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 창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그는 남한 사회가 자유당 정권의 부조리와 사회적 부패로 혼란에 빠져 있으며, 개인적으로 누리는 행복에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사회 풍조로 인하여 진정한 공동체의 삶을 이룰 수 없는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음을 냉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자신이 꿈꾸던 참다운 삶의 광장을 찾아 배편으로 북한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주인공은 북한에서도 사회주의가 내세우는 공식적인 명령과 그에 대한 복종만이 있을 뿐임을 알게 된다. 그가 그리던 진정한 삶의 광장은 북에도 없었던 것이다.

주인공 이명준에 따르면 현실은 광장과 밀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남한의 광장은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 ‘사기의 안개 속에 협박의 꽃불이 터지고 허영의 애드벌룬이 떠도는 곳’, ‘헛소리의 꽃이 만발한’ 추악한 공간일 뿐 참된 의미의 공간은 부재하는 곳으로 요약된다.

요컨대 명준이 바라본 남한은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은, 속악한 자본주의와 이기주의에 의해 전인적 인간관계가 파탄할 수밖에 없는 불모의 공간인 것이다. 그의 광장과 밀실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으로만 존재하는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남한의 자유는 일부 권력 계층과 그들에 기생하는 기득권자들의 타락과 방종으로 오염되어 있고, 북한은 그나마의 체제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 폐쇄 공간일 뿐이다.

결국 이명준은 남과 북을 놓고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자신이 꿈꾸었던 이념을 선택하고자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인간의 참다운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 이러한 허무주의적 사고로 인하여 주인공은 이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남과 북을 모두 버리고 제3국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선택은 자기 주체에 의해 삶의 가치를 확립할 수 없는 시대적인 강요로 이루어진 선택이란 점에서 비극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가 꿈꾸는 진정한 삶의 광장이 소설 속에서 ‘바다’와 ‘갈매기’의 이미지를 통하여 상징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도 어쩌면 작품이 발표되던 당시의 시대적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북쪽의 사회 구조가 갖고 있는 폐쇄성과 집단의식의 강제성을 고발하면서 동시에 남쪽의 사회적 불균형과 방일한 개인주의를 비판한다. 제삼자적 입장에서 볼 때 남과 북 어느 쪽도 진정한 인간의 삶을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이 이에서 비롯된다.

이 소설은 결말에서 주인공의 자살을 암시함으로써 이념 선택의 기로에서 개인의 정신적 지향의 한계를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비극적 구도를 통해 완강하게 고정되고 있는 분단 상황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 『광장』의 또다른 하나의 이야기 흐름은 사랑과 관련된 이야기다.

주인공 이명준은 남쪽에서는 윤애, 북쪽에서는 은혜와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이는 남북의 정치현실에 절망하고 그것을 잊기 위해 두 여성에게 집착한 것으로, 현실을 극복하고 개선하려는 적극적 노력이나 의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시 말해 명준의 사랑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 즉 현실 도피의 성격이 두드러진 것이어서 자아(명준)와 타자(윤애, 은혜)의 전인적 결합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일방통행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에 반해 은혜의 명준을 향한 사랑은 자기희생적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녀는 명준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북한군의 간호병을 자원해 전선에 뛰어들어 낙동강 전선에서 결국 둘이 만나게 됐고, 치열한 전쟁 중이지만 몰래 사랑을 나눈 결과 은혜 자신의 뱃속에 어린 생명이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된 뒤 사랑에의 확신을 더욱 굳힐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애인 은혜는 주인공 이명준을 환상에서 현실의 세계로 이끌어 내리는 한편, 현실에서 불가능했던 것을 환상을 통해 이루도록 매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 이명준은 그가 남한에 있을 때에도 아버지를 특별히 그리워하지 않았던 데다가 북한에서 아버지가 재혼해 사는 모습을 보고 은근히 경멸하기도 했을 만큼 가정과 가족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한 인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중립국에 가서도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던 그가 타고르 호를 따라오는 두 마리 갈매기의 모습에서 인간 집단의 원형인 가족을 본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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