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은 정치적 언행을 곧잘 하다가도 정작 정치적 견해나 처지를 물으면 정치를 잘 모른다고 변명하거나 정치인 자체를 싫어한다고 둘러댄다.물론 그 질문의 취지가 어디까지고 정치나 정치인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대답할 성질이지만 집권층과 여의도 국회, 정당들로 여겨지는 제도권 정치와 여기에 편승하는 관변 단체와 시민단체, 언론 매체들의 직간접 영향
방송계에 종사했음에도 방송을 좀체 보지 않다가 최근에 들어 접한 여러 채널들에서 꽤 충격에 빠졌다.소위 종편이라고 해서 등장한 몇몇 시사 채널들의 무분별한 정치평론과 거기에 등장해서 함부로 사용하는 여론 오도와 분쟁의 정도가 지나치다 못해 악의에 가까운 내용들이 그대로 방영되고 있었다.정치토론을 하는 게 아니라 억지주장으로 시비를 일삼고, 심지어는 방송 출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보인 변화의 하나가 생활구도의 도시화 현상이었다.물론 그 전에도 서울을 향한 엄청난 인구 집중이 있었지만 행정구도 개편에 의한 인구 비례 단위 승격이 시작되고 광역도시화의 기초가 다져진 것은 그 무렵이었다.어떤 사람들은 세계가 기존의 민족문화 구역으로부터 도시국가 형태로 바뀔 것이고, 마치 바람이 흩어졌다가 거대한 소용돌이 행태로 뭉쳐
당사자가 아니어서 실감은 없지만 아마 통찰력을 가진 한 정치인이 지방행정을 맡으면서 고민에 빠진 것은 빚만 잔뜩 늘어 난 도정형편이었을 것이다. 수조원의 예산을 들인 도로유지가 적자투정이고, 의료복지 차원에서 운영하는 의료기관이 서민복지가 아닌 소수노조 복지의 굴레에 갇혀 기형적인 빚을 늘리고 있던 때였다.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가 지닌 구조적인 모순과 부실운
한 대학가에서 학생과 교수들에게 요즘 우리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 뭐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엇비슷하지만 진영논리에 갇힌 사람들의 충돌이 잦다는 것으로 견해가모아졌다.보수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극우와 합리적 보수가 있고, 단순하게 친여 성격이 강하거나 국수주의적 성격을 가진 사람 등 그 행태가 다양하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종북이나 극좌가
요즘 신문이나 방송의 소식들을 대부분 점용하는 내용이 정치 분쟁이다.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어나는 온갖 해프닝과 정파 간 갈등의 요지들을 살펴보면 한 마디로 집권층과 그 주변의 함량이 모자라고 대처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우선 집권세력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인 인재의 등용과 운용부터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편향성을 띄고 있다.사람을 경솔하게 임용
돌이키기 싫은 기억이지만 IMF환란의 조짐이 보인 정황은 그해 추석 무렵부터였다.당연히 명절 대이동이 시작되어야 할 판에 철도와 고속도로는 한산했고, 귀향하는 사람들의 손에 들린 선물 뭉치들은 가볍고 빈약했다. 그걸 보고 TV뉴스앵커들은 연휴 일정이 분산되어 붐비지 않는 명절을 지낸다고 엉뚱한 해석까지 곁들였다. 빈부차이가 벌어진 후 비교적 생활수준이 중산
내년 지방선거가 채 10개월 정도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무더위가 채 가시기도 전에 웬 선거타령이냐고 할지 모르나 벌써부터 선거준비에 나선 후보들의 물밑작업이 속도를 드러내고 있고 여야 공히 후보군의 윤곽이 오르내린다.지난 해 대선 때와는 달리 공천여부를 둘러싸고 이해득실을 저울질하는 여야의 선거구도 환경이 올바른 지방정치를 벌써부터 혼란으로 이끌고 있다는
세상에 얼마나 권력과 돈이 그리 탐나서 일국에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들이 부정한 돈을 축재해서 온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말년까지 나라망신을 시키느냐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지역이나 나라를 위해 공인을 자처했으면 개인적인 물욕이나 사심을 초월해야지 권력도 얻고 돈도 벌겠다는 모리배 적 발상은 아무리 선진국을 외쳐대도 세인의 손가락질을 받는 열등국의 수
요즘 국사교육을 염두에 둔 논란이 일고 있다. 언필칭 애국지심에 사로잡힌 보수층일수록 요즘 세대들이 나라의 역사를, 그것도 한 세기 안팎의 근세사나 현대사를 제대로 못 배웠다고 한탄하고 마치 그런 세대들이 애국심도 없고 충효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아 장래가 걱정된다는 요지다.누가 봐도 당연한 말이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 그것도 국가라는 공동체의 안위를 생각
