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이 어디란 말인가. 부처님은 생각하고 있는 곳이 시작이고 생각이 없는 것이 끝이라 하신다. 생각이 없다는 것은 은퇴일 것이다. 이는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라 이타적인 생각을 의미 할 것이다. 아무런 대가나 욕심을 바라지 않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지속되는 것이 행복한 은퇴일 것이다. 부처님은 은퇴에서 나오는 성냄을 버리는 대
평생 동안 직장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흔들릴 때면 미움이 일어난다. 순간적인 혼돈이라는 것이 나에게 찾아오면 마음이 힘들어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미워하는 마음을 멈추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적 잘못인지, 개인의 잘못인지를 모른 채 별것 아니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안정하지 못하는 것이 반복되면 나중에는 엄청난 괴물이 돼버린다. 부처님은 화도 고통이며
우리는 살고 일하는 것 모두에서 번뇌를 가지고 있다. 곁에 일하는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느낄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나만 최선을 다하면 해낼 수 있다는 꿈을 안고 열심히 노력하며 나름대로의 스펙을 쌓고 살아간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생각의 실패에 부딪히고 호락호락 하지 않는 현실에 좌절도 한다. 자신이 별 볼일 없고 티끌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면서 실의에
삼도처가 있으니 성을 달리하고 사람을 달리하며 법을 달리한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남을 위해 설(說) 하지만 아무 이익도 거두지 못하는 것이고 사람이 하는 바는 일체가 숙명으로 인해 지어졌고 일체가 다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다는 것이다. 마음도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며 잠시도 쉬지 않고 변화한다. 눈앞에 보이는 고정된 형상과 관념에 집착하는
선(禪)이란 마음을 고요하게 가다듬어 어리석고 어두운 마음을 맑게 하여 깨달음을 이루는 과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은 욕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고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생각이 맑고 몸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거나 기준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부처님처럼 크고 넓은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목적이도 하다. 우리는 그 목적을 위해 선을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인연을 맺으며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인연들은 우리들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한다. 우리들의 삶의 행복과 불행은 수많은 인연 속에서 연속된다.이러한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 인연의 뿌리는 어디서 오는 걸까? 옛말에 "잘 되면 내 탓이요, 못되면 조상 탓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잘못 전해져 오는 말이다.
찜통 날씨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비가 오면 화창한 날씨를 생각하고, 화창하면 비오는 날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 마음이다. 많은 가지는 흔들림에 청정한 자성을 좀먹고 우리의 인덕을 훔쳐가는 것이기에 화목으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단연코 여러 가지 나쁜 마음을 마땅히 버려야한다. 실천하지 않는 행동에서 탐욕과 애갈심도 버려야 한다.내가 판단해 마음에
태어나서 살고 죽고, 힘들고 편안하고, 행복하고 불행하고, 춥고 덥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부처님의 삼보 보배란 뜻으로 생각해 본다.불보는 일체 존재와 일체 생명의 근원된 진리이다. 이 위없는 진리가 부처님 법이다. 우리들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따라 배우고 수행하며 닦아가는 생활방법이 있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사회 삶에 법문이다. 올바른 행동에 사회구조
삼독(三毒)은 탐욕·성냄·우치(愚癡)의 세가지 번뇌를 말한다. 잘된 것에는 남보다 내가 잘 했다고 믿고 오직 삼화(三火) 또는 삼구(三垢)라 말하며 사회 분위기를 해치는 부정 근본이므로 삼불선근(三不善根)이라고 법문에 말한다. 삼독은 청정자성을 더럽히고 소리없이 봉사와 근본을 위해 행위하는 사람의 마음을 해친다. 또한 원만한 공덕을
우리의 행동이 업이다. 업이란 말 속에는 행위와 의지에 의한 마음의 활동, 즉 짓는다는 의미도 있다. 우리는 뜻으로 생각하고 몸으로 활동하거나 말로 생각을 표현한다. 뜻이 먼저 있고 그에 따른 말이나 행동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를 둘러싼 주위 환경이나 성정과 함께 나타나는 온갖 생활 여건들의 일차적 원인은 자신의 업이다. 우리들 자신과 주위환경을 만들어 내
