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부족,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 ②

민간기업 상수도 처리시설 수십곳 운영, 오랜 수질·시스템 관리 노하우 자랑
소비자연맹 공공·민간 가리지 않고 감시 … 선거반향 일으켜 요금인하 이끌어

▲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며 프랑스 지역을 흐르는 세느강 전경.

◆민간 물기업, 노하우·기술력으로 수돗물 신뢰 높여

나폴레옹이 집권한 1800년대 초, 파리시를 대상으로 상수도 공급이 처음 시작될 때부터 프랑스의 상수도는 민간기업의 영역이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수자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물산업에 뛰어들었다. 특히 프랑스의 다국적 물기업 ‘수에즈’와 ‘베올리아’는 세계 각지 10억 명 이상에게 물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며 세계 물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이들의 노하우와 기술력은 시민들의 수돗물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프랑스 파리를 비롯해 여러 지자체가 수돗물 공급을 공공화하면서 물기업과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또 프랑스 최대의 소비자단체는 지자체별로 적정한 물값을 산정해 지자체와 물 기업의 일방적 독주를 견제하고 있다. 공공과 민간의 경쟁과 시민단체의 견제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시민에게 더 깨끗하고 더 저렴한 물을 공급하고 있다.

▲ 프랑스 파리시에 만들어진 파리하수도 박물관

프랑스 파리시 외곽 르펙지역 세느강을 낀 평야에 조성된 ‘수에즈’ 그룹의 환경 분야 자회사인 리오네즈 데조의 상수처리센터. 파리시에서 서쪽으로 50㎞에 걸친 70개 지자체 150만 명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는 이 센터는 별개의 식수생산공장 5곳과 식수원인 강물을 1차 여과시켜 지하로 침투시키는 침전지들을 관리하고 있다.

침전지를 통과한 물을 다시 뽑아 올려 정수처리한 뒤 각 가정으로 공급한다. 수에즈 그룹은 프랑스 전역에서 이런 대규모 상수도 처리·공급센터 30개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의 역할은 물 공급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연구소에서는 새로운 물처리 기법을 연구해 더 깨끗한 수돗물을 공급할 방법을 찾는다. 이런 연구개발과 시설 투자가 더해져 수에즈 그룹은 철저한 수질관리와 시스템 관리 노하우를 자랑하고 있다. 지역마다 설치된 콘트롤센터에서는 상하수도관 등 모든 네트워크를 모니터링하고 원격 조정할 수 있다.

스테판 코뉘 리오네즈 데조 지역센터 기술담당은 “리오네즈 데조에는 연구원만 200명이 있어 수돗물의 질적 개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며 “회사가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좋은 품질의 수돗물을 공급하고 가격을 책정해 상수도 요금에 대한 이견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 기획취재단이 파리시 상스도 공급 공공기관인 Eau de paris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다.

◆파리시, 수돗물 가격 불만 반영해 공공화 전환

민간 영역에서 시작한 프랑스 상수도의 특성상 물기업들은 자신들의 돈을 들여 정수장을 만들고 공급 관로를 설치하고 있다. 물론 이런 투자비는 수도요금으로 보상받는다.

하지만 초기 투자비가 높을 때는 장기계약을 통해 상수도요금 인상을 최소화한다. 통상 기업과의 계약 기간은 8~12년 정도로 관로 교체 등 투자비가 많이 들어가면 최장 20년까지 연장되기도 한다.

물기업들은 오랜 노하우를 자랑하며 높은 수질과 적정한 가격을 내세우지만 정작 소비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물 값에 대한 불만이 높은 것이다.

오랜기간 상수도공급을 기업에서 맡다 보니 지자체들은 물관리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한 실정. 그럼에도 최근 계약 기간이 만료된 지자체 중 상당수가 요금과 수질에 대한 시민의 불만을 반영해 상수도 공급을 민영에서 직영으로 돌리고 있다.

현재 수에즈에서 맡은 파리시의 상수도 공급도 올해 말로 계약이 끝나고 내년 1월1일부터는 파리시로 이관돼 우리나라 지자체의 상수도사업본부와 같은 파리시 상수도공급 공공기관인 ‘오 드 파리’가 맡게 된다.

이는 현재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이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상하수도 서비스의 완전 공공화를 내세워 연임에 성공하고 나서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작업이다. 파리시 상수도의 공공화 전환은 세계적인 민영화 추세에서 드문 사례로 세계 각국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방문하고 있다.

오 드 파리의 국제협력부 담당자인 마티외 글라이만은 “상수도 공영화로 그동안 민간기업이 취했던 이윤이 상하수도에 모두 재투자돼 가격과 수질 면에서 시민들의 기대가 높다”며 “파리시에서도 시민단체와 정책연대 등을 통해 질 높은 식수를 제공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 프랑스 파리시에 만들어진 파리하수도 박물관

◆시민단체의 끈질긴 문제 제기로 수돗물 요금인하

프랑스의 상수도 공급은 독점적인 기업에 지자체가 공공화로 경쟁하는 상황이다. 여기서 정작 물의 소비자인 시민들에게는 결정권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최대의 소비자단체인 ‘소비자연맹(UFC)’이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요금과 수질을 감시하고 나섰다. UFC는 1960년 발족해 현재 14만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UFC는 소비자 권익 차원에서 지난 2005년부터 상수도 문제를 조사하고 있다.

이들은 정확한 가격을 산정하려 지자체와 물 기업에 계약서와 재원조달 등 관련자료를 요구했지만 대부분 자료가 형식적이고 부정확했다.

그 때문에 UFC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고 공개된 정부 자료를 토대로 물이 상수원에서 정수처리 돼 가정에 공급될 때까지의 과정을 37단계로 세분화해 비용을 산출했다.

그 결과 프랑스 제2도시인 마르세유의 물값은 적정가격의 배 이상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조사 결과를 2006년 1월 기자회견과 UFC가 발행하는 주간지를 통해 발표했다.

이들의 조사 결과는 많은 지자체로부터 ‘신뢰성이 떨어진다’며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UFC와 지자체 간 대화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더 정확한 자료를 받고 분석방법도 보완했다.

두 번째 분석결과는 2007년 11월 발표됐다. 첫 번째와 달리 두 번째는 이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와 맞물려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상수도 공영화와 요금 문제를 들고 나온 파리 시장이 연임에 성공했고 마르세유와 리옹시가 베올리아사와 새로운 계약을 맺으면서 수도요금을 17% 인하한 것이다. 시민단체의 끈질긴 문제 제기가 요금인하로 이어졌다.

프랑스와 카를리에 UFC 연구실장은 “지난 1985년에서 2005년까지 프랑스 물가가 30% 정도 오르는 동안 물값은 250%나 올랐지만 소비자에게는 다른 소비재와는 달리 선택권이 없었다”면서 “UFC는 수돗물 공급을 민간기업에서 계속하든, 지자체가 공공으로 전환하든 상관없이 소비자들에게 양질의 물을 적정한 가격에 공급하도록 감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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