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 창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손영목의 장편소설 「거제도」

다른 한편 소설 「거제도」에 나타난 또 하나의 큰 이야기의 흐름은 포로수용소 내부의 치열한 이념적 갈등에 의한 이데올로기의 강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거의 모든 단위수용소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다반사는 반동분자로 찍힌 포로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소설 속에서는 이렇게 서술된다.

「사망자의 참상은 (----)철사나 전깃줄에 목이 조인 것은 약과이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시퍼런 멍으로 뒤덮여 있거나, 둔기에 맞아 살집이 짓이겨져 터져버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심지어 꽁꽁 묶인 채 무수히 짓밟혀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러 내출혈로 죽기도 했다. 어떤 경우는 몸에 전혀 상처가 보이지 않고 폐에 물이 들어 있지도 않은 시체도 있었는데, 나중에야 목구멍에 틀어박힌 솜뭉치가 발견되기도 했다.(----) 공산포로들이 즐겨 쓰는 방법의 하나는 희생양이 밤에 변소에 갔을 때 자행되었다. 무방비 상태의 희생자들은 뒤에서 엄습해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가 순식간에 분뇨통 안에 거꾸로 쳐박혀 오물에 질식해 생을 마감했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공포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주로 포로수용소 안의 공산포로 조직인데, 이 조직은 공식적 우두머리인 이학구 해방동맹위원장을 중심으로 군사행동부, 정치보위부, 내무부, 민청행동결사대, 당 간부학교, 인민재판소 등의 기구를 갖춤으로써 마치 포로들의 망명정부와 같은 형태를 갖춘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안의 공산포로 조직의 배후에는 해방 후 북한의 공산정권 수립에 깊숙이 관여한 박사현이란 인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는 ‘하전사 전문일’로 계급과 이름을 위장하여 포로수용소에 잠입해 활동하면서 판문점에서 이뤄지는 정전협상이나 포로송환 문제 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거제도포로수용소 내 공산포로 조직과 판문점 정전협상대표단의 공동노력을 조정하기 위해 통신연락 임무를 띤 유격지도부 레포(연락원)들이 피란민으로 가장하여 거제도포로수용소 철조망 밖 요소요소에 아지트를 마련해 비밀 지령을 전달하는 공작루트로 활용된다.

남파공작원 오영자가 그런 대표적 인물이다. 그녀는 유격지도부의 특별지령을 받고 피란민을 가장해 거제도에 잠입하여 수월리 해명 마을 민가 한 칸을 빌려 술집을 차려 아지트로 삼고 포로집단의 지도총책인 박사현과 직접 접촉하는 일급 첩보원이다.

동시에 쓰레기통에 숨어 몰래 포로수용소 안으로 들어와 박사현의 생리욕구에 순응해 육체를 제공하는 것도 그녀가 부여받은 임무의 일부이다. 이러한 매개적 인물의 설정은 소설의 총체성을 확보하는데 크게 이바지하는 전략이 된다.

한편 포로수용소 안의 반공포로 조직으로는 대한반공청년단이 있다. 이로써 포로수용소 안에서 공산포로 집단과 반공포로 집단(대한반공청년단) 간의 싸움이 일게 되며, 이는 한국전쟁의 축소판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민군 포로로서 적색수용소인 77수용소에 있다가 성분 노출 위기에 직면하자 기적적으로 77수용소 철조망을 벗어나는데 성공한 윤석규는 제33경비대대 순찰조에 발견됨으로써 곧바로 야전병원으로 후송된다.

거기서 윤석규는 서울에서 여학교에 다니다가 인민군이 내려왔을 때 의용군에 지원하여 간호군관 중위로 활동하던 중 국방군에 붙잡혀 포로가 된 좌익공작원 조양숙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