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배달의 기수 김선일씨와 강동열씨

찌르렁 찌르렁~.
김선일
"어머이...아들 편지 왔네예...이번 주말에 온다캅니더..."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거제 집배원의 산 역사 김선일(57)씨는 오늘도 새벽 6시면 일어나 서늘한 새벽 공기를 헤치고 거제우체국으로 출근을 한다.

거제시 동부면 구천리 출신인 김씨가 집배원 생활을 시작한 것은 지난 1976년. 우연히 마을 어르신의 소개로 우체국 급사 생활을 하다 공개채용을 거쳐 정식 집배원이 됐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44년이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건강상의 문제로, 혹은 정년을 맞아 하나둘씩 우체국을 떠났지만 김선일씨는 여전히 현역에 남아 오늘도 고현시내를 누빈다.

"그 시절엔 재미있었지. 연애편지 기다리는 처녀는 내가 올 시간이 되면 동구 밖에 나와 서성거리다 편지를 받아가기도 했고…. 동네 주민들은 모두가 다 형제간 같아서 밥 때가 되면 동네 빈집에 들어가 혼자 밥도 차려 먹고 그랬어."

지금 세대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시절 집배원은 마을 사람들과 가까운 존재였다. 태평양을 건너 원양어선을 타고 들어온 월급봉투도 전해주고, 아픈 어르신들에게는 읍내 약국서 정성껏 지은 약도 전해줬다.

좋은 소식이든 궂은 소식이든 사람 냄새가 풀풀 나는 소식들은 김씨의 손을 거쳐 가가호호 전해졌다. 그렇게 김선일씨는 동네사람들이 언제나 기다리는 '소식꾼'이 됐었다.

"마을을 돌다보면 농사짓는 어르신들이 막걸리 한 사발 하고 가라고 건네주곤 했었어. 이런 저런 잡담도 하고 한 탁배기 들어마시고 일어나면 그게 사람 사는 정이었던 게지. 하지만 지금은 다 옛말이 됐어."

사람네 정이 살아있었던 시절은 갔고, 지금 집배원은 과중한 업무와 사람들의 냉대속에 여간 힘든 게 아니라고 김씨는 털어놨다.

이집 건너 저집 다 형제간이었던 시대는 지나갔고, 요즘 사람들에게 집배원이란 짜증나는 요금 고지서를 전달해주는 귀찮은 존재가 돼버렸다는게 서글프다고도 했다.

세월의 흐름속에 인심은 각박해지고 사람들은 냉담해졌지만, 김선일씨는 정년이 되는 그날까지 우편물을 손에서 놓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아장아장 걸어다니던 아들(김정주·32)과 딸(김정남·30)도 이제 일터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의젓한 어른이 됐다.

"자식들 잘 된게 가장 큰 보람이지. 이제 정년이 딱 4년 남았어. 하는 날까지 일을 놓지 않을 생각이야. 9시 뉴스 한 번 보는게 소원일 정도로 일이 많지만 괜찮아. 가족들이 있으니 힘내서 일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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