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 칼럼위원

▲윤성원 거제불교 거사림 교양대학 2기 학생회장
눈으로 빛을 탐하고, 귀로 소리를 탐하고, 코로 향기를 탐하고, 혀로 맛을 탐하고, 몸으로 보드라움을 탐하여 항상 五진의 속박을 받는다.

또 6친과 일체 권속이 다 삼세의 원수이니 모든 원한의 대상은 다 친한데서 생기는 것이다. 만일 친한 사이가 없으면 원수도 없을 것이며, 친한 이를 여의면 곧 원수를 여윌 것이다.

그러므로 친척과 권속이 서로 원망하며 혹 부모가 자식을 원망하고 혹 자식이 부모를 원망하며 형제와 자매도 모두 그러하여 서로 원망하고 서로 혐의하며 조금만 안 맞아도 성을 내고 재물이 있으면 친척들이 달라고 하나니 빈궁하면 애초부터 근심이 없다.

이것으로 추측해 본다면 삼세의 원수란 바로 다른 이가 아니라 모두가 인간의 욕심과 권속들이니 권속이 곧 원수가 되는 줄을 알 것이다. 침울한 표정은 쳐다보기만 해도 기분이 처진다. 하지만 환하게 웃는 표정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고조된다. 사람들 간의 감정은 전염병처럼 전염된다.

이처럼 어떤 사람의 감정 상태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현상을 정서적 전염이라고 한다. 잘 웃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잘 웃는 사람을 좋아한다. 웃음은 전염병과 같다. 하지만 그것은 몸과 마음에 도움이 되는 병이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접착제 같은 병이다.

웃지 않는 사람들은 그 이유가 웃을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분 나쁘다. 그래서 나는 웃지 않는다.” 그러나 감정과 표정간의 관계는 일방적이 아니다.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 웃지만, 웃다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표정은 종족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어떤 것보다도 많은 감정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시선 역시 많은 것을 전달한다. 응시 방향이나 응시 시간 눈을 뜨는 정도에 따라 매우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냉소나 비웃음 등 적의를 품고 있지 않는 한 웃음이란 좋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보기에 좋아서 좋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못난이는 못난 대로의 매력을 발산하는 게 웃음이다. 잘 생긴 얼굴이냐 아니냐를 떠나 미소 띤 얼굴이 아니고는 안 된다. 미소는 인상을 좋게 해주는 최상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세상살이에 즐거운 일보다 괴로운 일이 많은데 어떻게 항상 히죽 히죽 웃을 수 있냐고 할지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속을 상하게 하는데 어떻게 웃음이 나오냐?’, ‘실적이 오르지 않는데 웃음이 나올 수 있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웃어야 한다. 즐거운 일이 있으면 누구든지 웃는다. 웃지 않는 게 비정상이다. 중요한 것은 웃을 일이 없을 때 웃는 것이다. 고통스러울 때도 미소 지을 수 있는 것이 능력이지,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웃는 건 대단한 일이 못된다.

웃음은 습관이다. 일부러라도 자주 웃어보면 웃음이 잘 나오게 된다. 부처님 상에 웃음은 내면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깊은 뜻을 알 수 는 없지만 그래도 마음은 행복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는가.

웃음에서 고통을 벗고 부처님 말씀처럼 고통은 변한 것도, 있는 것도 없다는 진리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사회에 주인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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