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즘적 방법 의한 거제포로수용소 소설 등장 ①
리얼리즘적 방법 의한 거제포로수용소 소설 등장 ①
  • 거제신문
  • 승인 200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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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 창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 손영목의 장편소설 「거제도」

앞에서 살펴본 장용학의 「요한시집」이나 강용준의 「철조망」은 주로 거제도포로수용소 내부에서 주인공들이 체험하거나 의식하는 세계를 비논리적으로 배열시킨 실험적 성격의 모더니즘적 작품들이었다면, 손영목의 장편소설 「거제도」는 거제도포로수용소 내부의 포로들의 삶과 당시 포로수용소를 중심으로 살아가던 포로수용소 밖의 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비로소 기대하던 리얼리즘적 방법에 의한 포로수용소소설이 등장한 셈이다.

이로써 거제도포로수용소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가능하게 되었다.

손영목의 장편소설「거제도」에는 두 개의 큰 이야기 흐름이 존재한다. 하나는 포로수용소 외부의 이야기로써 토착원주민인 상동리 이장 옥치조 일가의 신산스런 삶과 임덕현으로 대변되는 피난민들의 서사라면, 다른 하나는 수용소 내부의 이야기로써 ‘짐승의 시간’으로 상징되는 친공포로와 반공포로의 갈등의 서사이다.

전자가 거제도토착원주민들과 피난민들의 이야기라면, 후자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이야기이다.

이러한 두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직조됨으로써 장편소설 「거제도」는 앞에서 살핀 두 편의 소설들과는 달리 전통적인 소설문법으로 회귀하게 되었고, 거제도포로수용소가 갖는 폭넓은 서사적 의미를 독자들은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우선 거제도 토착원주민의 삶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상동리 이장 옥치조 일가의 삶이다. 작가는 장편소설 「풍화」에서 장승포 느태마을 심윤식 일가를 통해 해방 이후 거제도토착민들의 삶을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처럼, 여기서 살피려는 그의 장편소설 「거제도」에서는 상동리 옥치조 일가의 삶을 통해 포로수용소 시절의 거제도토착민들의 삶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옥치조는 포로수용소가 위치한 상동리 마을의 이장을 맡고 있는 농사꾼으로서 전쟁이 나고 수용소가 생기는 등 갑작스런 사회적 변화의 흐름에 무기력한 가장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반면, 그의 아내 이옥례는 포로수용소 건설에 농토를 징발당하고 살던 집마저 소개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쟁통에 군에 갔던 큰 아들 상국이 부상을 당해 돌아오는 등 마음고생에 생활고가 겹친 탓으로 정신을 잃고 실성하게 된다.

게다가 옥치조의 딸 상은은 청순한 섬마을 처녀로서 생계가 막막해진 가족을 위해 직업전선에 나갔다가 피란민이자 홀몸으로 월남한 유부남 임덕현을 만나 유혹당하나 점점 성에 눈을 떠가며 현실에 순응해나간다.

하지만 상동리 일대는 공병대가 투입되어 민간인 소개 작전이 끝난 뒤 화염방사기 등으로 빈집들에 대한 소각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을 무렵, 소개되어 수월리 앞 소오비 마을의 방 한 칸을 얻어 이사를 떠났던 상동리 이장 옥치조의 아내 이옥례가 실성한 몸짓으로 자기가 살던 집으로 돌아와 불에 타죽는 운명을 맞이한다. 

한편 피난민들의 한 전형으로는 임덕현을 들 수 있다. 그는 ‘흥남철수’로 한국전쟁 첫해인 1950년 12월 25일 장승포항에 발을 디딘 이후 장승포의 포구 왼쪽 바닷가 어느 일본식 목조 가옥 이층에 자리잡은 ‘북한피란민연락처’ 의 처장 겸 장승포지소장을 지내는가 하면, 포로수용소 인접지역인 연초면 죽토리 관암마을 일대의 들판에 ‘양키시장’ 즉 ‘기지촌’이 생기게 되자 피란민사회를 발판삼아 사업에 성공한 인물이다. 생활력이 강하고 이재에 밝아 단기간에 큰 재산을 모은다.

즉 그는 연초삼거리 부근에 미군부대에서 나온 트럭을 버스로 개조하여 거제에 처음으로 ‘거제여객운수회사’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그는 자주 들리던 인근 다방의 레지 아가씨로 근무하던 상동리 옥치조의 딸 옥상은을 자기 회사의 경리사원으로 채용한 뒤 열아홉의 그녀를 유혹하여 순결을 빼앗기도 하지만, 옥상은도 점점 성에 눈을 떠가며 현실에 순응해간다.  

임덕현은 운수사업을 확장하면서 회사를 장승포 4구 2층짜리 일본식 적산 가옥을 매입해 사무실을 이전하여 신접살이 살림집을 마련하는 등 사업의 수완을 발휘한다.

이처럼 옥치조로 대변되는 거제도토착원주민들의 고단하면서도 무기력한 삶과 임덕현으로 대변되는 피란민들의 뿌리내리기 위한 치열한 삶이 대비되고 있는 동시에 토착원주민과 피란민들의 자연스런 교류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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