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려면 풍수지리를 알아야 합니다 ②

●혈: 용맥을 따라 전달된 생기가 모여 있는 땅으로 집을 짓는 자리를 말합니다. 보통 산줄기 끝에 위치하며 밝고 단단합니다.

●사: 혈의 생기가 바람에 흩어지지 않토록 주변을 감싸주고 있는 산을 말합니다. 혈 좌측에 있는 산은 청룡, 우측은 백호, 앞에 있으면 안산, 뒤에 있는 산은 현무입니다. 안산 너머로 있는 산들은 조산(朝山)이라고 부릅니다.

●수: 물은 생기를 보호하고 인도하고 멈추게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따라서 용맥이 멈추어 혈을 맺으려면 반드시 앞에 물이 있어야 합니다.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 물이 있으므로 이러한 지형을 배산임수(背山臨水)명당이라고 합니다. 물이 혈처를 감싸주듯 환포(環抱)해 주어야 길 합니다.

●보국(保國)명당: 주변의 산들이 사방을 감싸준 안쪽 공간을 말하며 국세(局勢) 또는 국(局)이라도 합니다. 명당은 혈 앞의 들판을 말하는 것으로 보국명당을 평탄하고 원만해야 길 합니다.

●양택풍수가 음택풍수 보다 우선: 오늘날 묘지 문제 등으로 인하여 매장문화가 점차 화장(火葬) 문화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풍수지리도 음택 쪽에 이용하는 것보다 양택 쪽에서 더 다양하게 응용하고 있습니다.

본래 풍수지리학의 출발도 음택풍수보다도 양택풍수가 먼저였습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또는 생활의 편리를 위해서 자기가 생활할 터전을 찾아 왔습니다.

원시시대에 좋은 자리를 찾으면 먹고 쉬고 자는데 편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연 재앙이나 적으로부터 자신의 동족을 보존하고 번창시키는 것이 용이하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땅에서 어떤 형태의 집을 짓고 사느냐가 원시시대에서는 그 부족의 존폐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보다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그들은 전쟁을 했고 결국 좋은 조건을 갖춘 땅을 차지한 부족은 발전하여 고대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풍수지리를 죽은 자의 무덤보다는 산 사람의 생활 터전을 찾는데서 발전하여 왔습니다. 후에 생기론과 동기감응론이 등장하면서 음택풍수가 발생하였지만 풍수지리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죽은 자를 위해 음택을 잡는 것보다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양택풍수가 먼저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도읍지와 마을 터를 정하고 사찰, 적게는 개인의 주거용 건물을 짓는 양택풍수가 먼저 발전하였습니다. 조상을 좋은 명당자리에 편안히 모시고 그 발음(發蔭)으로 자손들도 부귀를 꾀하려는 음택풍수가 성행했습니다.

[삼국유사]에서 신라 제 4대 탈해왕(재위기간 서기57-80년)편을 보면 탈해가 지세가 좋은 집을 구해 왕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풍수와 관련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이라 할 수 있으니 양택이 먼저였음을 말해줍니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