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를 읽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어렸을 적에는 놀이터에서 정신없이 놀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벌써 해가 저물어 가고 있던 적이 많았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 시간을 훔쳐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한때는 시계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내가 가진 시간들이 늘어나는 줄로만 믿었다.

모모와의 만남에서 불쑥불쑥 어릴 적 내 모습이 그려지곤 한다. 모모와 만나면서 시간도둑에게 빼앗겨버린 나의 시간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무심코 지나쳐버린 우리의 삶이 얼마나 무의미하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누구나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철없던 시절의 나는 내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점점 학교라는 하나의 작은 사회에서 이런저런 일들에 좇기고 한눈팔면서 자신감도 줄어들고 어릴 적 마음조차도 시간도둑이 들고 가 버리는 것 같다.

어겼을 때는 나도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랬지만 이제는 멈추지 않는 시간 앞에서 작아져 가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어른이 되지 말고 학생이길 바랐던 적이 있다.

급하게 살아가다가 숨 좀 돌리려고 하면 어느 새 시간도둑들이 한발자국 뒤에 숨어서 호시탐탐 남은 시간을 노리고 있는 것이 현대인의 생활이다. ‘조금이나마 빨리 시간도둑을 체포하고 싶은 것이 현대인의 간절한 심정이 아닐까?’라고 나, 작은 사회인은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점 가운데 하나는 어른과 어린이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직 어른이 아니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핑계로 어른들이 이루지 못한 어떤 것을 아이들을 통해 대리만족하려는 경향도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자녀를 장래에 조금이라도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님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바람 때문에 부모님이 아이들의 시간도둑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른과 아이들 부모와 자녀들은 서로 친구가 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모모의 가장 친한 친구는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어른인 기기와 베포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총각 기기와 배포 할아버지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모모는 이들뿐만 아니라 마을사람들 모두에게 좋은 친구였고, 모모에게도 어른아이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모모의 친구가 되었다. 어른들과 함께 웃고 즐기는 꼬마 모모의 모습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와 우리 어머니도 친구처럼 지내지만 그래도 아직 어머니에게는 말할 수 없는 그런 비밀들이 많다. 그런 비밀들은 어머니보다 친구들과 의논하거나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친구들과 의논해서 결정했을 때에는 뭔가 조금 불안하달까, 어머니같이 든든하다거나 믿음직스러운 느낌이 안 든다. 언젠가 내가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는 날에는 나도 ‘모모’의 어른들과 아이들처럼 내 아이와 둘도 없는 고향친구처럼 지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집도 절도 없이 마을에 나타나서 가진 것이라고는 이름만 옷인 넝마조각과 곱슬곱슬하게 사방으로 뻗친 머리와 자신이 직접 지은 ‘모모’라는 이름밖에 없는 그 소녀가, 처음에는 모두에게 짐이 될 것만 같았던 그 소녀가 어느새 없어서는 안될 선물이 되어버렸다.

돈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쁜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닌 그 소녀가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돼버린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작은 애정이 아닐까?

요즘은 “빨리빨리’라는 말은 길거리를 가다가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이 되었다. 운전사 아저씨들도,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도, 음식점에서 음식을 시키는 사람들도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말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렇듯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이 우리 주위 누군가에게는 무관심이 되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큰 것이 아니라 단지 상대방에게 따뜻한 미소와 함께 안부정도는 물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도 많은 사람들에게 한 꾸러미 선물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날 모모가 나에게 다가온 것처럼. 시간 도둑에게 덜 쫓기는 여유도 가지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