부처님께서는 자등명(自燈明)법등명(法燈明), 자귀의(自歸依)법귀의(法歸依)하라고 말씀하셨다. 즉 스스로 마음의 등불을 밝히고 부처님이 설 하신 등불을 밝혀서 사바세계를 수행하며 살라는 가르침을 내리셨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으며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말라(장아함경)고 하셨다. 세상의 모든 고통·원망·근심&midd
자연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인연이 있다. 뿌리에 씨앗이 충분히 자라날 수 있는 인연이 쌓일 때 꽃이 핀다. 우리에게 소중한 자연도 공기도 인연이다. 지금 만나는 인연은 그냥 제비뽑기해서 만난 인연이 아니다. 엄청난 세월의 인연이 그 씨앗이 돼 지금의 모습으로 꽃이 핀 것이다. 부처님은 인연의 귀함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인연은 부부가 되고
사람은 꿈을 위해 열정적인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젊을 때는 의욕적으로 일하다가 순간 일이 의미를 잃고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생활에 활력이 없고 삶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활력과 재미를 얻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이 기쁨을 얻는 데는 두 종류가 있다 한다. 하나는 우리 스스로 원해서 일을 할 때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봄소리에 현혹되는 우리를 제도할 수 있을까 하고 궁리 끝에 하나의 말을 일러주셨다. 주리반특가는 가장 머리가 어둡고, 두 마디 말 중에서 앞의 말을 가르쳐 주면 뒤의 말을 잊어버리며 뒤의 말을 가르쳐 주면 앞의 말을 잊어버릴 정도였다. 부처님은 주리반특가에게 빗자루를 주면서 그것과 연관된 것으로 '먼지를 털고 때를 닦자'라는 말
하얀 계절 하얀 마음으로 사회에 공덕을 베풀고, 그들이 행복의 경지에 이르도록 도와주면 스스로가 행복해진다. 진정한 행복은 다른 사람을 통해 오는 법이다.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 끝이란 없고 이미 충분하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아주 재빠르면서도 솜씨 좋게 옷을 꿰매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바늘구멍에 실을 꿰는 일만은 누군가 해줘야 했다.
저물고 밝아오고 또 우리가 바라는 새해가 온다. 서로 살아가는 이유를 깊이 공유했으나 언제부터인가 인간관계의 상실로 인해 사회가 외로워지고 쓸쓸해지고 황폐해지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네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네 아픔과 기쁨을 자기 아픔과 기쁨처럼 생각해주라고 하셨다. 있는 듯 없는 듯 늘 함께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과거에 좋은 것은 영원히 간직하고 필요 없는 것은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감정과 원망을 계속 가지고 있겠다고 생각하면 거기에서 집착이 생기는 법이다. 집착은 재앙을 불러오기 쉽다. 그리고 과거의 성공 사례에 집착하면 깨달음은 얻을 수 없다.우리 삶 앞에 커다란 강이 흐르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곳으로 괴롭고
춥다는 소리가 나오자마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이맘때가 되면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과 못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잘한 일에는 별다른 아쉬움이 없지만 잘못하고 아쉬운 일에서 괴로움은 시작된다. 아쉽고 괴로운 일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행복한 연말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은 명상을 하던 중 깨달음을 얻었고 붓다가 됐다
어미새가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알을 따뜻하게 품어줘야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는 법이다. 그리고 그 후에도 새끼에게 먹이를 꾸준히 물어다 줘야만 새끼가 계속 자랄 수 있다. 이처럼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아니면 무언가를 위해서 매일 꾸준히 노력을 계속해야만 위대한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잠시 시작해 '힘들다, 비전이 없다
거제의 산에도 어느덧 단풍이 보인다. 계절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도 다섯 가지 번뇌로 흐려지면 상황을 제대로 비추어 볼 수 없게 된다.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고 잘못된 방향으로 행동하게 하는 시점에 혜총 큰 스님의 시민 대법회를 듣고 다시 나를 돌아본다. 다섯 가지 분노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가 다시 부처님에게 물었다. "욕심&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