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란 칠천량 해전 당시 침몰한 조선 함선 160척 추적

11세기 침몰한 완도선 발굴, 거북선 발견 가능성 높아

경남 거제시 하청면 칠천도 인근 해역에 320만 경남도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순신 프로젝트 ‘거북선을 찾아라’ 그 1%의 가능성에 경남도민들이 도전장을 냈기 때문이다.
지난 6월2일 거북선 찾기 대장정에 돌입한 경남도는 오는 2015년까지 3단계로 나누어 이 사업을 추진, 거북선을 비롯한 판옥선, 천자총통 등 당시 유물을 찾아내 우리의 역사를 고증하고 선조들이 남긴 유물을 후손들에게 남기겠다는 각오다.
본지는 남해안 시대와 거북선 탐사, 칠천량 해전을 통해 고찰한 거북선, 역사적 사료와 향토 전문가들이 말하는 거북선의 역사, 거북선 발굴과 관광거제의 미래 등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 지난 1983년 전남 완도군 약산면 어두리 바다에서 발견된 완도선의 모습. 9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 전시되고 있다.

연구리 지명, 거북선이 떠있는 모습

하청면 칠천도 연구리. 이곳의 지명은 여러 척의 거북선이 연꽃모양으로 떠 있는 모습을 본 선조들이 붙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칠천도에 주둔했으며 거북선 또한 이곳에 있었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그렇게 많았던 조선수군의 함선들은 지금으로부터 411년 전인 1597년 7월7일부터 16일까지 열흘동안 벌어진 칠천량 해전을 통해 자취를 감추게 된다.

6년 동안 조선바다를 굳건히 지켜오던 조선수군이 왜군에 의해 칠천량 앞바다에서 허무하게 무너졌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수군은 거북선과 판옥선 등 160여척의 함선이 파손되고 1만여명의 수군이 전사하는 참혹한 패배를 당했다.

이순신 프로젝트는 바로 이 칠천량 해전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거북선 탐사는 칠천도 인근 해역이 그 중심지다.

이곳에서 조선 수군의 돌격선으로 역사적 명성을 드높인 거북선의 잔해를 찾는다는 것이 경남도의 계획이다. 칠천도 해역은 바람과 해류의 흐름이 약하고, 수심도 20~30m로 얕다. 더구나 뻘층의 두께도 3~4m에 달해 유물의 손실이나 훼손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 원형으로 복원된 완도선 모습

거북선은 2층 구조가 아닌 3층 구조

경남도는 국내·외 문헌조사와 이순신프로젝트 역사고증자문위 고증, 학술 심포지엄 등을 통해 거북선의 구조는 3층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동안 2층 구조로만 알려져 온 거북선의 기본 구조를 뒤엎은 것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200여년 후인 조선 정조시대(1795년)에 규장각에서 편찬한 ‘이충무공전서’ 권수(卷首)의 귀선지제(龜船之制)에는 거북선의 주요 치수와 구조·형태에 대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다.

현재 원형으로 복원된 거북선은 2층 구조를 갖춘 1795년대의 거북선으로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건조된 거북선이 아닌 임진왜란 이후에 건조된 것이다.

이번에 밝힌 3층 구조의 거북선은 1795년의 거북선이 아니라 1592년의 거북선이다. 3층 거북선은 1591년에 건조를 시작했고,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 발발 전에 완성됐다. 임진왜란 당시 주력함선은 판옥선, 거북선, 사후선(척후선), 병선 등이었다

1592년의 거북선은 왜 3층 구조였을까? 거북선은 왜선에 비해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강력한 화포로 적선을 공격, 적선단의 대형을 분산·와해시키면서도 승조원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었던 최정예 군선 겸 돌격선이었다.

거북선이 전함으로서 전투능력을 최대로 발휘하기 위해 1층 선실은 군졸들의 휴식장소와 군량·무기 창고로, 2층 갑판은 노를 젓는 격군(노군)과 사수의 전투장소로, 3층인 상갑판은 포수들의 전투장소로 운용됐다는 것이 경남도의 설명이다. 거북선의 구조가 2층인지, 3층인지는 칠천도 해역에서 거북선이 발견되면 자연스럽게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수중 고고학과 완도선

경남도의 ‘거북선을 찾아라’는 수중 고고학과 함께 연계돼야 한다. 수중고고학이란 과거에 물속에 잠겨버린 유물이나 유적을 발굴해 인류의 문화 생활방식, 역사 등을 밝혀내는 학문이다.

