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 봄 조선소 작업 중 초고압선에 감전, 두 다리·한쪽 팔 잃어
삶에 대한 좌절만 사무쳐…인생 포기하려고 수면제 사모으기도
아내와 두 딸 생각하며 생명력 '부활'…동판화 작품은 '새 생명'

82년 악몽같은 사고를 겪은 반종납 씨는 평생 침대에 누워 생활하는 몸이 됐다. 하지만 그는 아내와 두 딸을 생각하며 동판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만든 동판화에는 그들 가족의 사랑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82년 봄은 반종납씨에게 악몽같은 시간이었다.

지세포 선창마을에서 가업으로 물려받은 조선소. 어선을 만드는 조그만 조선소였지만 먹고 살만했고, 이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두 딸의 재롱에 집안은 늘 웃음꽃이 피어났었다.

행복이 지나쳐서 하늘이 시기했던 걸까. 하루하루 꿈같았던 반씨의 가정에 일어나서는 안될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반씨가 작업 도중에 초고압선에 감전돼 두 다리와 한쪽 팔을 잃게 된 것이다. 자신이 선택하고 일군 행복한 길을 걷고 있던 반씨는 하루아침에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게 됐다.

"이런 몸으로 살 필요가 있나 하고 인생을 포기하려고 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반씨는 한 때 수면제를 사모으기도 했다. 기적적으로 목숨을 부지해 병원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에게는 그 어떤 삶의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삶에 대한 좌절만이 뼈에 사무치게 그를 괴롭혔다.

갈등과 방황으로 길을 잃은 그에게 살아야겠다는 강한 의지를 불어넣어 준 사람은 바로 그의 아내와 어린 두 딸. 이렇듯 '가족'이 그가 인생을 살아가야 할 이유였다면, 뒤늦게 만난 '동판화'는 그가 어두운 세상에서 빠져나오는 돌파구였다.

어느날 우연히 TV를 보던 반씨는 동판화 소개 프로그램을 보면서 동판화 만들기에 빠져들었다. 학창시절부터 빼어난 그림솜씨로 칭찬을 받아왔던 반씨였다. 그때가 88년이었다.

큰 딸 반서진 씨와 함께 찍은 사진. 부부는 슬하에 큰 딸 서진, 작은 딸 효진 양을 두고 있다.

"온 가족이 동판화에 매달렸습니다. 92년 전시회 때에는 동판화에 맞는 액자를 구하려고 울산까지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병원 침대에 누워 남은 한쪽 팔로 동판화를 그리며 반씨는 조금씩 삶의 재미도 되찾아갔다.  가족들의 도움이 가장 컸다. 작품을 구상할 때는 온 가족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소재를 찾았다.

반씨는 사진을 보며 작품을 구상하고 밑그림을 그렸다. 만약 가족이 없었다면 그의 작품 활동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반씨는 자신의 동판화를 4인 가족의 합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족의 이름을 한자씩 넣어 동판화에 찍는 낙관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은 힘이 부족해 더 이상 작업을 하지는 않지만, 그가 만들었던 동판화 작품 속에는 그들 가족의 삶의 의미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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