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정 스님/대한불교 법화종 옥련사 주지

이제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불투도계 속에 담긴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다생다겁토록 윤회를 거듭하는 중생들은 알게 모르게 투도죄를 짓기 마련이다.

그래서 투도와 관련된 갖가지 과보를 받으며 살아간다. 때로는 말할 수 없는 가난 속에 살아야 하고, 때로는 거지처럼 한 끼의 식사를 위해 구걸을 해야 하고, 때로는 추위에 떨어야 한다.

그럼 투도죄의 과보는 결코 면할 수 없는 것일까? 아니다. 현실의 업보를 맞이하는 ‘나’의 마음가짐을 바꾸고 복덕을 쌓으며 살면 오히려 크나큰 행복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에 관한 한 편의 옛이야기를 음미해 보자.

중국 당나라때 배휴라는 유병한 정승이 있었다. 그는 쌍둥이로 태어났다. 그것도 등이 맞붙은 기형아로 태어나자 부모가 칼로 등을 갈라 살이 많이 붙은 아이를 형으로, 살이 적게 붙은 아이를 동생으로 삼았다.

부모는 형과 동생의 이름을 ‘度(도)’자로 짓되, 형의 이름은 ‘법도 도(度)’로 하고 동생은 ‘헤아릴 탁(度)’이라고 불렀다. 배휴는 어릴 때의 형인 배도가 장성한 다음 지은 이름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읜 배도와 배탁은 외삼촌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어느날 일행선사 라는 밀교의 고승이 집으로 찾아와서 그들 형제를 유심히 바라보고더니, 외삼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저 아이들은 누구입니까?”
“저의 생질들인데 부모가 일찍 죽어 제가 키우고 있습니다.”
“저 아이들을 내보내시오.”
“왜요?”
“저 아이들의 관상을 보아하니 앞으로 거지상이요 뒤는 거적대기상 입니다. 워낙 복이 없어 거지가 되지 않을 수 없고, 그냥 놓아두면 저 아이들로 말미암아 이웃이 가난해집니다. 그리고 저 아이들이 얻어먹는 신세가 되려면 이 집부터 망해야 하니, 애당초 그렇게 되기 전에  내보내십시오.”
“그렇지만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어떻게 내보냅니까?”
“사람은 자기의 복대로 살아야 하는 법! 마침 내 이집이 망한다면 저 애들의 업은 더욱 깊어질 것이요.”

방문 밖에서 외삼촌과 일행선사의 대화를 엿들은 배도는 선사가 돌아간 뒤 외삼촌에게 말하였다.

“외삼촌, 저희 형제는 이 집을 떠나려고 합니다. 허락하여 주십시오.”
“가다니? 도대체 어디로 가겠다는 말이냐?“
“아까 일행선사님과 나눈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 형제가 빌어먹을 팔자라면 일찍 빌어먹을 일이지, 외삼촌 집안까지 망하게 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떠나겠습니다. 허락하여 주십시오.”

자꾸만 만류하는 외삼촌을 뿌리치고 배탁과 함께 집을 나온 배도는 거지가 되어 하루하루를 구걸하며 살았다. 어느 날 형제는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였다.

“우리가 이렇게 산다면,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의 혼령도 편안하지가 못할 것이다. 산으로 들어가 숯이나 구워 팔면서 공부도 하고 무술도 익히자.”

그들은 산으로 들어가 숯을 구웠고, 틈틈이 글읽기를 하고 검술도 익혔다. 그리고 넉넉하게 구워 남은 숯들은 다발다발 묶어 단정한 글씨로 쓴 편지와 함께 집집마다 나눠줬다.  

“이 숯은 저희들의 정성을 들여 구운 것입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마음놓고 쓰십시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이렇게 꾸준히 숯을 보시하자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하던 마을 사람들도 감사하게 생각하였고, 마침내 숯이 도착할 시간이면 ‘양식에 보태라’며 쌀을 대문 밖에 내어 놓기까지 하였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