수중고고학은 모든 활동이 물밑으로 연장해 행해지는 것으로 조사환경과 방법적인 면에서 육상고고학과 구분된다.

외국의 경우 수중고고학은 오래전부터 학문의 영역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거북선 발굴 조사단이 첨단 장비만으로 거북선의 실체를 찾을 수 있을지 의문시되는 점이기도 하다.

수중문화재가 물속에 있게 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의 경우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수상활동 등에서 우연히 물속으로 침몰해 남아있게 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원래 육상이었다가 지질학적인 변동이나 기후의 변동으로 물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 전남 완도군 약산면 어두리 바다에서 발견된 완도선 발굴과정

1983년 전남 완도군 약산면 어두리 바다에서 발견된 완도선이 침몰한 채 남아있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완도 앞바다에 침몰한 이 배는 10톤 규모의 외돛배이며, 11세기 중·후반경 해남 진산리에서 그릇들을 싣고 항해하다가 완도 어두리 앞바다에 침몰한 고려시대 상선(商船)이다.

현재 목포시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서 복원돼 전시되고 있는 완도선은 약 900년 전의 유물. 시기상으로 본다면 400여년전 칠천량 해전에서 침몰한 거북선 또한 해저에 침몰한 채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완도선은 발견 당시 심하게 부식된 상태였지만 뻘 속에 묻혀있던 배밑과 삼 등 배의 구조는 비교적 잘 보존된 상태였다. 칠천도 해역 뻘층의 두께가 3~4m에 달하는 것도 거북선의 발견 가능성을 높여주는 조건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1976년 발견된 신안선의 경우도 거북선의 발굴 가능성을 높여 주는 자료다. 700여년전 해저에 침몰한 중국 무역선인 신안선은 항해 중 태풍을 만나 우리나라 서남해안을 표류하다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완도선과 신안선은 모두 목선들.

우리나라 전통양식의 첨저형 한선인 거북선 또한 칠천도 앞바다에 수장된 채 후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 거북선 발굴과정

거북선 탐사, 전문가가 부족하다

수중발굴의 과정은 경험이 풍부한 발굴단의 구성으로부터 시작된다. 총 지휘하는 조사단장과 그 밑에 기술 분야, 해양학 분야, 고고학 분야 등을 둔다.

기술 분야에서는 실제수중 작업을 담당하는데 잠수시간의 감독, 잠수장비ㆍ보트ㆍ기계류 등을 관리한다. 해양학 분야는 탐사선을 운용하면서 탐사장비를 관리하며 탐사결과를 분석ㆍ정리한다.

고고학 분야에서는 유물 발굴, 도면작성, 사진촬영, 유물의 등록 및 보존처리, 분석 등을 담당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효율적인 발굴과 시간, 비용 등의 절감을 위해 긴밀하게 협조하며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수중 고고학은 유물을 발굴조사 하는데 사용되는 장비와 수중이라는 환경이 다르다는 점만 제외하고는 육상 유적지에서 하는 것과 같은 기준을 따른다. 고고학자들은 그들의 기술을 수중 환경에 적용함으로써, 수중 환경에서 진행하는 발굴 작업의 어려움에 대처해야 한다.

또 발굴 작업이 진행되면서 발굴의 결과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전략에는 모든 유물을 인양할 것인지, 또는 특별한 의문 사항에 대한 해답만을 얻을 것인지 등 뚜렷한 발굴 목적이 포함된다.

그렇기 때문에 수중고고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일반 고고학의 지식ㆍ방법론뿐만 아니라 해양학, 측량학, 보존과학 등의 분야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거북선 탐사팀은 이러한 전문가들이 부족한 상태다. 이 때문에 수중 유물이 발견되더라도 이것을 분석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 맹점을 지니고 있다.

스쿠버들이 탐사지점으로 잠수해 눈으로 확인한 다양한 수중 유물들을 건져내고 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 다양한 첨단 장비를 보유했음에도 결국 인간의 눈과 손으로 마지막 탐사를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거북선을 찾기 위한 노력이 시간과 비용의 문제 때문에 자칫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일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서해안 지역에서 적지 않은 수중 유물이 인양되고 있음은 거북선 탐사에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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