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정 대한불교 법화종 옥련사 주지

부처님께서 음행을 금하도록 하신 데는 특히 중요한 몇 가지 뜻이 간직되어 있다.

첫째, 중생의 음행은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모든 가멸심을 조장하고, 번뇌의 뿌리가 되어 해탈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모든 생사는 음행으로 부터 비롯된다. 생사를 뛰어넘는 해탈과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려면 먼저 생사의 근원인 기멸심과 번뇌를 초월해야 하는데 음행은 번뇌와 기멸심을 조장할 뿐이다.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출가중의 음행을 전적으로 금하신 것이고, 제가중에게는 사음만을  금하도록 하신 것이다. 둘째 음행은 청정하지 못한 비범행 이요, 물들고 추한 행인 염오행이기 때문이다. 거룩하지 못한 행위는 밝은 마음을 어둡게 만들고 청정한 마음을 탁하게 물들이며, 어둡고 탁한 마음은 결국 생사윤회의 씨앗이 될 뿐이다.

사람들은 흔히 ‘식욕도 본능이요 음행도 본능이며 명예욕도 본능’이라고 하면서, 탐욕심 때문에 생겨나는 갖가지 문제들을 방치하려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본능을 핑계 삼아 생겨나는 문제들을 내버려 둔다고 하여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밝은 지혜를 등진 채, 무명심에 바탕을 둔 맹목적이고 충동적인 본능은 결과적으로 어둡고 추한 업장만을 조장시킬 뿐이다.

탐욕심이 축적본능이고 잘 살려고 하는 당연한 욕구라고 하여 아무런 절세 없이 무한정 추구하다 보면 상대방에게 피해를 줄 뿐 아니라 온갖 비리와 불의까지 돌아볼 줄 모르는 추한 존재로 돌변하여 버린다.

화를 내는 진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인간이 ‘일어나는 화를 어떻게 하랴’하는 마음가짐으로 행동 한다면, 이 세계는 곧 폭력과 무질서와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바뀔 것이다.

실로 울리의 마음 밑바닥에는 맑고 자비롭고 슬기로움이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슬기로운 마음이 그릇되어 흐르면 어리석은 우치심이 솟아나고, 자비하고 인자한 마음이 잘못 흐르면 성을 내는 진심으로 탈바꿈하며, 거룩하고 청정한 마음이 거꾸로 흐르면 음심이 발동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음행은 우리의 청정한 본성을 탐욕의 굴레로 얽어매고 가리우는 것이요, 그로 말미암아 모든 생사윤회의 세계가 전개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음행을 하지 말 것을 거듭 강조하신 것이다.

보다 자세한 이유는 부처님께서 음계를 제정하신 그 때의 일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가 있다.  부처님께서 바이샬리에 계실 때의 일이다. 때마침 흉년이 들어 비구들은 걸식을 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때 바이샬리 부근의 칼란다카 마을 출신으로, 그 고장에서 재산이 제일 많은 집의 아들이었던 수제나 비구는 생각했다.

‘요즘처럼 걸식하기 힘든 때에 여러 스님들을 우리 고향 가까이 모시고 가서 먹을 것 입을 것 걱정없이 수행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드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 기회에 우리 친족들도 보시를 하여 복덕을 지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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