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사망 보험금 전액 장학금 등으로 쾌척한 김정리 할머니

10년 전. 스물여섯살의 젊은 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먼저 보낸 70대 할머니. 아들의 사망 보상금을 10년 동안 고이 간직하며 한맺힌 눈물을 쏟아냈던 김정리 할머니가 17일 섬마을 작은 초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했다.
거제시 사등면 창호리에 있는 창호초등학교 졸업식에서 김 할머니가 아들의 사망 보상금 대부분을 복지재단 등에 기부하고 남은 나머지 보상금으로 졸업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조촐한 행사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10년 전의 불행을 되새기며 장학금을 전달한 할머니는 비로소 먼저 간 아들을 가슴에 묻었다.

섬마을 작은 초등학교 졸업식에 초대된 특별손님 할머니

17일. 사등면의 한 섬마을 작은 초등학교의 졸업식. 이 학교 특별실에 임시로 꾸민 졸업식장 내빈석 한 켠에 김정리(72)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졸업식에 참석한 내빈들은 주로 단체나 모임의 대표들로 졸업생들에게 상장 및 상금을 수여하기 위해 참석한다.

김 할머니 역시 장학금 수여자로 참석했다. 학력우수상, 3년 개근상 등 수많은 상들이 주인을 찾아간 뒤, 가장 마지막 순서로 할머니 차례가 되었다.

장학금 수여에 앞서 배경혜 창호초 교장은 "여러분 이번 장학금은 더욱 뜻 깊은 상입니다, 할머니는 아주 부자도 아니고 채소 농사를 지어 모은 돈을 여러분에게 전하는 것입니다"며 장학금의 의미를 되새긴다. 할머니가 수여할 상은 '김정리장학금'.

할머니는 지난해 가을,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며 창호초등학교에 500만원을 기탁했다. 장학금은 할머니의 뜻에 따라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전해졌다. 창호초교는 한 해에 5명씩 5년간 25명의 학생에게 '김정리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한 교사는 "기업 등에서는 간간히 장학금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칠순 노인 개인이 기탁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며 "할머니가 대단한 결심을 하셨다. 어린 학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의 나눔은 처음이 아니다. 할머니는 창호초에 앞서 성포중학교에도 장학금 1,500만원을 기탁했다. 이러한 할머니의 기부는 가슴 아프도록 아름다운 사연이라서 더욱 뜻 깊다.

할머니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먼저 등진 아들의 사망보험금을 내놓은 것이다.

5남매 중 막내아들을 잃은 건 10년 전 겨울이었다. 그 때는 한창 꼬막작업을 하러 다니던 때였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함박눈이 펑펑 내려 들과 산을 덮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이상하다 싶었지, 눈이 많이 와서 오늘은 작업을 안 할텐데, 어디서 전화가 오나 했어"라며 김 할머니는 마음 속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말을 내뱉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전화를 받았더니 아들이 죽었다고 하더라고."

순간, 정적이 흐르고 김 할머니는 한숨을 토하듯 눈물을 훔쳤다. 눈이 많이 와서 배도 차도 끊겨 제 갈 길을 잃고 멈춰버린 날이었다. 할머니는 우여곡절 끝에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이미 식어버린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단다. 교통사고로 숨진 아들의 얼굴에는 할머니 주먹보다 더 큰 피멍이 들어있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나지막히 말을 이어갔다.

"사고를 낸 사람은 택시기사였는데, 12년 무사고였다던데 우째 우리 아들을 쳤을꼬…."

김 할머니는 그렇게 살갑고 정 많은 스물여섯살의 젊은 아들을 먼저 보냈다. 그리고 아들의 사망보험금으로 2억5,000만원을 받았다.

"처음부터 이 돈을 기부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통장에 그냥 두었어. 나한테 몇억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 

할머니는 10년 동안 사망보험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그러던 중 병들고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는 한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저곳에 기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단다.

할머니는 아들의 사망보험금 대부분을 KBS 강태원복지재단과 사랑의 열매에 기부했다. 그리고 나머지 금액을 아들이 졸업한 성포중학교와 창호초등학교에 각각 1,500만원과 500만원을 기부했다. 할머니가 기탁한 기부금은 경남과 부산지역의 저소득층 자녀들의 병원 치료비와 교육비로 쓰일 예정이다.

김 할머니는 바다가 보이는 주택에 홀로 살고 계신다. 집 안에는 혈압약, 관절약 등 약봉지가 가득했다. 예전에 다친 허리가 요즘에 다시 아프고 허리가 아프니 다리까지 아픈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관절이 아파 무릎이 쉽게 굽혀지지 않는다.

아픈 몸이지만 할머니는 일하기를 쉬지 않는다. 할머니의 하루는 새벽 5시30분에 시작된다. 할머니는 동이 트기 전 길을 더듬어 밭에 가서 시금치를 캔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는 건 아침 7시. 고현 중앙병원 앞에서 새벽에 거둔 시금치를 판다고 했다. 바지락이 나는 계절에는 바지락을 캐서 팔기도 한단다.

"어떤 사람들은 그 돈 다 남주고 왜 이런 고생을 하느냐고 묻는데 난 하나도 안 아까워. 아들 좋은데 가면 그만이지…."

자식이 먼저 죽으면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칠십 노모는 자식에게 못다한 사랑을 어린 학생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그래서 막내 아들을 향한 김정리 할머니의 사랑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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