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요일에 모처럼의 시간을 내어 등산을 하였다. 김해 장유면 대청계곡 뒤의 용제봉을 목적지로 정했다.창원·마산·김해·진해주변의 인근 산들, 천주산 봉림산 비음산 대암산 불모산 장복산 시루봉 굴암산 무척산 등은 자주 오르는 곳들이고 용제봉도 빼 놓을 수 없는 코스인데 특히 용제봉은 집에서 바로 걸어 출발 할 수 있
배운다는 것은 성현들이 이미 깨달으신 바를 말함이다. 멀리서 찾아오는 벗이란 성현이 깨달으신 바를 배우기를 좋아하는 도반이다. 그러므로 성현의 도를 공부하고 또한 도반이 도를 논하기 위하여 찾아오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우리에게 삶의 바른 가르침을 주신 성현들이 계신다. 이분들의 가르침은 진리이거나 진리에 가깝다. 이 분들이 깨달음을 통하여 진리를 터
불기 2553년 부처님 오신 날. 룸비니 동산에 광명으로 내리어 고해 중생 제도코자 사바에 오신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 합니다.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인간존중 선언한 탄생게, 평등한 인간관계, 우주와 인연 맺은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중선언. 그리고 삶의 고통 속에 괴로워하는 우리들의 아픔을 치유코자 먼 도솔천
1. 옛날에 유명한 애꾸눈 장군이 있었다. 이 장군은 자신이 죽기 전 자신의 초상화를 꼭 그리고 싶었다. 그 나라에 유명한 화가들을 한 곳에 모아 장군의 초상화를 그렸다. 하지만 유명한 화가들의 초상화를 본 장군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어떤 유명화가는 장군의 본 모습대로 한쪽 눈이 없는 모습 그대로 정물화처럼 잘 그렸지만 장군은 초상화 속 자기 모
먼저 수행이 깊으신 高僧大德, 학문이 깊으신 석학들께서 나무라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배움이 짧은 재가불자로서 평소에 생각하던 바를 쓰면서 움츠러 드는 마음으로 송구함을 표합니다. 또한 제 표현 중에 잘못된 부분이나 내용이 있으면 준절한 가르침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에 삼법인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에 사성제 팔정도와 12
유명한 학원 강사는 유명세를 받고 제도권에 교육은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은 현실 또한 소통 부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계부는 항상 적자요. 그 누구에게도 토로 할 수 없는 짐이 된지 오래입니다. 이 모든 것이 소통에 부재입니다.지금 우리사회는 풍요가 넘치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정작 풍요를 만족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생각해봅니다. 스스로 짐을 만들어 그 짐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사를 건네고 서로에 안부를 묻고 걱정하는 것이 소통입니다. 그러나 요즘에 실상을 보면, 우린 이웃 간에 이런 소통에 인색합니다. 벽 하나을 두고 사는 콘크리트 문화, 담장에 넘어도 아니요, 울타리의 경계도 없는 벽하나 사이 문화는 서로에게 참 인색합니다.얼마 전부터 학생들이 촛불 문화라 하며 사회의 이목을 집중
가다죽어 그리워도 못 잊어 가오리다불꽃에 타는 정이 연긴들 없으리까이 몸이 재가 되어도 그대 곁에 있다 면은 드높게 그린 사랑 은하수 흘러 흘러 그 세월 이제 와도 때늦지 않으리라 임이여 돌아오셔서 월영처럼 가지 마오 나 죽어 가거덜랑 노을로 묻어놓고 눈물은 초롱인 양 바람 곁에 드날리며쨍쨍인 햇볕에 말려 없는 듯이 잊어주오■그대 해설 저마다 사랑하고 증오
“자기본래시불 천진자성인인구족(自己本來是佛 天眞自性而人人具足)하고 열반묘체(涅槃妙體)가 개개원성(箇箇圓成)하야 불가타구(不假他求)요 종래자비(從來自備)니라.”자기가 본래 부처이며 천진한 자성이 사람마다 모두 다 갖추고 있으며 열반의 묘체가 개개인에게 모두 원만하게 이루어져 있는데 왜 다른 곳에서 부처를 구하려고 하느냐? 본래부터 스스로
공명(功名)한 일을 자랑하고 문장(文章)을 뽐내는 사람은 모두 바깥 물건에 의하여 훌륭해진 사람으로서 이들의 마음 바탕이 찬란하게 빛나는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면 사소한 공적조차 하나도 없고 글자 한 자 안 배웠다 할지라도 정정당당한 사람이 될 수 있느니라.공업(功業)을 뽐내고 문장을 자랑함은 그가 외물에 의지하여 이루어진 사람이기 때문 이니라 마음의
