정을 꾸려야 했다.

운명처럼 필리핀 국적의 달덩이 같은 '머나'를 만나야 했다. 친구의 소개로 국제결혼을 결심했다.

2011년 필리핀으로 날아갔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비행기로 30분 거리에 있는 작은도시 '민자나오'의 바다만큼이나 푸르고 아름다운 '머나'를 본 순간 그는 직감했다. 인연이란 이런 것이구나. 언어의 장벽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느낌으로 알았다. 국제결혼의 절차상 그해 1월23일 필리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운명의 짝 '머나'만을 남겨두고 거제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머나'와 헤어져 있던 시간은 4개월 남짓. 그러나 그 시간은 너무나 길었고, 그리웠고, 힘들었지만 설랬다.

주말이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녀와 화상채팅을 하며 사랑을 쌓아갔다. 그리고 2011년 5월21일 그녀가 행운의 파랑새처럼 그의 곁으로 날아왔다.

북한 형제 데려오는 것이 꿈

최근 영도 씨의 하루하루는 포근한 융단을 깔아놓은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다. 회사에서 마련해준 마전동 옥림아파트. 작지만 그들의 보금자리에는 언제나 '깨'가 넘친다."대한민국에 왜 이제 왔을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일터에서 돌아오면 '머나'가 따뜻한 밥상을 차렸고,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머나'의 한국어 실력 때문에 대화도 깊어진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는 지세포 바다마저 그들의 사랑을 시샘할 지경이다. 영도 씨만큼 부지런한 '머나'는 활동적이다.

다문화가족 센터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고 참여해 많은 친구들도 얻었고, 식당일도 해 봤다. 행여 몸이나 아프지 않을까 영도 씨는 노심초사다.

이제 사랑하는 머나가 '아기'를 갖고, 차곡차곡 저축해 북한의 형제들을 데려오는 것이 영도씨의 마지막 희망이며 꿈이다.

그가 걸어온 길이 험난했기에 이제 영도 씨와 머나의 여정은 길고 아름다울 것은 당연하다. 5월의 신랑, 신부는 그렇게 새록새록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We are the ONE

한국도, 거제도 이제 다문화 사회

미국을 '샐러드 보울(bowl)' 사회라고 한다. 한때는 다양성을 한데 녹여낸다고 해서 '멜팅 팟(용광로)'이라고 했다. 요즘은 개인과 소수집단이 가진 특성을 싱싱하게 살려 서로 어우러지게 한다는 뜻에서 샐러드 보울이라고 한다.

한국도 그리고 거제도 이젠 다문화 사회다. 귀화한 한국인이 약 10만명이고, 매년 1만명씩 늘어나는 추세다. 결혼이민자는 21만 명, 영도 씨와 머나양 같이 매년 3만쌍의 국제커플이 새로 생기고, 그들의 자녀는 15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나 외모는 전통적인 한국인과 다른 한국인, 생활습관이나 사고방식 등 '뼛속까지 한국인'인 한국인도 있다. 여기에 탈북자도 있다. 우리가 그들에게 더 따뜻한 마음을 열어야 하고, 그들과 함께 미래를 열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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