바야흐로 해수욕을 즐기는 계절이다.맑고 깨끗한 바다가 있고, 고운 모래 벌과 해조음이 있는 자연의 유혹에 누구라도 이 무더운 여름날이면 바다에 첨벙 뛰어 들고 싶은 충동이 있다.지금 전국적으로 이런 유혹에 따라 해수욕장을 찾는 인파가 줄잡아 수백만을 넘고 우리 지역만 해도 시설이 감당키 어려울 만큼 인파가 넘치고 있다.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국내의 타 해수
오래전부터 거제 지역에는 바다와 절경을 찾아 여름휴가를 보내는 손님이 늘어나고 있다. 거기에 발맞추어 건축제한에 따른 숙박시설들이 늘어나 곳곳에 펜션이 생겨났다. 민박을 포함한 팬션시설의 난립이 주는 득과 실은 차치하고라도 우선 자연환경에 잘 어울리는 바캉스 문화의 확보는 장차 관광특화의 바탕을 마련하는 훌륭한 에너지가 된다.관광호텔을 비롯하여 일반호텔이나
사람의 수명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굳이 통계를 들이대지 않아도 옛적에 사십만 지나면 늙은이 행세를 자처하면서 노후를 살피던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인생의 60년을 한 갑자로 셈한 것은 삶의 주기율을 상징하는 것이고, 환갑잔치를 인생의 마감행사처럼 여기던 시절에서 보면 이러다가 머잖아 일생에 회갑을 두 번쯤 하게 되는 현상이 닥칠지 모른
우리나라는 산천이 매우 수려해서 토양이 질박하고 고유의 특산물이 많다. 그것은 반도라는 지형이 가진 산과 바다의 조화와 동서남북의 절묘한 대칭 위에 자리한 풍향과 만물의 자생력이 빚어내는 생멸의 유기적인 조화가 이루어내는 특질이다.필자는 늘 고향 마을의 선배와 어른들로부터 배우는 지혜가 있다. 철모르고 배웠던 음력의 자연성, 그 오행이 빚어내는 갯가의 변화
어느 지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질, 언필칭 경상도 기질이니, 전라도 기질이니 하는 지역적 기질이나 특정 지역인들 만이 갖는 기개와 정신은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는 산물이 아니다. 그 기질과 역량의 바탕에는 환경적인 요인과 역사적 정치적 배경이 있고, 어떤 기질이 되고자 하는 현시적 욕구가 슬로건처럼 등장한다.얼마 전 부산이 시민정신을 고양하는 슬로건을 '
지역행정구도의 근본적인 개혁 요구가 등장한지도 꽤 오래되었다. 이미 20세기가 시작되기도 전인 식민지 시대의 통치수단으로 정해 놓은 행정구역과 제도가 21세기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히 유지되고 연연한다는 것은 수치에 가까운 구태였다.이명박 정부가 등장하면서 여기에 관한 개혁을 역설했지만 엉뚱한 개발 사업에 국력을 소진하면서 흐지부지되어 버렸다.그 사이 일부 지
아마 어느 우유회사의 횡포가 오래 묵어 온 우리 사회의 갑과 을의 형평성에 대한 분노를 자극한 단초가 아니었나 싶다.이 논쟁이나 갈등은 다분히 경제적인 거래관계에서 비롯되어 지금 정치적인 수식어로, 선동적 매개와 갈등의 기준으로 마구 확산되고 남용되기 시작했다.이 세상의 어느 대상이든, 양과 음, 좌와 우, 강과 약, 명과 암, 상과 하를 적용하다보면 해당
터널은 여러 가지 행태나 용도가 있지만 요즘 터널이라고 말하면 대개 도로를 이어가기 위한 산과 산 사이의 통로가 되는 굴착형 통로를 뜻한다. 도로를 만들기 위한 환경에 따라 터널이 많은 지역이 있고 필요 없는 지역도 있을 것이다.그러고 보면 현대의 교통문화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현상이 터널의 증가일 것이고, 공법 또한 정교하고 신속해서 웬만한 산지라면 터널
갯가를 찾아 낚시를 하는 일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편이면서도 낚시허가제를 거론하는 것이 어딘지 좀 모순 같다는 생각이 없지 않다. 그러나 낚시터를 자주 찾는 사람이라야 낚시터 실정을 알 수 있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연안의 바다 환경이 어느 지경이라는 것쯤은 알아야 하기에 감히 제안을 드린다. 한마디로 지금 거제의 연안은 주검의 환경으로 변해가고 있다.갯바
우리나라의 선거정치는 그 역사성에 의해 지방정치보다는 정당 권력이 집중된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지방자치시대의 시작과 더불어 시민단체들에 의한 감시역할 역시 지방보다는 서울 위주의 검증으로 전개되어 왔다. 정치 구조가 그래왔고, 인재의 집중도가 그래 왔듯이 아직도 행태만 답습하는 지방정치의 구도는 내용면에서 실질적인 변화나 개혁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