쥐의 해가 끝나고 소의 해가 시작된 지가 20여일 가량 된다. 무자년 12월부터 소의해 20여일이 지나는 동안 본인의 처소에 다녀간 사람이 3-4백여명이다. 그 중 3분의 1 가량은 비불교인이다. 한해의 운수와 운세가 굼금한 것은 불교와 비불교인이 동일하다고 본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관습과 통과의례를 잘 지키고 새벽기도를 잘 다니며 환경을 바꾸어보고 마
눈으로 빛을 탐하고, 귀로 소리를 탐하고, 코로 향기를 탐하고, 혀로 맛을 탐하고, 몸으로 보드라움을 탐하여 항상 五진의 속박을 받는다.또 6친과 일체 권속이 다 삼세의 원수이니 모든 원한의 대상은 다 친한데서 생기는 것이다. 만일 친한 사이가 없으면 원수도 없을 것이며, 친한 이를 여의면 곧 원수를 여윌 것이다.그러므로 친척과 권속이 서로 원망하며 혹 부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인 찰스 디킨스가 ‘에드윈 돌드의 신비’라는 작품을 쓰다가 1870년경에 죽었다. 그런데 1872년에 미국의 버몬트주에 살고 있는 공장직공인 제임스라는 사람이 1872년 크리스마스부터 그 이듬해 7월달까지 미완성 부분을 쓰고 서명하여 1874년에 출판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것을 서구에서는 디킨스가 집필하던 책
제사란? 선조가 돌아가신 날을 맞이하여 생시에 봉양이 미진한 불효의 마음을 사죄하는 추도 의식이다. 조상은 신이 아니고 살아있는 부모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고 조상과 자손은 제사라는 의식을 통해서 연결된다.따라서 제사는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표현형식이다. 문명이 서로 다른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이와 같은 현상들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집트에서는 미이라를
다수의 주장이 일치 되지 못해도 물길은 가야 할 길을 가야 함니다. 뜨는 해는 희망차고 지는 해는 아련하고 그렇게 우리는 분별하지만 해는 언제나 처럼 그자리 그 모습일 뿐입니다. 뜨는 해가 설레이는 만큼 지는 해도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온종일 하루를 비치우고 온갖 하루의 일상을 낱낱이 짊어지고 그리고 또다른 세상을 비추기 위해 그런 아름다움의 여운
오늘 오늘이 허공 속으로 사라지더니 벌써 신년을 맞았다. 양력은 새해라지만 음력은 동지섣달이다. 금년이라 할까 신년이라고나 할까?오늘과 내일이 이런 현상처럼 움직인다. 어찌되었건 동지도 지났고, 나이도 골고루 한 살씩 더하여 가졌으니,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 하여도 기분은 나쁘지만은 않다. 갈매기는 바다 위를 날고, 파도는 인연 따라 해변을 오르내린다. 우
얼마 전 공영방송에서 수능시험 날 전국의 유명 사찰과 각 종교기관에서 기도하는 것을 대대적으로 방영된 것을 본 적이 있다.과연 불공 기도를 하면 좋은 점수를, 고득점을 받고 좋은 학교에 입학 할 수 있을까? 방송에서 어느 학부형과 인터뷰에서 말하길 시험기간에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부처님께 기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과연 그러 할까? 부처님은 모든
5살, 어느 여름 날. 저희가족은 거제 산골에서 부산으로 나들이를 갔습니다. 60년대에 부산 나들이는 정말 가슴 벅찬 일이였습니다.남포동 자갈치시장에서 저 시야에 제일먼저 들어 온 것은 세발자전거였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세발자전거. 부모님을 졸라 자전거를 구했습니다. 당시 저희 동네친구들 중엔 자전거를 가진 아이들은 없었습니다. 시골인데다. 생활도 다들 어
불자들은 가슴속에 항상 마음의 부처님을 모시고 다니면서도 멀리 있는 강이나 바다, 산에서만 부처님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니 가면 갈수록 내 속에 있는 불성은 아득히 멀어져만 가고 어느 누가 불교에 대해 물으면 막연해지는 것입니다. 경전에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淨其意)시제불교(是諸佛敎)’라고 했습니다. 내
그는 부처님을 모시고 칼란다카 마을 근처로 옮겨갔고, 수제나의 어머니는 아들이 여러 스님들과 함께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아들을 찾아갔다.“수제나야, 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남자가 없으니 많은 재산을 관리할 수가 없구나. 네가 다시 돌아와 집안을 돌보아야 하지 않겠느냐?”그러나 청정한 생활을 즐기며 도를 닦고 있었던 수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