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 창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② 거제도포로수용소 소설에 대한 모더니즘의 또 다른 실험-강용준의 단편소설「철조망」

작가 강용준은 1931년 황해도 안악군 용문면 매화리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당시 20세의 나이로 북한의 인민군으로 징집되어 낙동강 전투에 투입되었고, 그곳에서 숱한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하고는 죽음의 전쟁을 피하기 위하여 몇몇 친구들과 함께 소속 부대로부터 탈출을 감행한다.

그 후 영남과 호남의 산야를 방황하다 UN군에 붙들려 3년간의 포로수용소 생활을 한 경력이 있는 작가이다.

단편소설 「철조망」은 작가가 1960년 7월 30세의 나이로 사상계사가 제정한 제1회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한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민수는 포로수용소 안에서 ‘적색 캠프를 전복시키고 철조망 안에서나마 자유를 획득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나선 결사대의 책임자’이다. 말하자면 그는 30명의 돌격대로 이루어진 반공포로 결사대의 책임자였다.

그는 ‘소금기 섞인 쌀쌀한 섬 바람’이 불어오는 야간을 틈타 ‘놈들(친공 포로들)의 비밀당 본부’를 포위할 계획을 세운 뒤 거사 직전의 순간에 있다. 그리하여  주인공 민수는 거사에 실패할 경우와 성공할 경우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거사에 실패할 경우, “최악의 경우 우리는 삶을 버린다. 그러나 우리가 흘린 피의 자국은 영원히 남아 마르지 않으리라. 성실한 인간의 가슴 속에 이름 없는, 그러나 참된 인간의 기록으로 새겨 길이 남으리라.” 거사에 성공할 경우, “날이 밝으면 이미 딴 세상이 될 것이다. 괴뢰기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대신 태극기가 날릴 것이다.”

결국 결사대 일원의 밀고로 거사는 실패로 돌아가고 20여명의 젊은 결사대원들이 체포되어 거제도포로수용소의 친공 포로수용소 비밀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하며 죽어간다.

매질, 가시철판 걷기, 쇳물 마시기, 달군 쇠꼬챙이로 몸지지기 등 잔혹한 인간학대로 동지들이 비밀 지하실에서 죽어가고 있었고 민수에게도 고문이 강요된다. 포로수용소 비밀 지하실에서는 인간의 행동일 수 없는 광기가 행해지고 있다.

 ‘민수가 그 쇳물이 질질 녹아나는 시뻘건 쇠꼬치로 등떠리를 서너 번이나 더 지져지고’ 의식이 있다 없다를 반복하다 어느 순간 깨어나서 고문을 가했던 놈들이 없어진 틈을 타서 어둠의 토굴 속을 기어 출구를 찾게 된다.

친공 포로 보초가 졸고 있고 동초가 담뱃불을 붙이는 틈을 타서 ‘필사의 전진’ ‘필사의 노력’으로 철조망을 향해 달려 탈출을 시도하다 죽음을 당한다. 작품은 이렇게 끝나고 있다.

「민수는 화닥닥 일어섰다. 그리고 정신없이 달려 나갔다. 철조망을 타고 올랐다. 발이 째지고 손이 찢어졌다. 피가 흘러내렸다. 정신이 없었다. 아득했다. 무엇인가 떠들썩하고 왁자지껄한 소동이 그저 아득하기만 하였다. 얼마를 타고 올랐는지 몰랐다. 갑자기 손이 파르르 떨리며 온몸에 경련이 일어왔다.(……) 피시시 맥이 풀리며 민수는 그대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서넛의 검은 그림자가 방금 철조망에서 굴러 떨어진 시체를 둘러싸고 웅성대고 있었다. 한 놈이 씨부렸다. 「미욱한 새끼, 제레 뛔야 베루기디 원 벨 수 있갔다구 하하하」다음 놈이 말을 받았다. 「양놈이 털조망 하나는 잘 테 뒀디.」「참 이런 때 털도망은 희한하대니끼니.」 「하하하하.」「하하하하.」어둠은 여전히 깔려 있었다. 황량한 폐허처럼 여기 철조망은 그렇게 둘러져만 있는 것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극한으로 치닫는 소설적 상황의 설정과 이에 반발하는 운명적인 인간의 도전을 통해 끊임없는 생명력을 확인하는 점이다.

전후세대의 작가들이 흔히 보여주었던 절망과 좌절의 인간상을 극복하고, 인간 의지를 실현해 보이는 이 작가의 노력은 전후문학의 긍정적인 자기 변혁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생명과 생존의 현장에서 공포와 절망과 고통의 시간들을 체험하고 생명의 포기를 각오해야 하고 마침내 허무의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주인공의 실존적 삶을 심리주의적 기법을 가미하여 완성시킨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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