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병수발 30년, 이미련 씨의 삶과 희망

조선소서 감전사고 당한 남편, 20대부터 돌보며 "살아만주길…"
어느듯 환갑 앞둔 중년…"긍정의 힘으로 항상 감사하며 지내"

이미련 씨와 반종납 씨는 지난 1976년 대구의 한 음악다방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다.

"살아만 준다면, 남은 인생은 이 사람을 위해 살겠다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요. 가여운 내 두 딸을 아버지 없는 자식으로 만들 순 없었습니다."

전기감전 사고로 평생 침대 신세를 지게 된 남편 곁을 30년간 지키며 병간호를 한 효부의 사연이 알려져 주위의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사연의 주인공은 사등면에 살고 있는 이미련(57)씨. 두 딸의 어머니이기도 한 이미련 씨의 인생이 180도로 뒤바뀐 건 지난 1982년이다. 조선소를 운영하던 남편 반종납(62) 씨가 2만2,900V 고압전선에 감전돼 건주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면서부터다.

1978년, 2년간의 열애 끝에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

"의식을 잃은 남편을 싣고 정신없이 마산 고려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전기가 왼팔로 들어가 오른쪽 다리로 터지는 바람에 왼팔은 타버렸고 5,6번 흉추가 골절됐습니다. 팔다리가 없어도 좋다고 했어요. 살려만 달라고 애원하며 매달렸습니다."

남편의 왼팔은 화상 후유증으로 절단을 했고 가슴 아래부터 하반신이 마비됐다. 심한 욕창에다 살이 짖물린 채 였지만, 이 씨는 남편의 곁을 한결같이 지켰다. 어린 두 딸을 생각하면 이씨는 그 무엇도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씨의 기도는 한결같았다. 아직 어린 자녀들에게는 아빠가 필요하다고, 남은 평생 남편의 손발이 되겠으니 남편을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그의 기도가 하늘을 감동시켰을까? 기적이 나타났다. 대소변을 받아내고 욕창을 소독하면서 남편을 간호하기를 20개월, 남편이 병원을 나오게 됐다.

하지만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쌓여갔다.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한번에 600만원씩 한 달에 4번씩 병원비가 쌓이면서 한달만에 2,400만원이 됐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가산을 팔고 가족들에 도움을 요청하며 빚을 갚아 나갔지만, 엄청난 병원비 청구서가 이씨의 손 위에 있었다. 방법이 없었다.

남편 반종납 씨가 투병 중인 시절. 힘겨운 나날 속에서도 이미련 씨는 남편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씨는 무작정 당시 거제군수를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며 도와달라 요청했다. 도와만 준다면 온전히 가정을 지키는 것으로 거제군민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군수의 도움으로 의료보조카드가 만들어졌고, 그때부터 병원비는 내지 않아도 됐다. 남은 병원비는 친정 식구들의 도움과 보험료로 해결했다.

그 때 이씨의 나이 스물 여덟. 꽃 다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고난은 그때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의 수족이 되야 했고, 혼자 힘으로 두 딸을 키워내야 했다. 돈이 필요했으니 힘겨운 돈벌이에 뛰어들었다.

두 딸을 공부시켜야 했고 먹고 살 돈도 벌어야 했다. 식당 허드렛일을 하며 돈을 벌어 아이들을 키웠고 남편 약값을 댔다.

이렇게 살면 뭐하냐며 약을 털어넣기도 했던 남편을 만류하며 가정을 지켜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그렇게 모진 30년이 지났다. 꽃 같았던 이씨는 어느듯 환갑을 앞둔 중년이 됐다.

"처음 10년은 나의 힘으로, 그 후의 세월은 신앙의 힘으로 이겨냈습니다. 한땐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모든 것을 놓고 싶다는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번씩 스쳤지만 포기할 수 없었어요. 내가 정신을 차려야 내 가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30년이 흘렀습니다."

남편 반씨가 사고를 당했던 82년, 젖먹이었던 어린 두 딸은 이제 아름답고 성숙한 성인이 되어 있다. 큰 딸은 고등학교 졸업 후 취직을 해 생계를 돕다 한 가정을 이뤘고, 작은 딸은 뒤늦게 음악공부를 시작해 지금 소프라노로 활동 중이다.

오랜 세월을 힘겹게 살아온 사람답지 않게 이씨의 얼굴은 밝고 활기찼다. 이씨는 남편을 한번도 환자로 대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환자로 대하는 순간 가족 모두가 힘들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남편은 그저 몸이 조금 불편할 뿐이고 가족들은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함께 도와나가면 그 뿐이었다고 했다.

지금도 이씨는 아침 6시면 일어나 남편의 몸을 씻긴다. 30년의 세월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해 온 이씨의 일상이다. 그를 움직인 건 긍정의 힘이었다. 그리고 그의 가정을 지킨건 희생과 사랑의 마음이었다.

"항상 감사해요, 우리 남편에게. 살아있어 줬잖아요. 그리고 든든하게 우리 가정의 아버지 자리를 지켜줬잖아요. 결혼할 때 쓰는 하얀 면사포의 의미를 아세요? 그건 평생 남편에게 복종하겠다는 의미랍니다. 30년 전 저는 하얀 면사포를 쓰고 남편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서약한 맹세를 여전히 지키고 살아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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