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타 스님/칼럼위원

▲ 법타 스님 / 거제불교 거사림 지도법사, 기원정사 주지
“자기본래시불 천진자성인인구족(自己本來是佛 天眞自性而人人具足)하고 열반묘체(涅槃妙體)가 개개원성(箇箇圓成)하야 불가타구(不假他求)요 종래자비(從來自備)니라.”

자기가 본래 부처이며 천진한 자성이 사람마다 모두 다 갖추고 있으며 열반의 묘체가 개개인에게 모두 원만하게 이루어져 있는데 왜 다른 곳에서 부처를 구하려고 하느냐? 본래부터 스스로 부처를 갖추고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불교는 자기에게 불성이 있음을 자각하고 그 불성을 드러내는 것이 불교신앙의 핵심입니다. 즉 내 마음 안에 부처가 있는데 그 부처를 찾아내어 믿는 것이 불교입니다. 내 마음 안에  있는 부처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다르지 아니하고 아미타 부처님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마음이 부처라고 하지만 그 마음의 전부가 부처가 아닙니다. 중생의 마음은 진심과 상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진심이 바로 부처(空, 眞如)이며 이는 망심 속에 깊이 쌓여 있습니다.

우리가 죽어서 윤회를 할 때 이 육신을 떠나가는 것은 바로 이 마음이며 이 마음을 아뢰아식(제8식)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이것을 마음이라고 하고 우리가 죽어서 이 마음이 육신에서 분리되면 영혼이라고 합니다. 아뢰아식(제8식)에는 우리가 세세생생 살아오면서 경험한 갖가지 기억들이 업보이란 이름으로 기획되어 있습니다.

중생은 바로 이 아뢰아식에 기억된 업(카르마)에 의하여 다음 생애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최근 유전공학에서 인간의 유전자를 해석한 결과 그가 영생에 있어서 몇 살에 어떤 병을 앓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이는 불교에서 운회의 주최인 아뢰아식에 기억된 업장에 의해서 다음 생애가 결정된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불교를 믿고 수행을 한다는 것은 아뢰아식 가운데 망심을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업장이 소멸된 만큼 윤회의 쳇바퀴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행을 지극히 하는 경우 궁극에는 진심만 남게 되는데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열반(니르바)라고 합니다. 진심에 도달하게 되면 지혜와 자비로 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 경지에서는 하는 일 마다 옳고 모든 중생을 측은지심으로 보고 구제하게 됩니다. 진심의 경지를 반양심경에서는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感)’과 같이 설명하고 있으며 의상 스님의 법성게 역시 진심의 경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나의 마음속에 진심이 있음을 믿고 이 불성은 망심 속에 숨어 있으므로 망심을 소멸시켜 불성을 온전히 드러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망심을 소멸시키는 것이 바로 불교에 있어서 구원입니다.

그러나 아직 수행의 정도가 얕고 신심이 부족한 사람의 경우 외부의 절대적인 부처님에게 의지하여 구원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편에 불과할 뿐 바른 길은 아닙니다.

이는 바른 믿음을 구하기 위한 길잡이에 불과합니다. 외부의 절대적인 구원자는 허상입니다. 허상을 통해서 실상을 습득하는 것도 중생이 취할 수 있는 믿음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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